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선생』 강석주, 한그루, 2020
『맹추선생』 강석주, 한그루, 2020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생각의 교환1(클릭)'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청소년 책 활동가 ‘나를 6기’ 학생들과 『맹추선생』에 실린 단편 소설 중 「잠과 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열다섯 살 H는 『맹추선생』의 전체 주제를 교학상장이라고 말한다. 배움에는 서로 아래 위가 없다는 것이며, 학교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서로 성장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선생님 입장에서 썼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다.

J도 열다섯 살인데, 책을 충분히 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피피티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책 내용을 충분히 숙지했음을 보여주는 피피티를 준비한 경우가 많았다. 열세 살 H는 작가에 대한 설명을 오래 했고 책 내용도 정말 꼼꼼하게 요약해 발표했다. 쪽파를 써는 듯한 목소리로 발표했다. 어떤 음식이라도 마무리는 쪽파나 깨로 단장하는 솜씨 좋은 사람처럼. 앞으로 무엇을 하든 마무리까지 다정하고 단단하게 할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발표를 듣는 내내 맛있는 기분이 들었다.

열세 살 K는 인상적이었다. EBS에서 제작한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방송을 5분으로 줄여서 편집해 왔다. 준비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이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들이 많은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이라 말했다. 비장한 발표였다. 곧 자신도 중학생이 되는데 경쟁이 치열한 중학교로 성큼 성큼 들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무엇인가 전투태세를 갖춘 심정으로 발표하는 것 같았다.

이어 '만약 당신이 교사라면 잠자는 학생들을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자본 적 없는 예비중학생들은 잠자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벌점과 훈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학생은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얼음물을 부어야 한다거나, 잠을 잘 것 같으면 옷을 더 가지고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을 본 적 있거나 자신도 자 본 적 있는 중학생 선배들은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말한다. 다만 놀라운 것은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 선생님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보다 학생들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결국 잠자는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모으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자신의 교실에서 잠자는 친구를 만나거나 자신이 잠이 들었을 때, 그들은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할지 생산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문학의 쓸모는 그런 것이면 좋겠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통과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마음으로 밑줄을 그어 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문학이 그런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

사전에서 ‘교환(交換)’을 찾아보면 서로 바꾸거나, 서로 주고받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전화나 전신이 통할 수 있도록 사이에서 선로를 연결해 준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나는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도 시를 쓰기 전에 사전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단어를 설명하는 문장에서 마음이 가는 단어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나는 그 버릇을 마음의 밑줄을 긋는 것이라 표현한다.

가령 교환이라는 단어를 찾으며 마음의 밑줄을 그은 단어는 ‘선로’다. 『맹추선생』을 쓴 강석주 작가는 동료교사들이 자신의 소설집을 읽으며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즐겁고 다양한 방법을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교환’이란 서고 주고받는 의미를 넘는다. ‘선로’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서로 생각을 교환하며 학생들과 함께 나아가는 길을 만들자는 뜻일 것이다.

제주에서 자신의 역할을 중심으로 쓴 10편의 소설을 엮은 『맹추선생』을 추천하며 문학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나는 요즘 소설가가 많은 지역에는 부조리가 적다고 근거 없이 중얼거린다. 당신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소설가의 작품을 언제 읽어 보았는가. 보통 제주도 소설이라고 하면 이름을 떨친 사람들의 작품만 떠올릴 것이다. 의미 있는 역사 소설을 읽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 활동하고 집필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는 일도 중요하다.

소설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일을 상상한다. 나는 시를 쓰고 있지만, 지역에 소설가가 좀 많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2022년부터 시옷서점에서 ‘좋아서 소설 쓰는 사람들의 모임’을 시작했다. 줄여서 ‘조스소쓰’라고 부른다. 단편소설을 쓰고 3주에 한 번 모여 생각을 교환한다. 생각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모여 3주에 한 편의 단편소설이 탄생한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