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자고등학교(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여자고등학교 정문(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여자고등학교의 일부 교사가 학생인권을 침해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올해 제주여고를 졸업한 김채은 씨는 지난 15일 졸업생들이 일부 교사들로부터 인권침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제주여고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다수의 졸업생들이 교사들로부터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공개된 기초조사 보고 자료에 따르면 일부 교사들은 이들에게 욕설과 여성혐오적 발언들을 일삼았다. 심지어 다리를 만지는 등 성추행 사례도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된 뒤 제주여고 측은 제대로 사과를 하는 대신 ‘학교 죽이기’이라며 맞섰다. 진순효 제주여고 교장은 입장문에서 극소수 일부 교사 때문에 교사 전체가 매도되고 있다면서 “아무 잘못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선생님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채은 씨가 학생 때가 아니라 졸업한 후에 폭로한 데 대해 은근슬쩍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진 교장은 입장문에서 “이 문제를 먼저 학교에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적인 절차이고 학생회가 할 일인데, 한번도 공식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이 한 학생회 임원이 졸업 후 학우들에게 개인적인 상처에 대한 하소연과 설문조사를 함께 병행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면서 “인권 교육보다 민주시민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자책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 교장은 교사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김채은 씨가 마치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표현했다.

이와 관련, 김채은 씨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아무래도 저도 어떻게 보면 겁쟁이여서 뒤로 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학시절에 말을 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피했던 것”이라면서 “왜 그때 안 하고 지금에서야 터트리는지 의문을 가질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공식입장보다 어른다운 성숙한 답변이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졸업생들이 학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학교에 항의 했을 때 학교 책임자(담당교사 또는 교장 등 학교 책임자)의 반응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친구가 담임교사에게 팔을 맞았을 때 교장실에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오히려 생기부(생활기록부)는 신경 안 쓰냐며 참으라고 함", "담임 교사에게 말했어요", "항의 할 교사조차 없었음. 정말 좋은 교사가 몇 분 계셨지만 그 교사들에게 피해갈까 차마 말하지 못함", "생기부 등 보복당할까봐 못함 그리고 0학년 때 친구가 교장쌤께 가서 말했을 때 대처가 많이 미흡한 것을 보고 여기서 말해도 달라질 게 없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냥 참음"이라고 답했다.

후배 재학생들 중에서 욕설과 폭언을 경험한 사례가 확인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김 씨는 “소수의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설문조사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그랬듯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졸업생인 김 씨가 용기를 내 이 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현 재학생들도 김 씨가 겪은 인권침해를 받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던 셈이다.

진 교장은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자책하고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민주시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 결과 김 씨가 학교의 잘못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재학생들이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할 수 있는 학교 내 민주주의는 아직 조성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만큼 발빠른 개선이 절실하다.

김 씨는 후배들의 학창시절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선물했다. 부조리와 불합리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측은 김 씨가 후배들에게 건네는 선물을 뭉개선 안 된다. 또한 제주도교육청은 이번 문제가 발생한 제주여고 뿐만 아니라 전 학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실태 현황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김채은 씨의 용기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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