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국제병원의 모습
녹지국제병원 건물. (사진=제주투데이DB)

중국 녹지그룹이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 개설 추진 여부는 제주도의 입장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녹지그룹 측에서 녹지병원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며 개설 의지가 없는 점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8일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김정숙 수석부장판사)에서 녹지그룹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 재판 심리가 열렸다. 

#녹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으로 큰 피해” 주장

이날 녹지그룹 측은 지난 2018년 제주도가 녹지병원 개설을 허가하면서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으로 인해 자신들이 비용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째 제주도가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다가 입장을 바꿔 녹지 측이 10년 가까이 피해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2005년 외국영리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제주도특별법 개정이 통과하고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영리병원 규제를 완화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정부와 제주도가 영리병원 도입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시민사회 단체와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다시피 했다. 이후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는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출한 녹지병원 사업계획서를 승인했다. 

둘째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은 의료법과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며 셋째 녹지제주가 당초 제출한 사업계획서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넷째 제주도가 ‘영리병원 개설 반대’라는 공론조사 결과까지 무시하며 허가를 했으면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둔 점이다. 앞서 지난 2018년 10월 영리병원인 녹지병원 개설 여부를 두고 제주도가 진행했던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불허’를 권고한 바 있다. 

이어 녹지 측은 “영리병원 추진 여부는 제주도청의 정책적 입장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는 요지의 의사를 밝혔다. 

#제주도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소송”

이날 제주도 측 변호인단은 녹지병원의 부동산(건물과 토지) 소유권이 모두 국내 법인(주식회사 디아나 서울)으로 완전히 이전이 됐고 이에 따라 관련 법규나 조례 상 외국 의료기관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이 불가한 점 등을 들며 반박했다. 

아울러 소유권 이전 등으로 인해 녹지병원 개설자체가 불가한 상황에서 이번 소송으로 얻을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022년 2월23일 오후 8시 기준 녹지국제병원 건물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로 소유권이 이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2022년 2월23일 오후 8시 기준 녹지국제병원 건물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로 소유권이 이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2022년 2월23일 오후 8시 기준 녹지국제병원 토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2988-1)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로 소유권이 이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2022년 2월23일 오후 8시 기준 녹지국제병원 토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2988-1)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로 소유권이 이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이 녹지국제병원 건물과 토지를 매입할 당시 매매가액이 562억원으로 명시돼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해 8월 주식회사 디아나서울이 녹지국제병원 건물과 토지를 매입할 당시 매매가액이 562억원으로 명시돼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이날 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서면으로 제출된 의견서를 참고해서 다음달 5일 오후 2시 판결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손해배상 소송이 진짜 목적”

제주도 측이 제기한 바대로 영리병원 개설 자체가 불가한 상황에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위법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소송은 의미가 없다. 이를 녹지그룹 측에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뭘까. 

관계자들은 향후 녹지그룹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할 수도 있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한다. 재판에서 승소하면 더 큰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날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 정책국장은 제주투데이와 통화에서 “이번 소송에서 녹지 측이 승소한다고 해도 어차피 병원을 개설할 수 없는 조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병원 개설 추진 여부에 대해 제주도의 입장에 따라서 가겠다고 한 것도 사실상 (녹지 측이) 병원 개설 의지가 없다는 걸 밝힌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득이 없어 보이는 이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향후 제기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17일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 손을 들어준 대법원과 이를 방관한 제주도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월17일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 손을 들어준 대법원과 이를 방관한 제주도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앞서 지난 1월 대법원은 녹지그룹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병원 개설허가 취소’ 소송에서 녹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제주도가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한 건 위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한편 병원 개설허가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났지만 녹지제주병원을 개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녹지국제병원 소유권이 국내법인으로 넘어가면서 제주특별법 307조 1항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자치도에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가 밝히고 있는 영리병원 개설 주체 조건에 맞지 않다. 

아울러 영리병원 개설 허가 요건 등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 제17조 1호는 “의료기관 개설에 따른 투자 금액이 미합중국 화폐 500만 달러 이상일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녹지병원 부동산이 국내의료기관에 완전 매각됨에 따라 녹지제주의 투자 금액은 ‘0’원으로 산정, 개설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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