제주칼호텔 매각중단을 위한 도민연대는 7일 오전 제주칼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그룹에 제주칼호텔 매각 중단을 촉구했다.(사진=박소희 기자)
제주칼호텔 매각중단을 위한 도민연대와 노동자들이 한진그룹에 제주칼호텔 매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박소희 기자)

KAL호텔이 사라진다, 사람들이 사라진다.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해(2021년) 9월, 제주KAL호텔이 매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수한 업체는 현재의 건물을 부수고,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 근무하는 300여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까지 사라지는 줄은. 매매 대금으로 노동자들의 생계는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KAL은 우리나라 거대 기업이 아니던가.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때 내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었다. 1974년에 지은 칼호텔, 국민학교 시절부터 눈에 익어버린 건물이다. 내 옆지기는 수학여행 장소로 칼호텔을 기억한다. 한때는 ‘제주의 랜드마크’라고도 했었다. 한진그룹의 공과를 떠나, 이렇게 칼호텔은 실제적으로 제주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도민의 애환과 추억을 간직한 유기체가 되어 왔던 것이다.

게다가 역사 전공자인 나는 오래된 건물에 관심이 많다. 세월의 더께가 쌓일 무렵이면 서슴없이 밀어버리고 새 빌딩을 올리는 근대의 직진 본능에 기겁했기에, 건물 철거 소식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렸던 것이다. 거듭 죄송하고 부끄럽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의 부끄러운 낭만이 깨진 건. 한진칼은 일부 직원만의 고용 보장을 얘기했다. 그렇다면 그 외의 직원들은? 약간의 위로금을 줄 테니 알아서 나가라는 방침이다.

그 위로금 이름이 ‘희망퇴직위로금’이다. 여기서 ‘희망’은 ‘스스로 희망해서’라는 뜻이다. 자발적으로 나간다면 돈을 주겠고, 못나가겠다면 해고한다는 의미다. 이건 ‘희망’도 ‘자발적 결정’도 아니다. 겁박일 뿐이다.

9일 오후 제주칼호텔 정문 앞에서 '제주칼호텔 매각 저지 도민 결의대회'가 열렸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칼호텔 매각 저지 도민 결의대회'(사진=김재훈 기자)

KAL 방침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물론 한진칼의 어려움도 알고 있다. 경영 악화가 심하다고 한다. 수년간 적자이며 상환해야 할 부채가 2,358억 원이라고 한다. 사측의 사정을 외면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 방침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처음부터 노동자와 함께 하며 고통을 공유했어야 한다. 경영이 어려워질 때부터 자료를 공개, 공유해야 했다. 상황에 대해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고, 그에 기초하여 공동의 자구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경영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하기에 경영 악화와 부채 증가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져들 수밖에 없다. 책임 규명 없이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 시대 변화에 따른 신속한 대응 등 여러 가지 대안들을 모색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럼에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면, 3년 정도의 이직 준비 기간을 주었어야 한다. 갑자기 나가라는 건 해고와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쫓겨나는 건 기계가 아니라 피가 흐르고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다.

또한 퇴직 유도가 피할 수 없는 조치라면, 작은 가게라도 차릴 수 있게 자금 지원도 고려했어야 한다. 현재 사측이 제시하는 희망퇴직위로금은 전혀 희망적이지 못한 액수다.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한 채, 사전 조치 없이 이뤄진 일방적 통보는 사측의 무책임함만을 입증한다.

제주칼호텔(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칼호텔 (사진=김재훈 기자)

우려스러운 사측의 대응 방식

무책임만이 아니다. 간교함과 무서움마저 느끼게 한다. 앞으로 닥쳐올 한진칼 노동자들의 고통이 몹시 우려스럽다.

먼저 매각 소식의 전달과정부터 보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몰랐다. 뉴스와 SNS를 통해 고용 불안을 처음 접하게 된다. 왜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을까. 급작스런 통보는 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들은 당황하게 되고, 그 당황만큼 대응력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린다. 사측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분열 유도다. 고대 로마제국시대부터 권력자들은 언제나 ‘분할하여 통치(divide and rule)’하는 기술을 써 왔다. 사측은 ‘정규직에 한해서 50% 고용 보장’이라는 안을 제시했다. 사측의 제시한 50%는 우선 정규직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비정규직은? 그리고 정규직 중에서도 고용 보장을 받지 못하는 50%는?

이것은 ‘50% 노동자에 대한 생계 보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50% 안과 밖은 분열된다. 분열은 노-노간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사측의 의도가 읽힌다. 지극히 간교하다.

앞서 말한 희망퇴직위로금 역시 그렇다. 갈등을 일으킨다. 사측은 3월 8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겠다고 통보했다. 이 역시 간교한 술책이다. 이틀 뒤인 3월 10일에 노사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을 이틀 앞에 설정한 것이다. 노사협의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다.

희망퇴직위로금 거부는 모두가 단결했을 때 힘이 있다. 그러나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다. 정리해고 당하면 위로금마저 못 받는다. 빈손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희망퇴직 거부를 말하기도 힘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게 하고, 노-노간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 이게 그들의 의도다. 사측의 간교감이 다시 드러난다.

노무관리도 대기업은 대기업다워야 한다. 질 낮은 술책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 맞게, 이제 성숙한 노동자관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인간을 먼저 생각하면서 통 크게 가야 한다.

고용보장 없는 매각 중단 촉구 촛불집회에 나온 칼호텔 노동자들. (사진=박소희 기자)
고용보장 없는 매각 중단 촉구 촛불집회에 나온 칼호텔 노동자들. (사진=박소희 기자)

조장될 불신과 남을 상처가 더 걱정이다

사측이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주칼 영업은 4월 30일에 끝나며, 5월 31일에는 도급계약이 종료된다. 그 뒤를 생각하니 우려와 함께 두려움이 몰려온다. 당장 닥칠 생계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걱정되는 건 조장될 ‘불신’과 남을 ‘상처’다.

이제 곧 정규직과 비정규직, 50% 고용 보장자과 비보장자, 희망퇴직 신청자와 비신청자로 나뉠 수도 있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신과 원망이 자라날 수 있다. 물리적 배고픔이야 어찌어찌 다른 일을 하면서 이겨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측의 ‘분할 통치’는 노동자 상호간의 불신을 조장하며, 그 불신은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받게 만든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서 싸움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는? 영업 방해 등을 명목으로 민형사 소송이 밀려올 수도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구사대 폭력으로 탄압했지만, 지금은 손해배상 소송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칼보다 돈이 무서운 시대다. 이 과정에서 불신과 미안함과 배신감과 상처가 깊어질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서로 보듬을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해고 위기에 놓인 제주 칼호텔 노동자들은 5일 오후 5시부터 제동목장을 방문한 조원태 회장에 제주 칼호텔 매각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민주노총 제주본부)
해고 위기에 놓인 제주 칼호텔 노동자들은 제동목장을 방문한 조원태 회장에 제주 칼호텔 매각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민주노총 제주본부)

제주도민이 나서야 한다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막아야 한다. 이게 KAL노동자들만의 문제인가. 당장의 고용 불안이 없다고 나와는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 언제든지 내게 닥칠 수 있는 문제다.

힘 있다고 사람 함부로 대하는 세력에게는 힘없는 사람들이 함께 뭉쳐 맞서야 한다. 제주에서 단물만 빼먹고 내빼겠다는 대기업에게는 도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제주도민을 아주 우습게 아는 못된 외부 세력에게는 그에 맞는 응징을 해줘야 한다.

언제까지 중앙에, 대자본에 휘둘리며 살 것인가. 이는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도민 자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진칼에게도 당부한다. 노사협의에 제대로 응하라. 그리고 제주도민의 요구를 받아들여라. 제주의 하늘, 땅 그리고 지하수까지 활용해서 성장한 기업답게 이제는 제주도에 보답하라. 혜택만 누리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대기업답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 한진그룹은 거대 기업이다. 제주 자연의 도움과 제주 행정의 혜택으로 제동목장, 정석비행장, 표선민속촌, 파라다이스 제주, 서귀포칼 등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제주 지하수를 뽑아 만든 ‘한진 제주퓨어워터’로 수익을 내고 있지 않은가. 이들 부동산만 해도 천문학적 가치의 자산이다. 그 자산들, 도대체 뭐에 쓸 것인가? 돈이라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인간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않은가. 부디 돈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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