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고사리. (사진=송기남 제공)
제주고사리. (사진=송기남 제공)

고사리는 왜 제주고사리가 찰지고 맛있다고 하는가. 그 이유는 토양과 기후의 차이에 있다. 고사리는 물을 좋아하면서도 물빠짐이 좋은 땅에서 뿌리줄기가 잘 뻗어나간다. 사방으로 1미터 이상씩 뻗어나가는 고사리의 뿌리줄기는 딱딱하게 굳지 않는 화산회토가 생육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고사리는 햇볕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이다. 한국의 야산 지형의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산맥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육지부의 산야는 백두산을 제외한 모든 산야가 중생대에 이뤄진 산맥이다. 토양은 가뭄에 단단히 굳어져서 식물이 뿌리 뻗기에 적합지 않다. 강우량도 제주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에 비해 제주의 토양은 신생대 화산지질 토양이다. 화산재로 이뤄진 제주의 토양은 손으로도 땅을 팔 수 있을 정도로 푸석푸석하고 부드러운 토양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토양에서는 사방으로 뿌리줄기를 길게 뻗으면서 번식하는 고사리종류의 식물이 살아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육지부의 야산은 농경지가 아니면 모두가 산림지대여서 고사리가 자랄만한 초지야산이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육지에서는 고사리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제주도에는 탐라국 시대부터 온 들판이 목축문화의 중심인 야산초지가 잘 조성이 되어있다. 

제주는 고사리가 생육하기 안성맞춤인 환경 여건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는 고사리가 생육하기 안성맞춤인 환경 여건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그리고 제주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물을 좋아하고 뿌리 뻗기에 부드러운 흙을 좋아하면서 햇볕을 좋아하는 고사리가 생육하기에 제주도 야산만한 환경이 지구상에 어디에 또 있으랴.

고사리의 뿌리줄기나 어린줄기에는 끈적끈적한 액체질과 함께 녹말질과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수분함량이 많은 제주고사리가 찰진 맛을 내는 것도 녹말질과 단백질 함량이 많기 때문이다. 녹말질과 단백질이 부족한 다른 지방의 고사리를 먹어보면 그냥 나뭇가지를 삶아먹는 맛이다.

고사리는 차가운 성질을 가졌다. 동의학에서 고사리는 ‘궐채’라 하여 솟구치는 혈압을 내려준다. 고사리와 궁합이 잘 맞는 재료는 돼지고기와 파, 마늘, 녹두나물이다. 돼지뼈를 넣고 고사리를 넣어 끓인 육개장의 걸쭉한 맛은 소주맛을 당기게 한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고사리 비빔밥을 해먹어도 맛있다

옛 사람들은 고사리를 흉년에 구황식물로 먹기도 하였지만 고사리는 제사음식에 빠질 수 없는 산야채이다. 제주에서는 제사음식 전체에서 고사리채소가 그 첫째가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거창하게 친지들에게 알리지 않고 지내는 제사를 은유적으로 말할 때면 ‘고사리 한콜 삶아먹는 날’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끼리는 알아차리고 어린아이 제사거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 총각의 제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고사리는 이렇게 제사음식에 첫째로 올리는 재료일 뿐 아니라 제상을 차릴 때도 작은 접시에 고사리를 가장 먼저 담아 올린다. 콩나물이나 무채, 호박채 같은 것은 모두 고사리 다음에 올리는 채소들이다.

말린 고사리. (사진=송기남 제공)
말린 고사리. (사진=송기남 제공)

고사리가 스님들에게 수양음식의 상징이 된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공격하려고 할때 백의와 숙제는 이것을 도를 넘는 반란이라 하여 거역하였고 주나라 임금이 내리는 녹봉을 먹지 않겠다고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먹으며 수행하다 죽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선비들이나 고승들이 난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구황식물로 목숨을 연명하지 않았는가 싶다.

고사리를 채취할 때는 잎이 벌어 지지 않은 어린것을 채취한다. 엄지와 검지로 잡고 젖혔을 때 단번에 뚝 부러지는 정도로 줄기의 밑 부분을 남겨놓고 채취해야 질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길게 자란 고사리가 연하게 보일지라도 채취할 때는 중간에서 단번에 부러지는 부분에서 꺾어야 연하다.

채취한 고사리는 한줌씩 가지런히 잡고 머리 부분을 손바닥에 대고 비비면 어린잎이 떨어져 나간다. 고사리는 이파리에 독성이 많으므로 아깝다고 그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옛날 어머니께서는 들판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뱀에 물리지 말라고 생고사리를 삶아낸 물을 모아뒀다가 그물로 손발을 씻고 들판으로 나가도록 하셨다. 뱀이 고사리 삶은 물 냄새가 싫어서 접근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1970년대 시골에서는 봄에 고사리를 꺾어다 팔아 짭잘하게 용돈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1972년도 생고사리 600그램 한 근 값이 25원에 중간상인에게 받고 팔았다. 아침부터 바구니 들고 들판에 나가 채취해오면 적을 땐 다섯 근, 많을 때는 열 근이 넘을 때도 있었다. 

어린 시골아이 손에 시퍼런 100원짜리 지폐와 첨성대가 그려진 10원짜리 동전 몇 닢이 주머니에 들어오면 그날 밤은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맞으며 고사리를 꺾어와서 팔러 가면 상인 아저씨는 물먹은 고사리니까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안사겠다고 한다.

그러면 물 무게를 어느 정도 감안해서 사주면 안 되냐고 따지고 졸라서 흥정이 되면 상인아저씨는 막대저울에 달아서 들어올린다. 저울추를 막대저울 눈금에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저울눈금이 틀렸다고 따졌다. 어린아이가 대드니 상인아저씨는 기가 막혀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옛날 그리도 널려있던 고사리밭들이 지금은 골프장이 점령하고 팬션들이 점령하고 땅투기꾼들에게 넘어가서 개발되는 바람에 야생초목초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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