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마을 (사진=조수진 기자)
도로 확장으로 인해 베어진 제주시 연동 제성마을 입구 벚나무. (사진=조수진 기자)

베는 행정

또 베어냈다. 권재섭 할머니는 오열했다. 지난 3월 15일, 제주시 연동 제성마을 입구의 상황이다. 도로 확장을 명분으로 40년 이상 수령의 벚나무를 베어냈다. 정뜨르 비행장, 제주공항, 하수종말처리장 건설로 세 번씩이나 삶터에서 쫓겨나 설촌, 정착한 곳이 제성마을이다. 그렇게 시작된 제성마을은 이제 40년의 역사를 지녔다. 벌채된 나무들은 이 마을 설촌 기념수다. 마을 주민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은 생명체였다.

마을 사람들은 벌채 없이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에 따라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기습적으로 공사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제성마을 나무들은 사라졌다.

‘제성마을’ 앞 도로 확장이 꼭 필요했을까? 도로를 확장하더라도 나무를 살리며 진행할 순 없었을까?

또 베어내려 한다. 이번엔 ‘정실마을 길’이다. 신제주 KCTV에서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아연로 2개 구간이다. 이 길은 제주시의 ‘걷고 싶은 가로수길’ 사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토지 보상비 10억 원을 집행하고 내년(2023년)부터 도로 확장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정실마을 길’ 확장이 꼭 필요할까? 확장을 하더라도 나무를 살리며 진행할 순 없을까? 아직 ‘정실마을 길’ 나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시 도남사거리에서 이도광장 방향 퇴근길 풍경.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시 도남사거리에서 이도광장 방향 퇴근길 풍경. (사진=박소희 기자)

전국 평균 2배의 자동차를 보유한 제주도

제주도 인구 67만6000여 명, 제주 등록 자동차 65만1613대. 인구 1인당 차량 보유대수가 0.963대로 전국 평균 0.48대의 두 배가 된다. 작년(2021년) 10월 기준이다.

굳이 이런 통계를 살피지 않더라도 교통 정체와 주차난은 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그러니 도로 확장 요구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도로 확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다수의 교통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이 역시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연북로, 애조로의 현 상황을 보자. 도로 건설 후 얼마 지나지 않고도 출퇴근 시간 교통정체를 체감했다. 도로가 넓어지면 그 이상으로 차량이 다시 증가한다. 그럼 추가로 도로를 건설해야 하나? ‘교통 정체’라는 상황이 발생하면 ‘도로 건설’이라는 방식의 즉흥적 대응은 한계가 뻔한 ‘대증 요법’일 뿐이다. 이는 악순환만을 불러 온다.

이것은 한계다. 기존 관행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다. ‘차고지 증명제’ 역시 기존 관행을 넘어서려는 의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많은 반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고지 증명제’ 카드를 들고 나온 행정의 고민과 노력을 이해한다. 그렇다 해도 ‘차고지 증명제’ 역시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이는 행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증 요법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행정을 세워야 한다. 시민 사회와 공감을 만들며 교통 행정의 원칙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한계를 공감한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혁신, 발상의 전환이다. ‘차량 우선’ 정책에서 ‘보행자 우선’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 승용차 순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강하게 제공해야 한다. 보행자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고, 승용차 사용자에게는 그에 따른 불편과 부담을 감당하게 해야 한다.

지난 23일 열린 제주시 직원 나무심기 행사.
제주시 직원 나무심기 행사 모습 (사진=제주시 제공)

심는 행정

또 심는다. 올해는 ‘숲 속의 제주 만들기 500만 그루 나무심기’ 4년차이다. ‘녹색쌈지숲’, ‘학교숲’, ‘도시바람길숲’, ‘미세먼지 차단숲’, ‘스마트 가든’, ‘나눔숲’ 등의 현란한 이름으로 또 심는다. ‘2022년도 산림휴양사업 계획’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관련 예산도 나름 풍족하다. 도시숲 조성 190억 원, 가로수 조성 2억 원, 공익 조림 16억 원, 민간참여 도시녹화 4억 원, 이렇게 해서 총 212억 원을 투여한다.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212억 원을 투입한다고 하니, ‘심는 행정’의 철학과 선한 의지, 노력에 감동한다. 다만 ‘베는 행정’과의 묘한 대비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심기’에 들이는 공력의 일부를 ‘베지 않기’로 돌린 순 없는 것일까. ‘심는 행정’과 ‘베는 행정’의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협업 행정

담당 부서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행정의 칸막이’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이건 의지의 문제일 뿐, 관행을 변명 삼아 외면할 일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과 혁신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혁신을 만들어내는 지자체들이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대표적이다. 구청장 김삼호는 광산구 행정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혁신 지향성’, ‘칸막이를 넘어선 복합·협업행정 지향성’을 우선 강조했다. 현장 실태와 니즈(needs)를 바탕으로 협업행정을 펼친 것이다. 부서 간 공유·토론을 일상화하여 부서 구분 넘어, 협업행정으로 풀어갔다.

올해 제주의 ‘심는 행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212억 원이라고 했다. 올해 ‘베는 행정’의 ‘정실마을 길’의 토지보상비는 10억 원이라고 했다. 212억 원에서 조금 덜어내어 토지 보상비를 늘리면 안 될까? 물론 예산보다는 철학의 문제, 의지의 문제일 것이다. ‘베는 행정’이 ‘심는 행정’과 철학을 공유한다면 ‘베는 행정’ 자체적으로 ‘심기’ 혹은 ‘베지 않기’를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토지 보상 예산을 늘려, 가로수 공간만큼 토지를 더 확보하여 도로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가로수를 그대로 남기고, 가로수 좌우로 같은 방향의 2개 차선을 만드는 방식 말이다.

물론 가로수가 남아 있으면, 차선 변경이 안 되니, 불편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더하여 도로 확장 자체를 막고, 교통 체증이라는 불편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직 ‘정실마을 길’ 가로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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