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유족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유족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또 하나의 역사가 쓰여졌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처음 이뤄진 특별재심에서 청구인 33명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후 2시 4.3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과 포고령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태명(90)씨 등 33명에 대한 특별재심 공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지난해 5월 20일 재심 청구 이후 10여개월만이다.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후 2시 4.3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과 포고령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태명(90)씨 등 33명에 대한 특별재심 공판을 열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후 2시 4.3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과 포고령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태명(90)씨 등 33명에 대한 특별재심 공판을 열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청구인 측 변호인은 “4.3 당시 공소사실 모두에 대해 부인한다. 과거 판결받은 사실은 있지만 공소사실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재판부에 무죄를 요청했다.

이번 재판 청구인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고씨는 “열일곱살에 야학을 한 죄 밖에 없는데 경찰이 두들겨 패고, 전기고문을 당해서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한다”면서 “이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재판부가) 잘 판단해 달라”고 토로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최초의 특별재심인 이 사건에 대해 다양한 법리적 판단이 있었다. 그만큼 지난 6개월 동안 충분한 심리를 벌였다”면서도 “유족분들의 고통에 공감, 사과와 위로 말씀을 전한다.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피고인 전원에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5분 동안 휴정한 뒤 재판을 재개해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하지만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제출한 증거가 없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된다”면서 피고인 전원에 무죄를 선고했다.

희생자 유족이 제주지법 201호 방청석에 앉아 특별재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희생자 유족이 제주지법 201호 방청석에 앉아 특별재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4.3 희생자 유족이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4.3 희생자 유족이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족 및 관계자는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보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재심 청구자는 모두 34명이지만 개시 과정에서 1명이 제외됐다. 제외된 분도 잔혹한 피해를 받았지만 요건 상 재판받지 못하게 된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제외된 1명은 4.3 당시 일반재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 전 목숨을 잃었다. 재판부는 재심대상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으로서 해당 희생자가 재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4.3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늘 분노하며 살아왔다”면서 “오늘 희생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감회가 든다. 아직 한을 풀지 못한 희생자들이 만이 남아있다. 이들의 명예가 제대로 회복되는 그날까지 애쓰겠다”고 울먹였다.

장찬수 부장판사가 재판 청구인 33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뒤 재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장찬수 부장판사가 재판 청구인 33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뒤 재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생존 수형인 고태경(90)씨가 29일 특별재심 재판이 끝난 뒤 제주지법 정문에서 무죄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생존 수형인 고태경(90)씨가 29일 특별재심 재판이 끝난 뒤 제주지법 정문에서 무죄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선고가 끝난 후 제주지법 정문에서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생존 수형인 고씨는 “무죄를 받은 것은 죽었다 살아서 온 것 같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다 여러분 덕분”이라면서 소회를 전했다.

4.3도민연대는 “오늘 재판부의 판결은 미완으로 남아있는 일반재판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법 정의를 실현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도민연대는 그러면서 “공권력에 항의하면 공무집행 방해죄가 되고, 국가보안법 죄명의 죄인이 되어야 했던 부끄러운 역사는 국민.도민의 지속적 관심과 성원 속에 오늘의 성과를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은 4.3특별법 전면개정 이후 처음 이뤄진 특별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의미를 갖는다.

앞서 이날 오전엔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40명이 직권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한편,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르면 4·3 희생자로 결정되면 피해 당사자나 유족이 특별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아울러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고등군법회의 명령서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 당사자가 아니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