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혜미님이 추천해주신 <조지오웰 산문선> 잘 읽었습니다. 조지오웰을 그저 ‘동물농장’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한 글들을 써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또한 글 하나 하나가 다양한 고민 점을 던져준 것 같습니다. 정치 언어가 대체로 완곡어법, 논점 회피, 아주 불분명한 애매함으로 구성된다는 것. 그렇기에 생명이 담긴 정치를 열망한다는 의견에 저 또한 공감합니다.

오늘 제가 혜미님께 드리고 싶은 주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처벌 강화’ 논쟁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윤석열 당선인의 대표 청년 공약이었죠. 어떻게 이러한 공약들이 청년 공약인가는 차치하더라도 극단적 입장과 갈등을 촉발하는 것들을 청년을 팔아가면서 내놓았나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 처벌 강화’ 논쟁 속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소년심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혹자들은 ‘소년심판’을 보면서 흉악범죄를 일으키는 사례를 통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의 당위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본 ‘소년심판’은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는 드라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심판 스틸컷 (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넷플릭스)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판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러 가지 청소년 흉악범죄 사례 속에서 얼마나 우리 사회가 촉법소년에 대해 무심한지, 그리고 범죄를 일으킨 자식을 부모들이 과도하게 보호하거나, 내버려 두고 있는지, 또 소년범들의 재판이 얼마나 열약한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지 등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정작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했던 판사가 얼마나 ‘소년’들을 지키고 싶어서 하는지를 담아낸 것 같습니다.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렸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할 겁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뜻도 돼”

촉법소년.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에 있는 아이들이 일으킨 범죄. 과연 우리는 자유로울까요.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만 죄를 지울 수 있을까요.

물론 죄를 짓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작 저 어린 아이들이 범죄를 우습게 알고, 범죄가 벌어지는 구조 속에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 아닌가 싶습니다.

촉법소년은 마치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기록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도 분명 수감까지 이뤄질 수 있죠. 또 형법상의 기록으로는 남지 않지만, 그들이 다시 범죄와 연관됐을 경우 조사과정이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극악한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어야겠지만, 재범 방지를 막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클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심판의 작가인 김민석씨는 “오랜 취재를 통해, 결국 소년사건은 무엇 하나로 인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나 가정환경, 친구관계 등과 실타래처럼 얽혀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법관으로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법정은 감정이 없다’ 그래야지, 어떤 편견도 없이 냉철한 처분을 낼 테니까요. 그러나 너무 뒤늦게나마 이 소년 법정에서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어른으로서”

작품에서 나왔던 이 대사를 촉법소년 연령 하향,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분들에게 다시 던져봅니다. 근본적으로는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을, 그저 쉬운 방법으로 눈가림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에게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을 가진 채 촉법소년 문제를 대하고 있는지를.

여성가족부 폐지,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뜨거운 논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저 논란이 차갑기만 할까요. 혜미님 말씀처럼 생명이 담긴 정치가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현재의 논란들이 단편적으로 그치지 않고, 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무엇이 답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따뜻한 마음으로 생명을 담은 정치가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강보배

전국을 노마드처럼 다니며 청년을 연결하는 제주 토박이. 회사 상무님들이 무서워한다는 90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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