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주섬에 온 이들은 지상낙원을 보았다. 한라산은 넘치는 열매와 사냥거리를 주었고, 포악한 태풍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바다에선 사시사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늑대와 같은 포악한 맹수도 없었다. 곳곳에 천연 동굴이 넘치고 날씨가 따뜻해서 굳이 옷을 껴입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가 바로 에덴 동산이었다. 소천국이 사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은 몸집이 작고 머리를 깎고 가죽옷을 입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다” 《후한서》 (동의열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것이 이브였듯이, 소천국의 아내인 금백주(백주또)는 신의 뜻을 어겼다. 그것이 농경이다.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는 일은 자연이 선물한 에덴동산을 버리고 스스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었고,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짐승을 잡아 고기는 먹고, 힘줄로 활을 만들고, 가죽으로 옷을 입었으나 그것은 이제 야만이었다. 이브가 그랬듯이 금백주는 부끄러움을 알려줬다. 옷감을 짜서 아랫도리를 가려야만 했으니 소천국으로서는 금백주가 탐탁치 않았다. 어느 흉년이 든 해에 소천국은 소를 잡아먹고 수렵생활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결별은 필연, 금백주는 결국 소천국을 떠났다. 그때 뱃속에는 막내아들 궤네기가 있었다.

어느 정도 자란 궤네기는 아버지를 만난다. 궤네기는 아버지의 수염을 뽑는 불경한 짓을 저질러서 무쇠궤짝에 갇혀 바다에 버려진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으니 그 결과 힘을 봉쇄당한 것이다.

바다를 표류하던 궤네기는 용왕국 사람들에 의해 건져졌고 용왕의 막내딸에 의해 함이 열린다. 많은 곳에서 알,함,궤에 갇혀 표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인류가 씨앗의 발아나 알의 부화, 뱀과 같은 동물의 탈피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형상화한 신화적 은유인 셈이다. 즉 궤네기는 바다건너 어느 부족의 막내딸, 아마도 그곳의 낮은 지위의 사제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그로인해 새로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궤네기는 엄청난 식성으로 인해 용왕국의 곳간을 비게 하였다고 한다. 민초들의 응원과 신뢰를 얻어 세력을 갖게 된 사실의 은유일 것이다. 결국 용왕국에선 궤네기에게 떠날 것을 종용하고 궤네기는 용왕의 막내딸과 결혼하여 강남천자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벌어진 반란을 평정한다.

엄청난 군사능력을 보여준 궤네기는 강남천자국 땅의 절반을 주겠다는 제안도 마다하고 제주섬으로 돌아왔고, 한라산 바람목에 깃든 한라산신이 된다. 한라산신이란 제주에선 모든 오름마다 마을마다 존재하는 신들, 즉 여러 부족들을 평정하고 제주섬의 유일한 절대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궤네기의 이름은 절대자란 의미의 ‘천자또’, ‘천자또마누라’ 혹은 바람목에 깃든 신이란 이름으로 ‘보로못또’라고 불리게 된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이전 고대사회에서 왕의 죽음은 고조선의 단군처럼 태백산의 산신이 되기도 하고, 고구려의 소수림왕처럼 죽어서 묻힌 곳의 이름에 따라 왕호가 정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궤네기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죽어서 신이 되었다.

이후 탐라국이 고씨를 중심으로 세습왕조가 세워지면서 궤네기를 추종했던 사제들은 흩어졌다. 그들은 여전히 궤네기를 추모했고 궤네기또, 보로못또 천자또 천자또 마누라라는 이름으로 각 마을을 지키는 당신으로 계속 남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또’는 우두머리 즉 신을 의미하며 궤네기또는 궤네기신, 그리고 궤네기한집과 같이 한집이란 말이 붙기도 한다. 한집은 주인을 의미한다. 천자또는 천자신, 천자또마누라의 마누라는 대왕마마와 같이 높은 존재에 붙는 말로, 우리역사에서도 역시 19세기까지 존재했다가 아내를 뜻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보로못또는 바람목의 제주어 ㅂㆍㄹㆍㅁㆍㅅ에서 나온 말이다.)

궤네기가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바다에서 들어오자 소천국과 금백주, 그리고 소천국의 두 번째부인인 세명주는 달아나 송당의 세 마을의 신이 된다. 이 셋은 벽랑국 공주가 제주로 올 때 가지고 온 가축, 종자, 그리고 비단을 상징한다는 것도 이후 탐라국건국신화와 잇닿는다.

그들의 아들과 딸, 자손들이 제주 곳곳에 흩어져 그곳의 마을신이 된다고 한다. 송당은 부족의 제사장들이 들어간 소도인 셈이다. 소도 즉 솟당이 바람 많은 제주어에서 유음으로 변하면서 송당이란 말로 변한게 아닐까 한다.

궤네기는 단숨에 제주 지배자가 되고 초기 탐라국이 탄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궤네기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왕국의 지배자가 되는 엄격한 의미의 고대국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먼 훗날, 기록에 의하면 서기 900년경, 마침내 제주도의 지배자가 된 고씨가문이 자신의 동반자인 두 부족과 함께 고대국가로 성장하여 후기 탐라시대에 세워졌다. 그들은 송당본향당 설화를 이용하여 을나신화를 만들었고 정치적으로는 궤네기의 흔적은 지워진다.

궤네기는 제주도 곳곳에서 다양한 이름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고, 워낙 보편성을 가진 스토리라인이라 주인공을 여성으로 하는 등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기도 한다.

제주시 용담동 한천부근에 있었다는 내왓당엔 천자또마누라가 모셔져있었다. 이곳은 바다로 오가는 곳이므로, 궤네기가 제주에 돌아와 세력을 떨친 곳으로 여겨진다. 주변에 고인돌유적과 무덤유적, 거주유적이 있으며 중국·낙랑과 교류했던 흔적도 엿보인다. 바다를 호령하던 궤네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천자또마누라는 내왓당에 모셔진 12신 중 하나이다. 수많은 신들이 이곳에 모셔진 까닭은 궤네기세력이 쇠퇴하고 다른 신, 즉 여러 부족들이 병립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왓당무신도 중 천자또마누라 제주시 용담동 용연부근에 있었다는 내왓당은 각각 세고을의 대표당인 제주목 광양당, 정의현 서낭당, 대정현 광정당과 더불어 제주도 4대 당 중 하나였다. 내왓당에는 12신이 모셔졌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사라지고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개인이 소장하던 무신도만 제주대학교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이다. (제주대학교박물관)

궤네깃당이 있는 구좌읍 김녕리에서는 궤네기또 신화의 뒷부분에 돼지고기를 바치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궤네기는 제주에 들어와서 소천국을 위해 제사를 지내주고 자신은 김녕궤네기굴에 깃든다. 처음 궤네기는 소를 제물로 바치길 원했지만 그 귀한 소를 제물로 바칠수 없다는 동네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돼지를 제물로 바치도록 한다. 이후 궤네깃당에서는 돗제가 열리는데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바친 후 마을사람들과 나눠먹는다. 이때 고기는 남기거나 절대 보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것이 이후 제주도 집안행사에서 돼지고기를 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풍습을 만들어낸 듯하다.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궤네기동굴 궤네기신화를 간직한 부족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발굴된 동물뼈는 91%가 멧돼지뼈이다. 멧돼지는 사납기 때문에 집안에서 사육할 수가 없고 일정한 구역에서 방목형태로 길렀을 것이라고 한다. 워낙 농작물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서 곳곳에서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가 있었고 그것이 미식신과 육식신의 갈등으로 나타났을 것이라고 한다. 궤네깃당에서 벌이는 돗제에서 궤네깃또본풀이와 함께 금상또본풀이가 나란히 구연됨으로써 두 마을사이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돗제의 돗은 돼지를 뜻하며 제주에서도 구좌읍 마을 일부에서만 벌어진다. 마을사람들은 돗제를 도새기식개(식개는 제사를 뜻하는 제주어)라고 부른다. 궤네기는 굴을 뜻하는 제주어 궤와 사람을 뜻하는 내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굴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진=고진숙)

이웃마을인 구좌읍 세화본향당은 더욱 흥미로운 본풀이(서사시)가 남아있다. 이곳에는 천자또와 백주또 그리고 금상또 세명의 신을 나란히 모신다. 천자또 즉 궤네기부족의 일부가 탐라국 중심지인 용담지역에서 이탈,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 떠났고, 그중 한무리가 세화에 도착했다. 그런데 바다건너온 농경부족인 백주또집단과 육지에서 온 금상또집단도 이곳에 들어왔는데 이들은 갈등없이 함께 지낸다.

제주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신인 미식신과 고기를 먹는 육식신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렇듯 부족간 문화갈등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신화로 남겨졌다. 그런데 세화에선 미식신인 백주또와 육식신인 금상또가 함께 공존하는데, 이것은 마을의 설촌유래와 잇닿아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본향당이 있는 곳이 마을이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하는데 이 앞 마을이름은 ‘모듬밭’이란 뜻의 합전동이다. 유래에 따르면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밭을 나눠 경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신화는 이렇게 마을의 형성과 마을과 마을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이면서 지리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궤네기를 따라 함께온 용왕국막내따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곳에서 궤네기는 용왕국막내따님을 버리고 새로운 부인과 결혼하는 것으로 나온다. 새로운 부인은 토착세력일 것이다. 즉 궤네기도 결혼동맹을 통해서 탐라국을 건설해야 했고, 그만큼 토착세력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소천국을 위해 제사를 지내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토착민들에게 환대받지 못하고 버려진 용왕국막내따님의 결말은 그러나 비극이 아니다. 용왕국막내따님은 흔히 고대의 사제들이 그렇듯이 아이를 받는 산파일을 하거나 산후조리를 돕거나 아이들의 잔병치레를 고치거나 했을 것이다. 특히 제주에는 풍토병으로 부스럼과 같은 피부병이 많았다. 용왕국막내따님은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능력을 인정받아 신으로 모셔진다. 일뤳당이라고 해서 매달 이레에 찾아가는 당은 피부병을 다스리는 여신을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여신이 바로 용왕국막내따님이다. 그녀는 돼지고기를 먹거나, 냄새를 피워서 남편에게 버려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산모들의 영양공급이나 아이들의 피부병 특효약으로 돼지고기를 이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 곳곳에 있는 일뤳당은 바다건너온 여신을 모시고 있으며 그것은 용왕국막내따님의 해피엔딩을 뜻한다.

세화본향당과 일뤳당 모든 것을 모두고 조화를 이루어 살기를 좋아한 세화본향당은 아예 일뤳당이 본향당과 담벼락하나를 두고 나란히 있다. 원래는 큰 나무 두그루가 있었지만 단골들이 많이 줄자 신도 떠났는지 나무가 다 썩어간다고 한다. (사진=고진숙)

제주는 1만 8000 신들의 땅이고 신을 모시는 당만 해도 300여개나 된다. 한 마을당 무려 1.5개나 된다. 일본의 신화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란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라고 했다. 매우 흥미로운 철학을 담은 일반신본풀이,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지리지를 담은 본향당본풀이 그리고 집안의 내력을 담은 조상신본풀이까지 제주신화는 인류의 정신문명의 보고이면서 지금까지도 민초들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신화이다.

한라산 영실 선작지왓 털진달래 궤네기신화와 유사한 이공본풀이에 따르면 아버지 사라도령의 뒤를 이어 할락궁이가 서천국 꽃감관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한라산은 할락산이라 하듯 할락궁이도 한라산 신이란 뜻으로 여겨진다. 아버지 사라도령이나 서천국도 소천국의 본명인 소로 소천국과 비슷하다. 제주신화는 구전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음이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라산 영실은 신의 거주하는 곳이란 뜻이다. 이곳의 따님과 천자또가 결혼했다고 하는데 힘든 영실코스를 오르고 나면 넓은 평지가 고지위에 펼쳐지며 그곳에 핀 털진달래를 보면 서천국꽃정원이란 생각이 든다. 신화속 바람목과 서천국은 이곳이 아닐까? (사진=고진숙)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올해부터 매월 세번째 월요일에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옛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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