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모든 이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무른다. 또한 안주하거나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자기를 바꾼다. 막히면 돌아가거나 기다렸다가 넘쳐야 흐른다. 억지나 거스름이 전혀 없다.
농사는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환경과 때에 맞추지 않으면 사달이 난다. 밭벼가 잘 되는 식양토에 땅콩을 심으면 썩어버리고, 너무 일찍 심거나 너무 늦게 거두면 피해를 입는다. 김매기도 제때 하지 않으면 2~4배의 노동력이 든다. 농사의 최고기술은 때맞추어 작물이 원하는 환경을 구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인간의 시간에 농사의 시간을 맞추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연중 신선한 농산물을 먹기 위해 종자개량을 하고 시설재배를 한다. 그리고 이제는 4차 산업혁명기술을 접목하여 생육환경을 원격·자동으로 조절하는 스마트팜으로 환경 자체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유엔경제사회국의 ‘2019년 세계인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인구는 2050년에 97억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21년 세계 식량농업을 위한 토지 및 수원지 현황’에 의하면 지구 전체 토양의 33%가 중간 또는 고도의 오염 수준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악화되고 있다.
물 사용량 또한 크게 증가하여 물 부족 문제 역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기후 위기가 더욱 격화되면 현재의 농업생산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마트팜이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인구감소와 수입 증가로 농산물 공급과잉이 일상화되었고,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또한 기후위기로 기상재해와 병해충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건강 및 식품 안전성이 소비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식품부에서는 2018년 ‘스마트팜 확산방안’을 발표하고, 상주, 김제, 밀양, 고흥 등 4개 지역에 스파트팜 혁신 밸리를 조성해 올해부터 운영한다. 또한 정부는 2029년까지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혁신기술’ 개발에 7160억원을 투자한다.
스마트팜은 농업인의 경험·지식·노동력을 사물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드론·로봇 등이 대신하는 혁명적인 변화이다. 노동이 사람에서 센서와 로봇으로 이동하고, 경영은 의사결정 구조를 장착한 AI에 의존하게 된다. 자본이 노동·토지보다 훨씬 중요한 생산수단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팜이 경제성을 가지려면 투자 대비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생산성은 시설·장비,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좌우된다. 이 때문에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용 상승과 규모화를 촉진하여 농가에게는 진입장벽이 되면서 대기업에게는 농업 분야 진출을 당연시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또한 빅테이터 활용으로 농산물·종자·재배기술정보·판매처가 하나의 패키지 상품이 되어 거래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스마트팜은 혁신적으로 노동, 에너지, 양분 등을 덜 투입하면서도 농산물의 품질과 수확량을 증대시킬 것이다. 하지만 농업이 자본에 종속되면서 농민의 계층분화가 촉발되어 전통적인 농민의 지위가 박탈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업단체들이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에 반발한 이유도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스마트팜은 스마트농업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팜을 스마트농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농민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스마트농업을 국가를 비롯한 공공이 농업 현장을 데이터로 진단하고 인공지능으로 처방해 적합한 작물추천, 정밀 재배, 수요와 공급의 일치로 생산·유통 분야의 생산성을 구현하는 농업으로 확대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4차 산업혁명기술을 노지와 유통 분야까지 확대하여 생산·환경·안전관리의 최적화, 생산과 소비의 일치, 부족한 노동력 대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고, 농민의 계층분화 속도를 우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늦출 수 있다.
또한 데이터, 디지털기술, 플랫폼은 공공재화하여 무료로 개방·공유하고, 4차 산업혁명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청년농들을 육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터 권력’을 장악한 자본이 코끼리를 삼키는 보아뱀처럼 농식품산업과 농민을 통째로 삼킬 것이다.
스마트농업 정책의 최우선 고민은 ‘누구를 위한 스마트인가? 데이터 권력은 누가 가져야 하는가?’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농민에 의해 스마트팜이 파괴되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재현될 수도 있다. ‘가장 효율적으로’는 사람 다음의 문제이다.
스마트농업 정책도 높은 곳에서는 거침이 없고, 낮은 곳에서는 자애롭게 흐르는 물처럼 효율보다는 농민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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