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모종을 정식하고 풀 멀칭을 해준 밭. 모종이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상추 모종을 정식하고 풀 멀칭을 해준 밭. 모종이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무경운(밭을 갈지 않는 것;편집자) 5년 차인 밭이 있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져 잎채소를 심어보자 맘 먹고 10월 중순경 모종을 내고 밭으로 옮겨 심었다. 직파를 고집하다가 상추 직파를 몇 년째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모종 내고 옮기기로 했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고 검색을 해 보니 상추는 연중재배가 가능하다 했다. 한여름 무더위 파종을 제외하면 언제든 씨앗을 뿌리면 재배가 가능하단 이야기다. 하지만 상추는 10월 중순경에 씨를 뿌려야 오랜 기간 맛있는 상추를 수확할 수 있다. 

너무 이르게 8월쯤 파종하면 몇 잎 수확하면 바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봄 파종도 많이 하고 모종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지난해 가을 파종한 상추보다 꽃대가 빨리 올라오고 맛도 덜해 수확 기간이 짧다. 

제법 자란 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제법 자란 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상추모종 내는 것이 처음인지라 그 작은 상추 씨앗을 한 알씩 포트 구멍에 조심스레 넣는 작업부터 어려웠다. 노안에 돋보기를 장착하고 무뎌진 손끝으로 상추 씨앗 한 알만을 집어내는 것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렇게 한 판을 완성하고는 허리 펴고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상추가 폭풍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한 달 정도 마당에서 자란 모종은 몇 번 사 봤던 상추 모종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다. 빈 구멍도 많고 키는 작고 떡잎은 벌써 누렇게 변했지만 본 밭에 옮겨 심었다. 

작년부터 두둑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밭을 정리하고 전 작물의 잔사(찌꺼기)와 풀로 멀칭을 하고 눈을 크게 떠야 보이는 상추 모종을 심었다. 모종을 심기 전에 포트에 물을 흠뻑 주고 밭에 심고 나서는 따로 물을 주지는 않았다. 밭에 농업용수가 설치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늘 그렇게 모종을 심어 왔는데 잘 자라주었다. 

상추 심은 직후. 상추가 보이시나요? (사진=김연주 제공)
상추 심은 직후. 상추가 보이시나요? (사진=김연주 제공)

여리여리해서 자라줄까 싶은 상추였지만 멀칭을 충분히 하고서 심었다. 전 작물 잔사가 없거나 멀칭할 풀이 제대로 없는 곳은 맨땅이 드러나게 심기도 했다. 검은 흙이 그대로 드러난 곳을 보니 풀에 치어 자라지 못할 상추가 벌써 걱정이다. 

본 밭에 정식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 잎을 수확할 수 있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그 상추들이 이제 제법 푸른 자태를 뽐낸다. 떡잎을 정리해 주고 잘 자라지 못한 작은 잎들도 정리해 주고 나니 제법 상추의 모양새가 가지런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잎이 크게 자라지도 않고 자람새가 전체적으로 느리다. 

멀칭을 충분히 해 준 곳은 상추들도 안정적으로 잘 자라고 풀도 우악스럽지 않다. 반면 멀칭이 부족하거나 없는 곳은 풀이 왕성하게 자라고 상추는 노랗게 비리비리하다. 

지난 겨울 눈 속에 파묻혀 지내는 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지난 겨울 눈 속에 파묻혀 지내는 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1월과 2월 눈도 내리고 기온이 많이 낮아진 상태에선 성장을 멈춘 듯했다. 풀들도 거의 자라지 않고 상추도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다. 눈에 파묻히거나 거센 바람이 불어 상추잎 끝이 시들거나 타버리긴 해도 긴 겨울을 찬바람에 맞서 잘 견뎌 주었다.

바람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기온이 살짝 오르고 눈을 녹일듯한 비가 한번 내리고 나니 상추는 색이 달라졌다. 칙칙한 겨울색을 버리고 상큼한 봄색으로 갈아 고는 폭풍성장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상추가 가장 맛있을 때다. 자연재배 텃밭의 상추는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것에 비하면 질기다고 느낄 수 있다. 더 고소하다 느낄 수도 있겠다. 상추마다 제각각인 자기 고유의 맛을 더 잘 느낄 수도 있다. 더 부드럽거나 더 쌉싸름하거나 더 고소하다. 잎의 크기도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청상추는 아주 조그맣게 자라고 거칠지만 적상추는 크게 자라고 더 부드럽다. 

청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청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청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적상추. (사진=김연주 제공)

구구절절 시시콜콜 상추재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서도 아니고 재배 매뉴얼을 만들어 내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여러 가지 상추 재배법 중 단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을 고민할 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재배법인 건 분명하다. 

텃밭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농지와 농업은 지속가능할지 모르지만 농민은 지속가능하지 않겠다는 비아냥 섞인 걱정도 생각해 볼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트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거의 모든 상추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것이라는 현실이 걱정스러운 사람은 나뿐인가. 

요즘 한창 상추 수확 중이다. (사진=김연주 제공)
요즘 한창 상추 수확 중이다. (사진=김연주 제공)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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