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한 윤석열 당선자 추념사...'알맹이 없는 4·3의 세계화'

3일 오전에 엄수된 4·3추념식은 보수정당 소속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참석하는지 여부에 집중됐다. 눈과 귀는 윤석열 당선자에게 쏠렸다.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해 제주로 온다는 소식도 뉴스를 탔다.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면서도 윤 당선자는 추념식에 늦게 도착했다. 선거 운동 기간에 잦은 지각으로 비판을 받은 윤 당선자는 4·3추념식에도 지각하며 눈총을 샀다. 

보수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보수정권의 ‘4·3흔들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 추진을 주도했던 인사가 합류하면서 그 같은 우려를 더 키웠다. 윤 당선자의 4·3추념식 참석은 보수정당 소속 대통령 당선자의 첫 참석이라는 의미를 띠었다.

이에 윤 당선자가 추념식에서 어떤 말을 할지 관심이 모아졌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그러나 정작 윤 당선자의 추념사는 밋밋했다. “4·3평화공원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널리 퍼져나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노력하겠다”는 발언 정도가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4·3에 대해 어떤 방향을 잡고 나아갈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세계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3유족들과 4·3 관련 시민단체들은 미군정의 책임규명과 정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르 내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즉, ‘알맹이 없는 세계화’를 말하고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내가 오지 않으면 이젠 아무도"

최근 몇 년, 4월 3일은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다. 비가 내리거나 꽤 쌀쌀했다. 74주년 4·3추념식을 갖는 4·3평화공원에 햇빛이 따뜻하게 내렸다. 모처럼 구름 한 점 없었다. 이날 4·3평화공원에는 위패봉안실, 각명비, 행불인묘역을 찾는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자매인 할머니가 어릴 적에 잃은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자매인 할머니가 어릴 적에 잃은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유족들은 그리운 가족의 이름을 찾아 수건으로 얼굴을 씻겨주듯 깨끗이 닦고 절을 올렸다. 비극 속에서도 대가 이어진 가족들은 어린 후손들과 함께 찾았다.

연세 지긋한 한 할머니가 행방불명인 묘역을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함께 찾아드리고자 희생자의 존함을 여쭸다. 어떤 관계냐고 물으니 삼촌이라고 말했다. “내가 찾지 않으면 이젠 아무도 찾지 않아. 15살에 죽었어. 내가 오지 않으면 이젠 아무도 안 올 거라.” 할머니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닦고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유족이 행방불명인표석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4·3 당시 행방불명된 이의 유족이 행방불명인 비석 사이를 걷고 있다.(사진=박지희 기자)

 

유족과 망자 사이의 또 다른 장애물

각명비 앞에도 유족들이 찾아와 절을 올렸다. 하지만 각명비를 따라 그 앞으로 길게 늘어선 빗물관로와 경계석은 유족과 망자 사이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됐다. 유족들은 빗물관로 위에서 절을 올리거나, 경계석 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절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제주투데이에서 이 문제를 단독 보도한 후, 4·3평화기념공원과 제주도는 이와 관련한 개선 공사를 위한 용역을 추진 중이다. 제주도 관계자에 따르면 공사는 올해 하반기에 착수할 예정이다.

4·3희생자 유족이 각명비 앞에서 불편한 자세로 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4·3희생자 유족이 각명비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4·3희생자 유족이 각명비 앞에서 불편한 자세로 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4·3희생자 유족이 각명비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4·3추념일마저 "제2공항 추진해달라", "도민 여론 따라 백지화 하라"

제2공항 찬성 단체는 때를 놓칠세라 윤석열 당선자가 지나는 길목을 찾아 제2공항 조속 추진을 요구하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다. 제2공항 반대 단체들도 제2공항 반대가 우세한 도민 여론을 반영하라면서 제2공항 반대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엄숙해야 할 4·3추념일마저도 개발 사업에 대한 찬반 의사 표명으로 얼룩졌다.

벚꽃은 환했다

제주시에서 4·3평화기념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의 벚꽃은 마냥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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