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오전 외도동 제4투표소(외도 부영2차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오전 외도동 제4투표소(외도 부영2차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대선이 있던 날 종강하기로 했던 시민강좌가 2주 미뤄졌다. 코로나19와 곡절 많던 대선 때문이다. 주제가 ‘정치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철학’이다. 6월 지선이 남았으니 정치의 계절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지역 일꾼을 뽑는 일이기에 남은 지선이 더 중요하다.

이번 지선은 제주의 미래비전과 발전전략을 놓고 겨루는 패러다임 논쟁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국제자유도시 고수 세력’ 대 ‘생태인권평화도시로의 전환 세력’ 간에 한판 대결이 그것이다. 논자가 지난 1월부터 시민대상의 교학놀이에 나섰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정치철학을 가져와 오늘날 한국정치와 제주사회를 논하는 것이 생뚱맞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9강까지 교학놀이에서 확인했듯, 엄청난 시공간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생각거리는 줬다고 여긴다. 맹자는 자기 시대를 ‘정치가 사람을 죽이는 시대’라 진단했다. 노자는 심지어 알량한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까지 권력자들과 한 묶음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고대봉건시대의 헛소리로만 돌릴 수 없다. 

창칼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없지만,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확인되었듯, 우리사회에 만연한 빈부갈등, 학력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이 모두 정치로부터 근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또한 그렇다. 제주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제발 당선자와 차기 정부는 이러한 제반 갈등을 해소하며 사람 살리는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10일 오후 4시 19분쯤 20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사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MBC뉴스 화면 갈무리)
10일 오전 4시 19분쯤 20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사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MBC뉴스 화면 갈무리)

제주만의 사정이 아니겠지만, 한 줌도 안 되는 기교로 권력자와 백성들을 선동하는 정치에 관여해온 지식인들의 행태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제주사회를 혼란으로 이끌어온 갈등적 주제들에 그들이 관여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무장 평화의 섬을 주장했다가 발뺌한 이들도 그들이었고, 국제자유도시 건설의 장밋빛 미래를 부추긴 것도 그들이었다. 온갖 난개발 사업들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 또한 그들이었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정당화 논리가 정치마당에서 채택되는 순간 도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책사업이고 주민숙원사업으로 둔갑되었다. 그리하여 정치 권력자, 추종 지식인, 자본 개발세력들이 연합하여 일방적으로 사업추진을 밀어 부쳐왔다. 국제자유도시, 해군기지가 그랬고, 논란중인 제2공항 또한 그렇다.   

주권재민 시대가 아니었지만 제자백가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정치이념은 민본주의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위정자들이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정치를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안보나 경제적 이익보다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맹자는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정치를 주장했다. 

순자와 한비자는 예와 법이라는 객관적 규범에 따라 공정하게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묵자의 주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권력에 의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고, 밑으로부터의 공론과 공리적 실용성에 바탕을 두는 정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15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정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제2공항 사업계획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15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정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제2공항 사업계획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백성들의 일반의지에 토대한 상동(尙同)의 정치가 그것이다. 국책사업이든 숙원사업이든 백성들의 여론과 공론에 토대해야 하고, 백성들의 삶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대로, 백성들의 여론과 공론에 반하는 사업이라면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맹자가 사회적 약자를 먼저 돌보는 정책을 인의(仁義)정치의 출발이라 했다면, 묵자는 처음부터 차별 없는 사랑과 이익을 똑같이 나누는 겸애교리(兼愛交利)의 정치를 주장했다. 초점이 다르지만 묵자도 맹자도 출발의 공정과 결과의 평등에 주목한다. 

순자와 한비자는 과정의 정의를 주장했다. 공정과 정의와 평등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야말로 대동(大同)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이번 대선의 화두였기도 했지만, 지방정치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에 공정과 정의와 평등의 가치는 자연생명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일찍이 공자도 이 점을 설파했다. 마구간에 불이 나자 사람에 이어서 말의 생명을 물었다. 

그러나 양자, 노자, 장자는 사람과 말의 구분에 앞서 생명 자체에 더 주목했다. 양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귀생(貴生)주의를 말한다. 노자와 장자는 세상만물이 기(氣)의 생명력으로 연결된 하나이면서 다양성인 유기체적 생명공동체임을 선언했다. 그래서 노자는 사심(私心)과 인심(人心)대신 무심(無心)과 허심(虛心)으로 몸(생명)의 자연성에 따르는 무위(無爲)정치를 주장한다. 

장자는 세상만물의 다양성을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여기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동덕(同德)의 정치를 주장한다. 더 이상의 경쟁 만능과 개발 광풍을 멈추고 이제 우리는 이들로부터 녹색정치를 본받아야 한다. 이것은 제주만이 아니라 지구촌 정치가 나아가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국제자유도시폐기와제주사회대전환을위한연대회의(사진=제주투데이 DB)<br>
국제자유도시폐기와제주사회대전환을위한연대회의(사진=제주투데이 DB)<br>

논자는 지난 글(2월 18일 기고)에서 국제자유도시의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대신 생태인권평화의 가치를 담아내는 미래비전과 발전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백하자면, 논자는 이번 제주 지선이 국제자유도시 고수 세력과 생태인권평화도시로의 전환 세력 간 한판 대결을 기대하면서 후자를 편드는 입장이다(물론 생태인권평화도시 전환세력이 있다면). 

이러한 입장에 서는 것은 제자백가들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는 측면도 있지만, 생태인권평화의 이념이야말로 제주인들이 형성해온 문화문법에 맞는 가치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문화문법이란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인들이 삶의 역사를 꾸려오면서 무의식적 사고가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준영구적 사유구조물처럼 잘 변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제주인들도 제주문화문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자의 주장도 알량한 지식에 토대한 것일 수 있다. 

이번 제주 지선이 국제자유도시 고수 세력 대 생태인권평화도시 전환 세력 간 대결이 될 경우 관건은 생태인권평화도시의 비전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발전전략과 정책이 무엇이냐에 있다. 국제자유도시를 폐기하더라도 도민들의 삶이 더욱 풍족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생태인권평화도시로의 전환세력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특정 정책기획자나 지식전문가에서 나온 아이디어로만 승부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제자백가의 가르침처럼 밑으로부터 도민들의 요구를 들어 전략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마을에서 읍면동으로, 읍면동에서 시로, 시에서 도로, 도민들의 뜻을 물어야 한다. 정책기획자나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지점은 이러한 도민의 뜻이 모아진 이후이다.  

*덧. 10주 동안 얼치기 학자의 강좌를 수강하느라 수고하는 시민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공동주최자로 나섰던 (사)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제주투데이’에게 지면을 통해 거듭 고마움을 표한다. 참여적 민주시민들과 그들의 연대가 깊고 넓어질수록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다가오는 지선에는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강봉수.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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