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음악 관계자 몇 사람과 함께한 자리였다. 팝음악의 황금기였던 90년대 음반에 관해 토론하다 각자의 음악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뮤직바를 운영하는 한 선배는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코딩 엔지니어인 친구는 톤과 사운드 밸런스, 악기들의 공간감 등이 먼저 들린다 하고,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음악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모나지 않은 공감력 등을 유심히 듣는다고 한다. 다분히 직업적인 관점이긴 했지만 저마다 다른 음악을 듣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어떨까? (매번 그렇진 않지만) 습관적으로 악곡을 분석하곤 한다. 기악 연주자들은 악기의 라인과 톤, 사운드등을 주로 체크한다. 물론 멜로디와 화성의 움직임을 중시하기도 하고 때론 각 악기들의 질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복잡한 구성의 곡이라면 박자와 리듬에 집중 할 것이다.

보컬리스트 역시 목소리의 음색이나 호흡, 아티큘레이션 등을 세밀하게 듣지만 멜로디와 화성을 무시할 순 없다. 프로듀서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좀 더 넓은 시야로 선명하게 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과 별개로 그냥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음악이 있다. 분석 따위는 생각치 못 할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삼켜버리는 그런 음악이. 그날이 그랬다.

2002 월드컵의 뜨거웠던 열기가 조금씩 꺼져 갈 무렵, 막 서른이 된 나는 서울에서 밴드생활을 접고 제주로 돌아 왔다. 본격적으로 재즈를 공부 할 맘으로 술, 담배는 물론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고 칩거를 시작했다. 외국의 재즈 이론서를 번역하고 기타를 연습하고 무지막지하게 재즈를 들었다. 그러기를 몇 달, 밥벌이는 해야겠다 싶어 모 은행의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일은 수월했다. 하루일과의 대부분은 외근이었고 차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퇴근하면 새벽까지 기타를 쳤고 자기 전에 다음 날 들을 시디를 한 장씩 만들었다. 컴퓨터 속 수천 개의 음악파일에서 골라낸 나만의 Jazz Mix-tape.(당시엔 저작권법이 자리를 잡지 않았을 때라 마음만 먹으면 여러 사이트에서 희귀한 재즈음반을 다운 받을 수 있었다) 시디 앞 면엔 곡목과 함께 연주자의 이름도 꼼꼼히 써놓았다.

그날도 차 안에 혼자 남게 되자 언제나처럼 시디를 꺼내 틀었다. 창문을 닫고 음악 볼륨을 높였다. 몇 곡의 익숙한 재즈가 흘러나온 뒤 독특한 톤의 기타컴핑이 들려왔다. 리디안 모드계열의 부유하는 듯한 보이싱이 인상적이었다. 안개처럼 묘한 기운이 스멀스멀 차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곡은 다른 재즈음악처럼 강하게 스윙 하지 않았고 드럼이 리듬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의 나른한 비트를 타고 짙은 질감의 색소폰 솔로가 터져 나왔다.

시작과 끝, 경계를 알 수 없는 음악들 위에 본격적인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난 차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많은 감정이 녹아든 기타선율에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노곤했다. 이윽고 곡이 끝난 뒤 얼른 시디를 꺼내 음악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Mick Goodrick <Feebles, Fables and turns>

그 곡을 듣고 난 후의 '나'는 그 전의 '나'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내 안의 어떤 체계가 새롭게 재구성된 느낌이었다. 차문을 열고 나오니 훅하고 바람이 불었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 후로도 난, 여전히 기타를 연습하고 여전히 곡을 쓰고 분석하고 여전히 작은 클럽에서 연주를 한다. 내 안의 세계는 바뀌었지만 나를 둘러싼 내 밖의 삶은 변한게 없었다. 단지 음악으로 뭘 이루겠다는 조급한 마음은 사라졌다. 가끔 그 곡의 멜로디가 떠오르면 어디선가 비릿한 바다냄새가 날 뿐이었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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