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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부부의 제주 탐독]나는 결국 이 사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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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부부의 제주 탐독]나는 결국 이 사진으로 돌아왔다
  • 현택훈
  • 승인 2022.03.1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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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판타지』, 시린, 대숲바람, 2020
『로드 판타지』, 시린, 대숲바람, 2020

한때 사진을 배우려고 했다. 상가리에 사는 사진가 형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사진 수업을 들었다. 형은 내게 사진만 보여줬다. 사진첩을 펼치거나 웹사이트에 들어가 사진들을 보여주며 사진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사진기 다루는 법에 대해서 빨리 알고 싶은데, 형은 카메라 없이 사진 수업을 했다. 나의 조급한 마음 때문이지 그 수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 형을 따라 출사를 나간 적 있다. 화북동을 걸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는 마을이었다. 형은 사진 찍을 곳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곧 사라질 수도 있는 풍경이라서 그랬을까. 형은 내게 제주도를 다니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꼭 연락해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개 제주의 마을은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렇다. 시린의 글과 사진이 담긴 『로드 판타지』. 시린은 제주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 마을 풍경에 얽힌 감상을 썼다.

시린 사진가가 공저로 참여한 사진집 『제주시 중산간마을』과 『서귀포시 중산간마을』은 내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산간마을에 가까운 부록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중산간마을은 따뜻한 고향 느낌으로 다가온다. 토속적이면서 제주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인 것 같아 마음이 더 간다.

제주 마을을 사랑하는 사진가 시린은 가시리, 봉성리, 저지리, 신례리, 위미리, 금악리 등의 마을 사진을 책에 넣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중산간마을의 여러 모습과 함께 작가의 추억이 섞이면서 아름다운 기행문이 된다.

작가 자신을 길바닥 사진가라 지칭하는 시린은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기다림에 대한 삶의 철학을 말한다. 작가는 이주해서 살기 위해 미깡도 타고, 당근도 뽑고, 선과장, 초콜릿 공장 등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믹스커피의 맛에 빠져들었다. “손가락 굵기만 한 봉지에 쓴맛 단맛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하면서 믹스커피의 정에 순응한다.

그는 글을 쓰면서 제주어 낱말을 활용한다. 사진기를 들고 제주도 마을에 갔을 때 느낀 마음을 글로 쓸 때 제주어로 말해야 적절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있기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해온 작가인데, 제주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것만 봐도 그가 제주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주도 중산간마을의 풍경은 제주도만의 풍경은 아니다. 토평동에서 찍은 구멍가게 앞 평상 사진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라졌다면 추억으로 남아있는 마을 풍경이다. “가겟집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 이름을 붙여” 부르던 구멍가게다. 국수 사러 갔던 엄마가 냄비물이 졸아 없어지도록 오지 않는 건 평상에 앉아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던 그날들.

겁이 많으면서도 운전을 하는 작가는 로드 판타지를 꿈꾼다. 미끄러운 눈길을 가면서도 그 길 끝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진은 현재를 찍는 것 같지만, 찍는 순간 먼 후일까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기에 판타지다. “눈을 맞춘 풍경은 따스하다”고 말하듯 시린은 오늘도 낡은 자동차에 카메라 한 대 싣고 제주도 마을로 가 강생이, 오래된 가게, 골목길 등과 눈을 맞출 것이다.

시린과는 시 동인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가 사진을 찍는 건 결국 시를 쓰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나는 안다. 동인지에 실린 시린의 시는 잘 현상된 사진처럼 명징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시린의 시집을 받아볼 날이 올 것이다.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듯 어느 순간 시가 사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이 사진으로 돌아왔다.”고 말한 것처럼 시로 돌아올 사진과 글을 미리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보시라.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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