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제주여자고등학교 70기 학생회장을 지낸 A씨와 제주학생인권조례TF,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내에서 벌어진 학생인권침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제주여자고등학교 70기 학생회장을 지낸 A씨와 제주학생인권조례TF,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내에서 벌어진 학생인권침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의 모 고교에서 학생 인권침해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도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교육계와 도민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인권침해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학력 경쟁 중심의 우리 교육 현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교육정책만 따져보면 현 정부에서도 후퇴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교육 비전과 방향을 봐야겠지만,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만 보면 학력 경쟁 중심의 교육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염려된다. 학력과 공정을 명분으로 대입 수능을 강화하고 사라진 일제고사까지 부활하겠다 하기 때문이다. 지명된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인터뷰를 보면 자율형 사립고도 계속 유지할 전망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교육은 대입제도와 ‘학벌 추종주의’가 학교 현장의 교육과정을 규정해왔다. 뿐만 아니라 학력 차별과 빈부격차를 고착화하는 데도 작용해왔다. 그래서 일찍부터 뜻있는 전문가와 시민들은 대학 서열화 폐지와 대입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해왔다. 지난 대선에서 이러한 주장을 수용해 공약으로 내걸었던 후보들은 불행히도 낙선했다. 

학교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는 학생 혹은 교사의 개인적·도덕적 일탈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경쟁 중심의 교육체제와 차별적 학교구조가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나라보다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많고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것도 그렇다. 

3일 제주도 내 시험장 17곳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주도교육청기자단)
지난 2020년 12월 3일 제주도 내 시험장 17곳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주도교육청기자단)

벌써 8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의 명령에 순응하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수장된 것도 자율적 의사결정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 교육체제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질 않았다.

올해 7월, 법률에 따라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의 독립기구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구의 출범 준비를 위해 최근까지 대통령 직속 민관합동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가 시도지역마다 국민참여단을 꾸리고 각종 교육 의제와 방안을 논의하고 수렴해왔다.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 공약에 휘둘리지 말고, 여야가 법률로 합의하고 예정한 대로 차기 정부는 반드시 국가교육위원회의 닻을 올려야 한다. 그리하여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그동안 전국의 국민참여단들이 제시해온 교육 의제와 방안들을 반영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반드시 실천되기를 바란다. 

지난해에 제주에서도 국가교육회의 국민참여단 활동이 있었고, 여러 의미 있는 교육 방안들이 제안되었다(국가교육회의 제주참여단 활동백서, 2022. 1. 참조). 국가교육회의 국민참여단들이 논의해온 10개의 공통의제가 있었다. 차별 없는 포용적 교육체제, 디지털 기반 학교 교육, 교원양성인사제도, 시대변화를 반영한 교육과정, 미래지향적 학습공간, 유아교육의 공공성, 미래지향적 대학입시제도, 국가적 돌봄 체제, 생애 학습권 보장,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협력 방안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20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국가교육회의 국민참여단이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지난해 11월 20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국가교육회의 국민참여단이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이외에 제주만의 독자적 의제도 포함되었다. 여기서 각 의제들에 관한 제주참여단의 의견들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지만, 경쟁과 차별의 교육보다 공공성과 포용성을 넓혀가는 교육을 바란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점은 다른 지역 국민참여단들의 활동결과를 보지 못해 단정하진 못하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안된 내용들은 정권교체 상황과 관계없이 국가교육위원회에 반영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번 6월 지선에서도 교육감과 교육의원 후보들은 제안들의 실천방안을 내놓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제주는 어느 지역보다 경쟁과 차별적 교육체제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제주의 아이들은 대입도 아닌 치열한 고입 경쟁을 치러야 하고, 고입 성공군과 실패군으로 나뉘어 진학하는 차별적 대우를 감당해야 한다. 이를 시정할 대안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국가교육회의 제주참여단도 문제의 심각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이석문 교육감과 도교육청이 경쟁과 차별의 교육체제를 개선하는 정책들을 나름대로 추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학력 경쟁 중심의 교육체제 개선을 위해 일제고사 폐지, 다혼디배움학교 운영, 4·3평화인권교육 등을 활성화하였다. 또한 고교간 구조적 차별 완화를 위해 예술학과 설치, 실업계고 특성화, 고입 제도 개선 등을 도모하며 고교체제 개혁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7일 제주 서귀포 표선고등학교 학생들이 IB DP 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제주도교육청 제공)
7일 제주 서귀포 표선고등학교 학생들이 IB DP 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제주도교육청 제공)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적이었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 특히, 제주교육의 아킬레스건인 고교간 서열화와 차별적 구조는 아직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석문 교육감이 2기 체제에서 이른바 IB(국제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을 들고 나온 것도 일정 부분 미완의 고교체제 개편을 염두에 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현재 IB 교육과정은 교육계 내에서조차 여러모로 논란거리다. 그것은 단지 IB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에 가부나 유불리 문제만이 아니다. 또한 IB(후보)학교에는 고등학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장단이 있지만 모든 것을 떠나 일단 현재진행형인 학교들의 IB 교육과정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이들 학교에 진학한(할) 학생들을 교육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그들에게 실패의 상처를 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번 지선에서 누가 교육감으로 당선되든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여기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고교 간 서열화와 차별적 구조를 해소하는 고교체제 개혁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 이석문 교육감이 재출마한다면 이점을 분명히 유권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IB 교육과정이 고교체제 개편과 상관없이 추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현재 이와 관련해 제기되는 논란거리들에도 답해야 한다.

고창근·김광수 제주교육감 예비후보는 12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고창근·김광수 제주교육감 예비후보는 지난 12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선을 앞두고 중도·보수진영 교육감 후보들이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후보들은 아마도 이석문 교육감의 재출마를 전제하고 그를 진보적인 후보로 규정하는 듯하다. 이러한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혹시라도 보수를 자처하는 후보들이 단지 현 교육감을 이기기 위해 고교 간 서열화와 차별적 구조를 용인하면서 학력 경쟁 중심의 교육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면 제주교육의 앞날은 더욱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발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경쟁과 차별의 교육보다는 공공성과 포용성을 넓히는 교육 방안을 내놓고 유권자를 설득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는 고교 간 서열화와 차별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고교체체 개혁방안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쳤으면 좋겠다. 반드시 의미 있고 실현이 가능한 방안을 내놓는 후보들이 당선되기를 기원한다.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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