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박은혜, 파우스트, 2017
『숨비소리』, 박은혜, 파우스트, 2017

그림책 『숨비소리』(파우스트, 2017)의 박은혜 작가와 나는 대학 동기다. 처음에 같은 철학을 전공해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해 다시 새내기가 되어 대학교에 들어왔다. 음악을 전공했다. 음대 앞에서 가끔 만나면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그 후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멀어졌는데 어느 날 책 한 권이 소포로 내게 왔다. 『노래하는 그림책』(신원문화사, 2016)이었다. 노란 표지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저자가 박은혜였다.

책을 보니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한 삶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은혜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육 공부도 했다. 이후 여러 학교와 기관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적당한 책이나 교구들이 많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하는 그림책』은 자신이 가르쳤던 장애가 있는 어린들을 만난 경험에서 나온 책이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째 책으로 그림책을 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리게 그림 그리는 화가인 게 분명한 안민승 화가와 함께 해녀에 대한 그림책 『숨비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림책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책을 활용해 공연을 했다. 거의 극단 수준의 팀을 꾸리고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감탄했다. 소리에 민감한 발달장애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소리와 함께 언어를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

안민승 화가는 바다 풍경을 그리기 위해 사계리 바다를 걷고 또 걸었다. 이미 글을 완성한 박은혜 작가가 쓴 이야기에 그림이 입혀지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은 사람들마다 다른 속도가 있다.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다는 걸 은혜는 안다.

박은혜 작가가 팀을 만들어 선보이는 공연은 인형극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해녀와 거북과 고래가 등장한다. 인형도 직접 바느질해 만들었다. 은혜가 이렇게 인형극으로 전국 투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외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몇 해 전에 부부가 제주도에 왔을 때였다. 은혜는 모슬포 방어 축제에서 부스 운영을 하나 맡았는데, 남편이 휴가를 내 돕고 있었다.

그림책 『숨비소리』는 엄마의 심정을 담은 책이다. 느린 딸을 위한 책이기도 하고, 해군 장교인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의 바다를 다니면서 고향 제주 바다를 그리워하며 만든 이야기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어린 시절 뛰놀던 사계 바다와 모슬포 바다들이 너무 그리웠다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숨비소리’ 노래도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데, 한 번 들어도 귀에 익을 정도로 정감이 넘치는 노래다. 그리고 계속 듣다보면 그 노래에서 해녀처럼 강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다.

첫 그림책이 나온 해에 은혜는 모슬포 방어 축제에서 부스 운영을 했다. 그날 저녁에 제주시 시청에서는 음료수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열아홉 살 민호를 기리는 촛불시위가 열린 날이다. 은혜의 책 부스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다 나는 촛불시위에 잠시라도 다녀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잠깐이라도 참여하고 싶었다. 은혜가 책 부스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첫 책 이후로 연이어 『파도 소리』(노래그림책, 2020)와 『숲의 소리』(노래그림책, 2021)를 냈다. 그녀가 새로운 기획과 계획을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은혜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일으킨 물결은 나에게까지 닿는다.

은혜의 열정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장애인주간활동센터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특수교육을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며 수업한다. 장애인주간활동센터에서 일출에 대한 느낌을 얘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때 “새해 일출을 떠올리면 할머니 집 돌담이 생각난다”는 말을 들었다. 새해 일출을 할머니 집에서 맞이하는 다정한 분위기가 느껴져 좋았다. 일출하면 산이나 바다를 떠올리는 나였는데, 휠체어를 탄 수강생은 앉아서 일출을 보기 때문에 담장 위로 떠오르는 새해 첫해를 기억하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고, 사람마다 눈높이가 달라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 부족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은혜처럼 나도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 나가는 작가이고 싶은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갈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는 걸 또 새삼 느낀다. 그래도 그녀의 오래달리기를 응원하다. 오래달리기를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달리는 박은혜 작가의 모든 활동을 응원한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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