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주도 공동취재기자단)

74년전 국가폭력에 의해 발발한 4·3은 제주 곳곳에서 마을 단위 학살과 일가족 몰살 등 대를 잇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은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로 생사를 달리해야 했고, 생존자나 유족들도 빨갱이 집안이라는 주홍글씨 속에 수십년의 모진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4·3광풍에 희생돼 어쩔수 없이 조부모나 친인척 등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은 호적상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뻘이 되어버리거나, 사촌이나 육촌지간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처구니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호적은 자신의 뿌리를 증명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로서 인륜을 거스를 수 없는 혈육관계를 증명하는 법률상 가족제도의 기본이다. 

죽기 전에 아버지 호적에  꼭 넣는게 소원이라며 오열하는 80을 바라보는 늙은 딸. 세상에 태어났지만, 4·3광풍 속에 가족을 모두 잃고 이웃집 호적에 올라 평생을 살아온 어느 노인은 이제서라도 내 뿌리를 찾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절규하듯 호소하며 74주년 4·3을 맞았다. 

이 기막힌 사연 모두가 4·3당시 국가폭력으로 뒤틀려버린 호적관계 사례들의 극히 일부다.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잡으려는 희생자 유족이 모두 고령이라는 바로 이 점이 가족관계특례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4·3 당시 20~40대였던 피해자는 7000명에 육박한다. 당시로 볼때 해당 연령대 피해자 대부분이 가정을 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 1000명 이상의 호적이 4·3때 뒤틀렸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주도는 관련 용역을 진행해 호적이 잘못 기재된 사례 실태 조사를 벌일 예정이지만, 고인이 많은 상황에서 생존자와 유족이 고령이라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행방불명된 사람도 다수다. 

4·3 때 아버지의 사촌 호적에 이름을 올린 오연순 할머니는 가사소송으로 가족의 뿌리를 찾았다. 
4·3 때 아버지의 사촌 호적에 이름을 올린 오연순 할머니는 가사소송으로 가족의 뿌리를 찾았다. 

이전에도 4·3때 잃어버린 가족의 뿌리를 되찾는 노력이 있었는데, 대부분 가사소송을 통해 자신의 호적을 되찾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은 고모의 도움으로 가사소송에서 승소한 오연순(73) 할머니다. 

1948년 사실혼 관계를 맺은 고(故) 오원보씨와 고 김무옥씨는 그해 사랑스러운 딸 연순이(오연순 할머니)를 낳았다. 오 할머니가 태어나고 며칠 뒤 아버지 오원보씨는 22세의 나이로 빨갱이 누명을 써 각종 고문에 시달리다 옥사했다. 

오 할머니가 5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김무옥씨는 재혼했고, 오 할머니는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고 자라던 오 할머니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둬 아버지의 사촌형제인 오원방씨의 딸로 호적에 등록됐다. 

수십년간 아버지 사촌의 딸로 살아온 오 할머니는 2015년 9월 법원에 가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친부인 오원보씨의 딸이라는 점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부모 모두 망인이라서 DNA 검사를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아버지의 사촌의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만 도출될 뿐이었다. 

오 할머니는 항소심에서 극적인 승소를 따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이, 즉 고모의 증언이 컸다. 

아버지의 친누나인 고모(오계성 씨)는 오 할머니가 고(故) 오원보와 김무옥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라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오 할머니의 고모는 재판부를 향해 “오연순은 내 조카가 맞다”고 진술했고, 재판부가 오 할머니의 고모 증언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오 할머니는 가족의 뿌리를 되찾았다. 소송 제기 약 2년만인 2017년 5월의 일이다.  

승소한 판결문 원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오연순 할머니가 취재진에게 소송 때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승소한 판결문 원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오연순 할머니가 취재진에게 소송 때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12조(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에 제주4.3 피해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에는 다른 법령 규정에 불구하고 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기록을 정정할 수 있다. 

헌법에 따라 대법원은 법률에서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나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대법원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4·3특별법 제12조는 4·3 피해자와 유족의 호적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지만, 해당 조항이 너무 포괄적인 상황에서 대법원 규칙이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 해석되면서 사실상 가사소송으로만 뒤틀린 가족관계를 정정할 수 있는 현실이다. 법무부 등 부처도 가사소송을 통해 호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사소송으로 가족의 뿌리를 되찾은 오 할머니는 그나마 친인척이 생존해 있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유족 등도 상당한데, 이들에게 DNA 검사 등은 사실상 불가하다. 

호적이 뒤틀린 제주4·3 피해자와 유족들이 가족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가사소송이 아닌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이유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제주 8대 공약 중 다섯 번째로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제시했다. 공약에는 ‘가족관계특례조항’ 신설 등이 담겼다. 

특례조항에는 4·3 유족의 호적 정리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필수로 담겨야 한다. 피해자와 유족 대부분이 고령이라서 시간이 걸리는 가사소송을 제외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도민 사회에서는 4·3위원회에서 호적 정리를 인정했을 경우 가사소송 승소에 준하는, 대법원 규칙에 준하는 권리를 4·3 피해자와 유족에게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피해자와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4·3특별법 전면 개정의 취지를 살린 대법원 규칙 변경 등 정부 각 기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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