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금혼초. (사진=제주투데이DB)
서양금혼초. (사진=제주투데이DB)

수분매개자를 유혹하기 위해 동시에 피었던 벚꽃들이 아빠와 밤길을 걷는 딸들의 자지러진 웃음소리에 다 떨어지더니, 겨울 동안 낮은 포복을 했던 ‘서양금혼초’들이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노란 머리를 곧추세웠다.

제주사람들은 서양금혼초를 ‘개민들레’라고 부른다. 개복숭아, 개나리, 개살구처럼 민들레에 ‘닮았지만 별 볼일이 없는’ 이란 뜻을 지닌 접두사 ‘개-’를 붙인 것이다. 

개민들레는 토종민들레는 물론 서양민들레와도 다르다. 서양민들레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서양금혼초는 들어온 지 40년도 되지 않았다. 서양금혼초는 민들레보다 크고 억세며 봄에만 꽃을 피우는 민들레와 달리 봄부터 가을까지 연신 꽃을 피운다. 게다가 한 개체가 1년에 약 2300개의 꽃씨를 맺고, 깃털을 이용한 특별비행으로 씨앗을 멀리까지 날려 보낸다.

귀화식물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자연 생태계에서 여러 세대를 거듭하며 토착화된 식물을 말한다. 320여 종에 달하는 귀화식물은 대부분 자생식물들과 공존하며 살아가지만 일부는 월등한 적응력과 전파력으로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사회·경제적인 피해까지 입힌다.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는 2016년부터 생태계 위해성을 평가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식물을 ‘생태계교란식물’로 고시하여 관리하고 있다. 

생태계교란식물은 환경 내성 범위가 넓고, 번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단기간에 토종 군락을 밀어내고 단일군락을 형성하여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킨다. 또한 식물개체군의 변화를 초래하여 먹이사슬 균형을 무너뜨리고, 목초지와 농경지에 침입하여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또 어떤 종은 인체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생태교란식물로 지정된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가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이다. 미국 국립야생생물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의 70%는 돼지풀이 원인이다.

현재 환경부가 고시한 생태계교란식물은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영국갯끈풀, 가시상추, 마늘냉이 등 16종이다. 그중 제주도에 유입된 종은 돼지풀, 서양등골나무,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환삼덩굴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서양금혼초이다. 서양금혼초는 1980년대 후반 수입 목초씨를 운반하던 차에서 떨어져 나와 도로변을 잠식하더니 30여년 만에 방목지는 물론 오름까지 점령하였다.

제주 서귀포시는 이달부터 4000만원을 투입해 서양금혼초 퇴치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서귀포시 제공)
제주 서귀포시는 이달부터 4000만원을 투입해 서양금혼초 퇴치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서귀포시 제공)

제주시와 서귀포시는는 이달부터 각 4000만원(국비 50%, 지방비 50%)의 예산을 투입해 서양금혼초 퇴치사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두 행정시가 2020년 이 사업을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이관받으면서 서양금혼초 제거지역이 도서지역에서 도심의 공원 등으로 바뀌었다.

사업 방식도 직접 관리에서 위탁으로 바뀌자 생태계교란식물 퇴치사업이 자생단체 회원들이 거주 지역의 공원에 현수막을 걸고 잡초 제거를 하여 예산을 받아가는 자생단체 보조사업으로 변질됐다. 

8000만원의 예산으로 제주도 전 지역에 확산된 서양금혼초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생태계의 한 자리를 이미 차지한 서양금혼초를 인간이 개입하여 박멸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산을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태계교란식물에 의한 종다양성 감소 및 사회·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종 특성을 반영한 사후관리도 중요하지만 생태계교란식물이 유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혹 유입되었을 때 초기 제거조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종 다양성 상실’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기후재난으로 지구촌 전체에  뚜렷이 각인되어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파리협정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종 다양성 상실’ 문제는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기에 아직도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침팬지박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종 다양성을 거미줄에 비유하였다, 거미줄을 구성하고 있는 줄이 한두 개씩 끊어지면 거미줄이 점점 약해져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처럼 동식물 종이 하나씩 없어지면 ‘생명의 그물망’이 끊겨 나가 지구의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생존을 책임지는 안전망이다. 생물다양성이 유지될 때에만 생태계가 물, 질소, 탄소 등의 유기적 순환을 이루며 스스로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토양을 유지하며, 급격한 기후변화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이자 경고메시지이다. 인류가 이 신호를 무시하여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한다면 지구가 우리 인류에게 반격을 가하여 인류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다.

해는 붉게 저물어 가는데 신혼부부가 노란 서양금혼초가 지천으로 피어난 오름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결혼식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는 것이 당연해진 것처럼 생태계교란식물로 지정된 서양금혼초도 제주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하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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