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사)제주민예총 4·3문화예술제 사업단 엮음, 각, 2002.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사)제주민예총 4·3문화예술제 사업단 엮음, 각, 2002.

올해는 다랑쉬굴 발굴 30주년이 되는 해다.

1948년 12월 다랑쉬굴에 11명이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2년에야 유골과 유물이 햇빛을 보았다. 다랑쉬굴 희생자 유해 발견이 갖는 의미는 4·3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다랑쉬굴 발굴 10주년을 맞이해 낸 책이다. 다랑쉬굴 사건에 대해 소상히 기록되어 있고, 유골 사진이 그대로 실려 끔찍한 역사를 제대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또 20년이 흘러 30주년이 되었다.

다랑쉬굴 입구는 매우 좁아 한 사람이 뒷걸음으로 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넓이다. 시신 중에는 여자와 어린이도 있다. 4·3 당시 토벌대는 굴속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고, 불을 지펴 연기로 질식사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굴속에서 질렀던 절규는 지금 흙과 돌로 덮여진 채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 현장조사를 한 일행은 그곳에서 제를 올렸다. 축문에는 “여기 비좁고 깜깜한 동굴속에서 방황하고 고통받는 조상님네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기 위해 찾아온 후손들의 정성이오니 초라하다 마옵시고”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들은 우리 후손들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어두운 굴속에서 육탈되어 뼈만 남은 채 44년이 흘렀다. 그 44년은 침묵의 세월이었다.

당국은 다랑쉬굴 입구를 서둘러 막아버렸다. 국가에 의한 잘못이 드러난 것이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 공무원들은 유골들을 직접 들어 옮기면서까지 화장을 해버렸다. 슬픔을 나눌 장례식이 파행적으로 치러졌다. 유해가 김녕 앞바다에 뿌려진 날에 다랑쉬굴 입구는 완전히 봉쇄되었다. 발견되면 안 될 것을 들킨 듯 포클레인으로 마구 헤집어 메워버렸다. 다랑쉬굴 4·3 희생자 장례식을 도민장으로 치루고 4·3의 한을 달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문서와 증언만으로 알려졌던 수많은 집단학살의 실체가 드러난 다랑쉬굴 발굴은 4·3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고증한 발굴이다. 깜깜한 굴속에 방치된 유골은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된 4·3의 진상에 대한 상징이다. 이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는 4·3 진상조사에 대한 행정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어디 다랑쉬굴 그곳뿐인가. 동광리 큰넓궤, 동백동산 목시물굴, 어음리 빌레못굴 등 살기 위해 숨어든 그곳이 통째로 죽음의 관이었다. 그곳에 숨어든 사람들은 이 난리가 곧 끝나 다시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지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농부는 땅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랑쉬오름 아래에는 다랑쉬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에는 그래도 팽나무가 아직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팽나무는 제주 마을에서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한다. 다랑쉬마을 팽나무 그늘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올해 농사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전부터 있었던 난리와 같이 봉화가 올랐고, 마을 사람들은 매번 그랬듯 동굴이나 풀숲 사이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다랑쉬굴에 있었던 사람들은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사람들이었다. 희생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가족 단위 구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였다. 굴속에는 놋그릇, 놋수저, 가위, 요강, 석쇠, 화로, 구덕 등의 생활도구가 있었다.

이제 30년이 흘렀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2013)은 그렇게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그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굴 속에 숨어 지슬을 먹으며 버텼다.

박제형 동화작가는 동화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베틀북, 2003)를 썼다. 4·3 당시 어린이 희생자들은 어린 넋으로 해마다 봄이면 노랗게 복수초로 핀다. 복수초는 오름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이르게 다녀간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종형 시인은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삶창, 2017)을 냈다. 다랑쉬굴 발굴 30주년인 올해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30년의 세월이 부끄럽지 않았는지, 또 앞으로의 세월을 생각하며.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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