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희 기자)
제주교육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고의숙 예비후보. (사진=박소희 기자)

서귀포에서 태어나 부모와 선생 뜻을 한 번도 거스른 적 없이 초중고를 졸업한 전형적인 모범생. 그러나 글만 쓰면 남다른 상상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문학소녀.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좋아하던 글쓰기를 포기하고 제주교육대학에 입학해 30년 교육자로 살아온 고의숙(54). 그가 ‘말 많고 탈 많은’ 제주교육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1일 오전 제주시 삼도2동에 마련된 캠프에서 만난 고의숙 예비후보(이하 후보)는 선거용 정치꾼이 아닌,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가였다. 끝까지 교육자로 남지 않고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는 뭘까.

# 아이들은 속한 사회를 딛고 자란다
책 읽고 글 쓰기를 좋아하던 고 후보는 사물에 담긴 시간을 볼 줄 아는 문학소녀였다. 태극기를 주제로 한 작문 시간에 대한민국의 역사와 그 시간을 엮어낸 사람들의 면면을 풀어내던 그가 제주교육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아버지 역할이 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제주도를 벗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제주에서 선생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7년. 대한민국에 불어온 민주화 열망이 대학가를 뜨겁게 달굴 때였다.

“보수적인 교대까지 민주화 열망이 스며들고 있었을 때다. 한 선배가 복도에 5·18 사진전을 하려고 대자보를 붙였는데 교수가 뗄 것을 지시했다. 울면서 진실을 알리고 싶다고 외치는 선배를 보면서 어떤 충격이 저를 관통했다.”

교대 복도에서 목도한 장면은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의 세계에 균열을 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선생이 될 줄 알았다.

자신이 가르칠 아이들이 자라날 사회였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선생의 책무임을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내면에 머물러 있던 자아가 창문 너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고의숙 캠프)
2017년 핀란드 교육리더십 연구과제 수행을 위한 파견 연수중인 고의숙 예비후보. (사진=고의숙 캠프)

# 고의숙, 사회 주체로 서다
아이들을 삶의 주체로 세우는 게 좋은 교육이라면 자신부터 그래야 했다.

그는 1989년 교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학교 운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학생동아리실 설치, 동아리 활동 활성화 등 교대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민주화를 위한 대학생들의 진출은 제주도내 처음으로 4개 학교(제주대학교, 제주교육대학, 제주간호보전문대학, 제주전문대학)가 연합한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졌고, 그가 공동의장을 맡아 진두지휘했다. 책읽기 좋아하고 글을 잘 쓰던 모범생의 변화에 가장 놀란 것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변할 수 있었냐고 묻자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고민도 많았고 대학에서 토론도 많았다. 자신이 살아갈 사회이자 아이들 삶의 토대가 되는 세상이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대학생으로서, 예비교사로서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고의숙 후보. 그는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로서의 책임감,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주인의식, 그런 것들이 삶의 모습을 아주 다르게 바꾼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 선생님, 아직도 설레는 이름
고의숙 후보는 1991년 보목초등교를 시작으로 교단에 섰다. 늘 부족한 것 같은 자신을 ‘선생님!’하고 불러주는 아이들 앞에서면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특히, 가정 환경이 어려운 아이,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운 아이,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고의숙 후보가 제일 마음이 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는 초임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석이 잦았던 학생을 찾아간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과 떨어져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학생은 선생 방문조차 싫어해 멀리 고 후보가 보이면 도망가곤 했다. 

가정방문 당시 해당 학생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서야 학교에서 보는 학생들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던 시절, 마음에 두었던 학생이 어른이 되어 “선생님!” 하고 찾아왔다. 그런 보람에 30년을 교단에서 감사히 지냈다고.

아이들의 삶을 보듬는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은 전교조 활동으로 이어졌고, 전교조 제주지부 정책실장과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2009년 사무처장을 맡았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맞물린 사회 각계 각층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계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 지독한 경쟁 교육에 지쳐가고 있었다. 문제 풀이만 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선생이란 먼저 산 사람을 말한다. 먼저 인생을 살게 된 사람으로서 교사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학생이 생의 주체로 서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야말로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 그. 사회적 자아에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딛고 선 곳의 불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맨 마지막은 다혼디배움학교 운영협의회 2016.3
2016년 3월 열린 다혼디배움학교 운영협의회서 발언하고 있는 고의숙 예비후보 (사진=고의숙 캠프)

# 교육행정 경험, ‘비판’에서 ‘책임’으로
고의숙 후보에게 중요한 경험은 교육전문직(장학사, 연구사)으로서 교육행정을 담당했던 시간이었다. 2015년 교육전문직 시험에 합격하면서 5년 동안 장학사와 연구사로서 제주교육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제주형 자율학교(혁신학교) 담당 장학사, 국제심포지엄 제주 최초 기획, 교육리더십 혁신을 위한 연수 기획 등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했던 시간을 후보는 “비판하는 입장에서 책임지고 수행해야하는 교육행정의 경험은 더 전문적으로 교육을 바라보게 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1일 제주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고의숙 교육의원 예비후보 (사진=고의숙 캠프)
지난 1일 제주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고의숙 교육의원 예비후보 (사진=고의숙 캠프)

# ‘부드러운 직선’ 고의숙, 그가 교육의원에 나선 까닭
학교 조직은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다. 정치적 이념으로써 ‘보수적’이 아니라 변화가 더딘 곳이라는 의미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따르면 아주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상대라도 고의숙 후보를 만나면 별 수 없이 설득당하고 만다고 한다. ‘온화한 얼굴로 다가가 반박 불가능한 논리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뛰어난 협상가’, ‘부드러운 직선’ 고의숙 후보를 가까이서 본 이들이 붙인 수식어다.

정년을 10년 앞둔 상태에서 남광초등학교 교감직을 내려놓고 교육의원 출마를 결심한 고의숙후보. 그러나 지난 1월 14일 제주도 교육의원 폐지 법안이 발의되며 존폐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교감으로 근무했던 그는 학교 현장의 요구를 잘 안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학습격차, 정서적 고립감 등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적 전환기에 교육의 변화 또한 절실하다. 교육의원은 시대적 교육변화 요구와 학교 현장의 요구를 잘 알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코로나 19 이후 학교는 이전과 너무 다르다.  교육의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아이들의 성장과 미래를 여는 교육시스템을 학교와 지역, 지자체와 교육청을 연결하고 협력을 견인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교육의원으로서 그 일을 해보고자 한다.”면서 초등 교장 자격까지 포기하고 교육의원 출마를 결심한 큰 이유를 설명했다. 

제주특별법 출범 이후 제주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교육의원 제도는 교육자치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퇴임한 교장들의 전유물’ ‘깜깜이 선거’ ‘교육과 무관한 현안에 대한 표결권’ 등 민주적 정당성 훼손 및 주민 대표성 약화 등 운영상의 문제가 오랫동안 제기됐다.

고의숙 후보는 교육자치 강화를 위해서는 ‘말 많고 탈 많은’ 교육의원 제도를 제대로 고쳐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의원 폐지가 자칫 교육자치 영역의 축소·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제도적 보완이 분명 필요한 부분임은 그도 인정했다.

배우자 강경식 전 도의원(왼쪽)과 고의숙 교육의원 예비후보. (사진=고의숙 캠프)
고의숙 교육의원 예비후보 선거 유세에 함께 나선 배우자 강경식 전 도의원. (사진=고의숙 캠프)

# 교육자에서 정치인으로 변모, 왜?

그에게 교육은 아이들이 생애 주체로 서게 하는 힘이자 새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교육자치는 교육의 결정권한을 교육주체들이 누리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서 교육의 결정권을 스스로 누리고 책임지는 ‘우리동네 교육원탁회의’ 공약은 그 일환이다. '우리동네 교육 원탁회의'는 학교, 동사무소, 마을주민, 학생, 학부모 대표 등이 참여하는 민·관·학 거버넌스로 교육정책과 교육 현안에 대한 주민 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제주가 가지고 있는 교육자치의 권한을 더욱 확대하여 제주에 맞는 교육과정, 교육예산, 교육정원 확보, 교육시설 확대 등을 견인하는 것 또한 교육의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를 만들어 사회 민주화에 앞장섰던 예비교사 고의숙, 아이들의 삶을 소중히 여겨 어려운 아이들을 더 보듬었던 선생님 고의숙, 교육환경 개선에 앞장섰던 전교조 활동가 고의숙, 제주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담당했던 교육행정가 고의숙, 코로나 19 교육전환의 시기 학교를 지켰던 고의숙.

그에게 좋은 교육이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토대’이며  좋은 교사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열어주는 사람’ 이고 좋은 정치란 ‘소외되는 사람 없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고의숙 후보. ‘책임’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아이들과 제주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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