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 앨범.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 앨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4년 나에게 굉장히 흥미롭고 감사한 옴니버스 음반이 발매되었다.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 앨범>은 제주MBC에서 제작하고 4·3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의 노래(연출 권혁태)>에 수록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8년이 지난 음반이지만 지금까지 발매된 4·3 관련 앨범 중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음반으로 남아있다. 참고로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는 현재 유튜브에도 <제주4·3_음악다큐 '산·들·바다의 노래'_ 2014년_제주MBC> 이름으로 약 50분가량의 영상으로 업로드되어있다.

홍대 인디 씬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요조'와 한국 힙합의 뿌리 깊은 나무이자 1세대 힙합듀오 '가리온', 인디 록 1세대에 속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 제주 로컬씬을 대표하는 스카밴드 '사우스 카니발',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이자 화가와 연기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백현진'.

유앤미블루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방준석',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상’을 수상한 탈진 로큰롤 '갤럭시 익스프레스', 독보적인 스타일과 사운드를 구축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얼터너티브 블루스를 대표하는 '씨 없는 수박 김대중',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록 노래’와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하드록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까지. 

3호선 버터플라이 시절부터 현재까지 홍대 인디씬에 오랜 기간 몸 담고 있는 성기완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이런 환상적인 라인업이 꾸려질 수 있었다. 각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참여함으로써 이 음반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보다 더 의미 있고 적확하게 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가리온의 '한숨'을 제외하고 오래전부터 불려왔던 제주의 민요와 군과 경찰의 노래 그리고 공포에 떠는 제주도민의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사우스 카니발이 부른 '만세(해방의 노래)'는 해방 당시 농악대를 꾸려 제주 청년들이 만세를 외치며 부른 노래를 스카 장르로 녹임으로써 해방의 기쁨을 담았으며, 보컬 남상아의 보컬과 몽환적인 사운드가 돋보이는 '웡이자랑'은 제주의 대표적인 자장가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흥겨운 한국식 그루브로 재해석한 '봉지가'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제주민요이다(봉지는 열매의 제주어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조웅의 간드러진 바이브레이션과 뛰어난 연주력은 '봉지가'의 맛을 더한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동요 '고사리 꼼짝'은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이 재해석했다. "어이 비 왐쪄"를 재치 있게 외치는 부분과 곡 후반기에 블루스 스타일의 변주는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해학이 아주 잘 녹아 들어가 있다. 제주 노동요 '어야도흥'은 하드록 기반의 사운드가 바탕이 되어 "어야도흥"을 주고받는 구성으로 노동요의 특징을 명징하게 담아냈다. 훌륭한 연주력은 더할 나위 없다.

제주MBC가 제작한 '산·들·바다의 노래' 영상. (사진=제주MBC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제주MBC가 제작한 '산·들·바다의 노래' 영상. (사진=제주MBC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항일무장독립군가이자 해방 후 좌파 계열에서 많이 불렸던 '적기가'는 갤럭시 익스프레스 특유의 파워풀한 사운드와 거침없이 펼쳐지는 날것의 사운드로 재해석되었다(현재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중지된 곡이기도 하다). 4·3 당시 제주도민의 선무공작용으로 만들어진 노래이자 선무공작대 단장이었던 이기형이 작사·작곡한 '그리운 그 옛날'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곡 구성으로 이념적 대립을 무너뜨리고 가사 본연에 담겨 있는 의미를 요조의 목소리를 빌려 뜻있게 담아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곡을 뽑자면 불안하고 처연한 백현진의 보컬과 담담하고 흐릿한 방준석의 기타로 구성된 방백의 '없는 노래'이다. 4·3 항쟁에 참여하고 일본으로 건너와 4·3을 처음으로 책으로 알린 김민주 할아버지의 기억에 불확실하게 남겨져 있는 가사와 멜로디를 차용하여 새로 만들어낸 곡이다. 

원곡과 다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제목을 '없는 노래'라고 정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백현진과 방준석이 피해 마을과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난 공간을 걷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김민주 할아버지의 얼굴이 교차하는 영상은 이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압축해서 담아놓은 가장 결정적인 구간으로 꼽고 싶다.

이 앨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잠들지 않는 남도'로 마무리되는데, 아직 4·3은 진행형에 있으며 재해석된 음악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불림으로써 4·3을 알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앨범과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부르면서 이를 처음 접했던 순간과 와닿게 다가왔던 순간을 비롯하여 많은 기억을 반추하게 된다. 어떠한 음악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 음악을 함께한 각자의 기억들에 담겨 있는 하나의 시대와 역사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없어질 수 있었던 음악을 '기억되고 영원히 남을'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8년 전의 이 프로젝트 앨범은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4·3을 앞에 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의 음악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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