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난초. (사진=핀터레스트)
꿀벌난초. (사진=핀터레스트)

동백꽃이 동박새와 사랑을 나눈 뒤에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떨어졌습니다. 흰 보자기에 황금술잔을 올려놓은 수선화도 추사의 붓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일찍 나온 복수초가 찬바람에 놀라 노란 몸을 후드득 떱니다. 산수유는 팝콘이 튀겨 나오듯 노랑 망울들을 하늘에 쏟아냅니다. 이제 목련은 겨우내 입었던 솜털 옷을 벗어 하얀 속살을 드러낼 것이고, 진달래는 헐벗은 가지에 분홍 연정을 매달아 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꽃들의 전쟁이 시작되어 온 세상이 천연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봄은 꽃이고, 꽃은 봄입니다. 상춘객들은 산과 들로 몰려 나가 꽃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꽃은 자기 정자를 내보내고 다른 정자를 받아들이는 생식기인데 말입니다. 한껏 아름답게 치장하고 크게 벌린 생식기 앞에서 사랑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연인들을 보노라면 망측하기 그지없기도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춘정(春情)이란 말로 봄의 정취와 남녀 간의 성욕을 동시에 표현했나 봅니다.  

춘정이 났으니 사랑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생물들은 생식 성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수컷 공작이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고 도망갈 때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화려하게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된 것은 순전히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서입니다. 생존에 장애가 되는 크고 화려한 꼬리는 난관을 극복하는 뛰어난 DNA가 있다는 확실한 증표입니다. 더 좋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암컷은 당연히 크고 화려한 꼬리 깃털을 현란하게 펼치는 수컷에게 마음이 동합니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싼 식사를 하고, 선물 공세를 펴며,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합니다.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그 경향이 더 심해진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을 돋보이려고 살아가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는 외제자동차나 명품을 사고, 재미도 모르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등 과시적 소비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낭비는 생존 측면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생식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뿌리를 땅에 박은 식물도 상대방의 환심을 사야 자손을 남기는 유전적 사명을 다할 수 있는데  수컷 공작처럼 꼬리 깃털을 펼칠 수도 없고, 위대한 개츠비처럼 토요일마다 파티를 열 수도 없습니다. 영악한 식물은 중매쟁이를 통해 통정하는 것으로 역경을 이겨내었습니다. 

소나무와 같은 겉씨식물은 바람을 이용하여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부착시킵니다. 이런 식물을 풍매화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연한 바람을 이용하는 수분은 확률이 너무 낮아서 무진장 꽃가루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오월이 되면 송홧가루 천지가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꽃가루 만들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진화에 불리합니다. 속씨식물은 곤충을 이용해 꽃가루를 암술에 확실하게 묻히는 전략을 생각해냅니다. 그런데 친척도 아니고 선후배도 아닌 곤충이 공짜로 중매를 설 리가 만무합니다. 현화식물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꽃잎을 만들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달콤한 꿀을 숨겨 놓습니다. 

꿀벌은 현화식물이 가장 애용하는 중매쟁이입니다. 유엔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중 63%가량이 꿀벌의 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할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벌이나 나비 등 곤충을 통해 수분하는 식물을 충매화라고 합니다. 

충매화 중에 꿀벌난초와 광릉요강꽃이 있습니다. 꿀벌난초의 꽃은 꿀벌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보송보송한 털, 꿀벌과 같은 형태와 색, 같은 향의 페로몬으로 꿀벌난초꽃은 수컷 꿀벌을 완벽하게 유인합니다. 수컷 꿀벌은 가짜 암컷과 짝짓기를 하려다가 꽃가루를 몸에 묻히고, 그 꽃가루를 다른 꽃에 옮겨줌으로써 꿀벌난초의 성생활을 돕습니다. 

광릉요강꽃은 꿀이 없으면서 꿀이 있는 것처럼 꿀벌에게 사기를 칩니다. 꿀벌은 광릉요강꽃의 요강모양의 주머니에 꿀이 가득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들어가지만 그 안에는 꽃가루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허탕을 친 꿀벌의 다리에 꽃가루가 잔뜩 묻어 꿀벌이 다른 꽃을 찾아가면 암술머리에 꽃가루가 붙게 됩니다. 

4일 오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4일 오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내일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대선후보들 중에도 꿀벌난초나 광릉요강꽃같이 속이고 사기를 치는 후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사기를 치는 후보가 많은 것은 사기를 치는 후보도 우리가 뽑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시인의 ‘풀꽃 2’라는 시입니다. 독자님들은 이름과 색깔은 물론 모양까지 알고 나서 투표를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5년 동안 무임금으로 노동하는 불쌍한 꿀벌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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