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같은 시간, 도의회 앞에서는 보수단체의 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례안은 심사 보류 결정됐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같은 시간, 도의회 앞에서는 보수단체의 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례안은 심사 보류 결정됐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 개인 또는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해 사회적 해악을 야기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혐오표현을 지양하기 위한 조례다. 헌법상 평등권을 실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가치 구현과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고현수(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이 대표 발의 했다.

이 조례안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 따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등에 영향을 끼치는 표현'을 혐오 또는 차별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국적, 나이, 병력(病歷), 성별,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언어, 용모 등 신체조건, 인종, 장애, 종교, 출신 국가 등 특성에 따라 폭력 또는 증오를 선동하고 고취하는 행위가 조례안에서 말하는 혐오표현이다. 또 멸시나 모욕, 위협하는 행위와 함께 4·3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도 포함됐다.

조례안은 혐오표현을 사용했을 경우 제주도 산하 인권위원회에서 해당 표현을 심의하도록 하고, 제주도지사는 혐오 표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시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조례가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중 회의를 열고 해당 조례안을 심사 보류했다. 일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오는 6월에 다시 다룬다는 것.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회의 직전 도의회 앞은 소란했다. 일부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잘못된 인권 개념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흔들린다”면서 조례 제정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이뤄졌던 2020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건너편에선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며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도의회를 향해 소리치는 이들이 있었다. 같은 문장을 외치고, 같은 피켓을 들고 있었지만 각각 포착한 폭력은 다양했다.

이들은 왜 혐오표현을 막는 조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제주투데이는 조례 제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제주 혐오표현 방지 조례’가 필요한 ○○"에서 빈칸을 채울 대상을 질문했다.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해당 조례안을 심사 보류 결정했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해당 조례안을 심사 보류 결정했다. (사진=독자 제공)

"평화와 인권의 섬" _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요새 건강한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에서 대화가 오가고, 공론장이 열리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잖아요. 개개인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의견을 가져요. 당연히 다른 의견에 대해선 논박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상대에 대한 비난이거나, 객관적 근거가 없는 그릇된 신념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혐오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존엄성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자기 입장에서 ’나쁘게‘ 정의내리고 사회에서 배제시키려는 마음인거죠.

그래서 공공 도덕률이 필요해요. 현 상황에서는 혐오표현 방지 조례가 그 역할을 맡는거죠. 개인의 감정 하나하나에 개입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공적으로는 제재가 돼야 하지만 시민들이 처벌받으면 기괴한 사회거든요. 조례가 제정된다고 거대한 변화를 순식간에 가져오리라는 건 기대할 수 없어요. 이건 기초제도이기도 하고, 제주도내에서 관습적으로 굳어진 여러 차별적 인식도 다수니까요. 그래도 ’우리 이 정도까지는 건드리지 말자‘는 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제주를 떠나 우리나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대립은 향후 몇 년간 불가피하다고 봐요.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가 상호존중을 위한 발자국을 찍는다면 의미가 있겠죠. 오는 6월이 주목됩니다.“

"기본권"_박한솔 민주노총 제주본부 선전홍보부장

“제정되는 게 너무 당연한 조례라고 생각해요. 반대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죠.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나쁘게 생각할 게 있느냐‘고 묻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섞여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을 배제하고, 비난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어서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표현을 하고, 그게 당연한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나중에 직접적 폭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요. ’조례‘라는 약간의 강제성을 띈 장치를 마련해둔다면 어느 정도 자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지역 차원에서 제정되는 조례이기 때문에 상위법에 위법되는 부분은 넣을 수 없고, 직접적인 처벌 조항도 없어요. 하지만 의미는 크다고 생각해요. 노동 측면에서도요. 제주에는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거든요.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과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돈을 적게 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요. 우리의 무의식에는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물론 근로 조건은 상위법 개정이 이뤄져야겠지만, 이 조례가 생기면 업무 과정에서 부당한 폭언.폭력에 노출됐을 때 행정 차원에서 구제를 해줄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잡히는거죠.”

"학교" _김홍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정책실장

“학교라는 공동체는 구성원이 다양해요. 학생 뿐만 아니라 교직원들도 각각의 연령대와 특징이 제각각인 공간이죠. 교육현장에서 학생과 학생을 비롯해서 교사와 학생 등 서로 혐오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마주했어요. 2018년 예멘난민 사태 때 예멘 여자아이들은 긴팔을 입어야 한다는 등 종교·문화적으로 지켜야하는 것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들이 도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염려되더라고요. 어른들도 난민에 대한 비난을 쏟았는데, 아직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 직설적인 차별이 난무하지 않을까 하고요.

평범하다는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마주할 때 쉽게 차별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일각에서는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차별하지 말자는 문장의 핵심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권리·권한을 다 인정하자는 뜻이에요. 일단 이 조례가 생기면 학교 차원에서는 관련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기대돼요. 여건이 마련되는거죠.”

"시대“ _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사실 ’차별하면 안된다‘는 건 누구나 알잖아요. 그런데 조례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미루는 상황이죠.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 시대에는 제주토박이 외에도 다양한 연유로 제주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이 많은데 간과되고 있어요. 모든 도민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은연 중에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4·3희생자나 장애인 등도 외부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느껴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혐오표현은 폭력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차별·혐오가 담긴 말을 들은 당사자들은 압박감을 넘어서 존재가 부정당한다고 느끼더라고요. 요즘 성별·세대 등 이른바 ’갈라치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조례가 제정된다면 제주지역만큼은 양극화로 치닫지 않지 않을까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_이양신 제주여민회 공동대표

“혐오는 쉽게 전염되는 감정 중 하나에요. 사회적 약자를 더욱 약자로 만들어서 차별을 낳게 되죠. 혐오표현 방지 조례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강충룡 도의원이 2020년 ’동성애자를 반대한다‘고 말했는데,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그 발언으로 성소수자는 위축감을 느끼죠.

말 그대로 혐오표현을 하지 말자는 취지의 조례인데,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도 요원한 상황이라서…모법이 제정이 안된 상태에서 어려운 현실 같아요. 타 시도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 발의가 이뤄진 적이 있었는데, 제정된 적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제주에서 먼저 이 조례가 마련된다면 차별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지자체라고 인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요.”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같은 시간, 도의회 앞에서는 보수단체의 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독자 제공)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달 29일 제403회 임시회 전 제주경찰청 앞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적극 지지했다. 같은 시간, 도의회 앞에서는 보수단체의 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독자 제공)

"퀴어" _이상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

”퀴어 인권운동을 하면서 개인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많은 비참함과 좌절감을 느끼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어요. 제주에서는 트랜스젠더 정치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요. 특히 공식적 위치에 있는 사람의 혐오 발언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적 합의가 되야 하고, 정체성에 대해 찬반 논란이 빚어지는 지점에서 당사자들에게 타격을 주죠. 어떤 친구는 정치권에서 성소수자 관련 논쟁이 있었을 때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은 일상적으로 미디어나 현실에서 혐오표현과 차별이 담긴 시선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면서 자존의 위협을 받아요. 실제로 위협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요. 조례가 제정된다면 제주도정에게 의무가 생긴다는 점에서 기대됩니다. 다만, 정치권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어요. 조례 하나로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이 바뀌진 않으니까요. 다만 도민들의 인식은 조금 바뀌지 않을까 기대되긴 해요. 근본적 변화의 주체는 조례 너머의 시민들이니까요.“

"지방의 미래" _신현정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이 유명한 문장은 우리 사회가 지역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줘요. 서울에 가지 못하고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느끼게 사회구조가 작동된다고 느껴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늘 지방소멸을 걱정해요. 청년이 있으면 지방은 유지가 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지방에서의 경험이 불행한 지금의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아요.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 안에서 겪은 차별적 경험도 한 몫 한다고 봅니다.

사실 차별 이전에 낙인찍기가 있어요.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을 낙인찍고, 이후에는 분리하고…마치 ’차별당해도 되는 사람‘처럼 취급하다 결국은 실제 차별로 이어져요. 혐오표현 방지조례는 차별에 대항할 첫 번째 관문입니다. 중앙으로 수탈당해온 변방의 섬, 4·3이라는 역사가 있는 제주에서부터 그 문을 열어야죠.“

"제주다움" _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센터장 

“제주도는 섬 특성상 폐쇄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 확장하려면 다른 나라를 포용해야 해요. 태평양에는 오키나와 등 섬이 많아요. 과거 모두 수탈의 대상이었죠. 그 곳을 배제하지 않고, 품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 주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품을 수 있는 감수성이 중요해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제도고요. 저는 이 조례 자체가 제주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평화의 섬이라는 선언이죠. 관광 온 외국인들도 ’제주는 인종과 성별 등을 넘어서 누구나 포용할 수 있는 섬‘이라고 여기면서 마음 편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20여년 전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지금은 환경·기술이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식은 여전히 같아요. 예전에는 공업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도망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측이 현금과 여권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휴대폰이죠. 개인의 인식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해요. 그게 조례 제정이고요.”

"4월"_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국장

“제주는 4·3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에요. 이미 차별과 배제, 증오가 확대·재생산되면 어떤 결말에 이르는 지 도민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곳이죠. 현 시대의 제주사회에서는 갈수록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혐오표현을 막는,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차별이 증오를 낳고, 이렇게 쌓인 감정이 폭력으로 돌아와 사회 전체에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 전에요. 저희는 이러한 사회의 결말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혐오표현의 취지는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장치에요. 서로 다르니 각자 의견도 다를 수 있죠. 하지만 개인·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가지고 차별하거나, 분리·구별·제한·배제하는 것은 편견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혐오는 궁극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장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고요. 우리는 제주의 4월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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