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양영준)
제1회 미주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1일 저녁 7시 15분 하버드 내 패컬티 클럽에서 개최됐다. (사진=양영준)

4월이면 따뜻한 햇볕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들은 움츠린 세상 안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찬란함을 선사한다. 이 찬란하고 눈부신 자연 안에 사는 인간 문명의 역사는 잠시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탐욕과 전쟁, 학살과 죽음으로 4월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70여 년 전 불었던 바람의 기억은 여지없이 남겨진 이들에게  눈물과 회한으로 다시금 제주로 닿았고, 그 바람 기억들이 70여 년을 돌아 드디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장소는 세계대학교들의 수도라 일컬어지는 보스턴 시내,  미국과 세계 지성의 상징인 하버드 대학 패컬티 클럽(FACULTY CLUB)에서 개최되었다.

주로 해외 인재들이 석사와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보스턴에 있는 대학으로 모여든다. 이번 행사는 하버드 대학교수들 외에도 터프츠 레처 스쿨에서 정치 외교를 공부하는 석박사 학생들이 참석했다.

터프츠 플레처 스쿨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치 외교 전문 대학원으로 현직 외교관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한 미대사와 미북학정책특별 대표를 역임한 스티븐 보스워스가 학장을 맡았던 곳이다. 참석 교수들과 학생들은 추모식 후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담론화하며 월든 코리아 영문 저널에도 기고할 것을 약속했다.

2021년 7월 재미 제주 4·3 기념사업회, 유족회(4·3파우, jeju 4·3 memorial and families association of the U.S)를 출범했다.

그동안 미국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한 기존의 제주 4·3 알리기를 벗어나 실질적인 미국 주류사회와 미국 정치권을 염두에 두고 2세대 대학생 및 청년 교육, 영문 저널 발간, 미국 내 학자 및 교수들과의 교류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정하고 양수연 대표 등이 참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큰일을 해내고 있다. 이번 추념식에 참가했던 주요 강연자들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하버드 대학 에드워드 베이커(EDWARD J. BAKER) 교수는 제주 4·3사건의 배경과 의의에 관해서 설명했다.

특히 미군정은 당시 경찰대와 무장대의 평화협상을 지지했지만, 당시 사령관이었던 존 리드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이 무장대 전멸을 주장함으로써 4·3의 비극은 눈덩이처럼 커져버렸음을 상기시키며 당시 미군정 사령관이 하지 중장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역시 하버드 대학 데이비드 맥캔(DR, David R, McCann) 교수는 북촌마을의 절규를 시를 인용하며 상세히 설명했다. “죽이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는 북촌 주민들의 절규와 피로 물든 북촌리 바다를 이야기하며 슬프고 비참한 4·3의 처절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미주 4·3유족회, 기념사업위원회 대표인 양수연 대표는 제주시에서 사업을 하셨던 할아버지인 고 양상규 님이 제주시 도련동 집에서 1949년 1월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집안대대로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를 이야기했다.

이번 추모식에서 제일 눈길이 가고 감명이 깊었던 부분은 터프츠(TUFTS) 대학 플레처 스쿨 교수인 이성윤 교수의 강연 내용이었다. 이성윤 교수는 제주 4·3사건의 책임을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에 있음을 확실시함과 더불어 2016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 참배한 일을 예로 들며 내년쯤 기대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시 제주 4·3평화 공원 방문과 참배를 요청했다.

이 방문은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며 한국 내부의 깊은 이념적 분열을 완화하고 도덕적이며 선하고, 정의로웠다고 판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성윤 교수는 추모식이 끝난 직후, 월 5000만 명 이상이 구독하는 미국 최대 정치 매체인  더 힐(THE HILL)에 일찍이 미국 주류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칼럼을 실었다.

‘더 힐'의 메인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이성윤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하버드 추모식에서의 논점을 근거를 들면서 장문의 칼럼으로 풀어냈다.

이 교수는 4·3사건의 책임자로 이승만과 미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이든 대통령의 제주 4·3 평화공원 방문과 더불어 제주 4·3 유족 후손들의 미국 유학 시 미국 정부가 장학기금을 조성해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치 매체에 정식으로 제주 4·3사건이 거론된 적이 없었다.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리포트에서는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며 과거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내용 정도로 소개되었을 뿐 구체적 사건 개요나 책임규명에 대해서는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더 힐'에 게재된 이성윤 교수 칼럼을 통해 미국 각지에서 상당히 당황해하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수많은 증거자료를 요구하고 있으며 70여 년 전 미국이 벌인 일이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 각처의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명되면서 그 논쟁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70여 년 전 제주도민에게 행한 학살심판대에 올라야 할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이번 추념식에 함께해준 도울 김용옥 선생님과 경희대 이택광 교수님, 오인종 유족회장님, 오영훈 의원님, 그리고 평화재단 고희범 이사장님께도 지면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했을 당시 연설문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Mere words cannot give voice to such suffering, but we have a shared responsibility to look directly into the eye of history and ask what to do differently to curb such suffering again. someday the voices of the…. Will no longer be with us to bear witness. but the memory of the…..must never fade. That  memory allows us to fight complacency. It fuels our moral imagination. It allows us to change.

(단지 몇몇 단어들로는 이러한 고통을 대변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누어 짊어진 책임감을 통해 역사의 눈을 정확히 지켜봐야 하며 다시는 이런 고통의 순간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합니다. 미래의 어느 날이면 그날들의 목소리들은 더 이상 증인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들은 점점 잊혀 가지 않을 것이며 바로 이러한 기억들은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 만들며 도덕적 열망에 힘을 줄 것이며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양영준
제주 한경면이 고향인 양영준 한의사는 2000년 미국으로 이주, 새 삶을 꿈꾸다. 건설 노동자, 자동차 정비, 편의점 운영 등 온갖 일을 하다가 미 연방 우정사업부에 11년 몸담은 ‘어공’ 출신. 이민 16년차 돌연 침 놓는 한의사가 되다. 외가가 북촌 4.3 희생자다. 현재 미주제주4.3유족회준비위원을 맡고 있으며 민주평통워싱턴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칼럼 [워싱턴리포트]를 통해 미국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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