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봉행됐다. 이날 1세대 유족 강춘희(77)씨가 자신의 사연낭독을 듣으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봉행됐다. 이날 1세대 유족 강춘희(77)씨가 자신의 사연낭독을 들으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4.3은 화목했던 우리 가족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6살의 저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봉행됐다.

특히 조부, 부친, 동생이 희생자로 결정된 1세대 유족 강춘희(77·삼도2동)씨의 사연을 배우 박정자씨가 독백,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강씨는 “저는 4·3으로 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는 토벌대에 연행돼 지금도 소식을 알 길 없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모진 고문 속에 목포형무소로 옮겨지던 중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주정 공장에 잡혀가셨다. 한 살 배기 젖먹이 내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고파 우는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매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3살 때까지 걷지도 못하다 세상을 떴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어 "제 마음 속 더 큰 피해자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다. 할머니는 아들인 제 아버지를, 어머니는 아들인 제 동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면서 "할머니는 엄마 품에서 떠난 손주를 아무도 모르게 직접 묻고, 아픈 몸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배우 박정자씨가 1세대 유족 강춘희씨의 사연을 독백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사진기자단)<br>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배우 박정자씨가 1세대 유족 강춘희씨의 사연을 독백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강씨는 "뼈마디가 부러질 정도로 주정공장에서 구타를 당한 어머니는 아픔과 한을 품은 채 사시다 치매에 걸려 돌아가셨다"면서도 "하지만 당신의 품에서 떠난 어린 아들의 기억만은 꼭 붙들고 계셨다"고 말했다.

이어 "'도망가라 아가야, 어서 도망가, 저 대나무밭 속으로, 담 너머 어서 숨어라...'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불구덩이 속에서 어린 제 동생을 구하고 계셨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가여워 출생 신고도 하지 못한 그 아들 말이다"고 회고했다.

박정자씨가 이 사연을 독백하는 동안 좌석 곳곳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오열하며 눈물을 훔쳤다. 강씨의 옆자리에 마련된 그의 동생 강원희씨의 좌석은 텅 비어있었다.

강씨의 조부 고 강익수씨는 지난달 29일 열린 일반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70여 년 만에 오랜 한을 풀었다. 고 강원희씨는 지난달 14일 희생자로 결정됐다.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봉행됐다.<br>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봉행됐다. (사진=제주도 사진기자단)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성인 등 정부 관계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사진기자단)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성인 등 정부 관계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올해 74주년을 맞는 4·3희생자 추념식은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4·3특별법 전부 및 일부개정으로 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피해보상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날 추념식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모두 299명이 참석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등이 참석자 가운데 60% 이상 참석했고, 정부 및 정당 관계자도 자리를 채웠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김부겸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차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 등도 추념식에 참석했다.

추념식은 오전 10시 4·3영령을 추념하기 위해 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1분 동안 울리며 시작됐다.

사회는 외조부가 4·3유족인 배우 정태우 씨와 KBS 제주방송총국 박아름 아나운서가 맡았다. 

이어 4·3을 노래한 김진숙 시인의 '사월, 광장으로'를 배우 문희경 씨가 낭송하는 오프닝 영상이 상영됐다. 헌화와 분향에는 제주 출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씨가 바흐의 '아다지오'를 연주, 경건함을 더했다.

아울러 추모공연으로 미얀마 소녀 완이화(15)씨와 6명으로 꾸려진 도란도란 합창단이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합창했다. 이어 제주 출신 가수 양지은 씨가 ‘상사화’를 불렀다.

구만섭 제주도 권한대행은 추념식 인사에서 “도정은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정성을 다할 것”이라면서 “과거사 청산의 모범이 되도록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뤄나가겠다”고 밝혔다.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가수 양지은씨가 추모곡 '상사화'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희생자 유족이 강춘희씨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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