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가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일대 양파밭을 갈아엎고 있다. (사진=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 제공)
지난 2월 24일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가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일대 양파밭을 갈아엎고 있다. (사진=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 제공)

“멀쩡한 양파를 아깝게 왜 갈아엎어요?”

“뉴스에선 양파값이 폭락했다는데…. 마트 가보면 그렇게 싸지도 않아요.”

“마늘도 그렇고 양파도 그렇고…. 가격 가지고 농민들이 자주 시위하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하죠.”

“밭을 갈아엎으면 돈을 준다고요?”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제주와 전남에선 대대적으로 양파밭을 갈아엎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현상을 바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모두 다른 질문이지만 사실 하나의 문제다. '양파 가격'에서 파생되는 질문들이다. 

밭을 갈아엎을 정도로 양파값이 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민이 유통업자에게 양파를 넘기는 가격은 바닥을 치지만 마트에 진열된 양파에 붙은 가격표는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예산을 써가며 밭을 갈아엎는 농가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파값이 폭락할 때마다 산지폐기가 최선의 해결책인가?

분명한 건 농민도, 소비자도, 정부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끈!! 제주농업>은 4회에 걸쳐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갈아엎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속가능한 양파 농사가 가능한지 살펴보려 한다. 

마트에 진열된 양파. (사진=김재훈 기자)
마트에 진열된 양파. (사진=김재훈 기자)

 

#양파값 80%까지 폭락…수확할수록 손해

양파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양파를 판매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생산지(밭)에서 바로 폐기처리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산지폐기라고 한다.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일 년간 재배한 작물을 ‘아깝게’ 폐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농민이 직접 갈아엎는 경우다. 해당 작물의 가격이 떨어져서 판매를 하더라도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겠다고 판단할 때다. 수확하고 판매를 하려면 인건비와 포장비, 물류비 등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낮다면 차라리 폐기를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시장에 내놓기 위해 키운 작물을 수확할수록, 팔수록 손해가 생기는 상황이다. 농민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농산물을 갈아엎는 수밖에 없다. 재배에 들어간 비용은 생산자(농민)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부담이 된다. 

“양파를 가장 많이 쓰는 데가 어디일 거 같아요? 짜장면 파는 ‘중국집’이에요. 올해 코로나 때문에 식당들 문 닫고 하니까 그런 데서 양파를 사질 못하는 거죠.” -한태호 제주사회적농업연구회 대표

농산물유통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24일 기준 양파 1㎏당 도매 가격은 371원으로 지난해 2월 22일 도매가격 1872원과 비교해 80% 이상 폭락했다. 시장경제에서 상품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공급(생산량)이 크게 늘었거나 수요(소비량)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양파 도매가격. (사진=농산물유통종합정보시스템 농넷 갈무리)
양파 도매가격. (사진=농산물유통종합정보시스템 농넷 갈무리)

올해 양파 생산량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조생종(같은 품종보다 일찍 개화하고 실과를 맺는 품종) 양파의 경우 올해 재배면적은 지난해와 비교해 1~4% 정도 증가한 수준이다. 이번 경우는 확 줄어든 소비량이 가격 폭락의 원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지난해에 이어 2년 넘도록 이어지자 대부분의 국내 식당들은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정부의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영업시간과 받을 수 있는 손님 규모가 제한됐고, 다녀간 손님 중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일정 기간 휴업에 들어가야 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양파를 가장 많이 소비해왔던 식당들이 그러지 못하자 양파는 남아돌고 가격은 폭락했다.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나오지 않자 결국 양파 생산 농가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난 2월 23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에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양파 최저생산비 보장’과 ‘양파 출하정지 확대 실시’ 등을 외치며 수확을 앞둔 양파밭을 갈아엎었다. 

또 다음날인 24일엔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가 서귀포 대정읍 동일리 일대 양파밭을 갈아엎었다. 전남과 제주 모두 정부와 정치인을 상대로 양파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차라리 갈아엎는 게 손해를 줄이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24일 오전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가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수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 제공)
지난 2월24일 오전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가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수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 제공)

#농산물 수급 안정 위해 산지폐기 제도 실시

양파밭을 갈아엎는 또 다른 이유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산지폐기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다. 산지폐기 대상 농가에겐 보상금이 지원된다. 정부는 지난 1995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농산물 수급 안정 사업 일환으로 산지폐기 제도를 도입, 실시했다. 정부는 해당 작물 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거나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 예상되면 이걸 막기 위해 수급 조절 정책을 시행한다. 

말 그대로 수요와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가격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앞서 언급한 시장경제 논리에 따르면 공급을 줄이거나 수요를 늘리면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로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면 가격이 떨어진다. (산지폐기 방식 이외에 정부의 농산물 수급 정책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한다)

밭에서 양파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폐기한다는 것은 농산물 시장에 양파 공급량을 줄여 가격 하락 폭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산지폐기 농가에겐 일정의 보상을 해줘 손해를 어느 정도 보전해주는 효과가 있다. 또 앞으로 양파를 수확할 농가에겐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둘 모두 농산물 가격 안정을 꾀해 농가의 재정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다. 

#제주 산지폐기에 연간 50억원 이상 예산 투입

산지폐기는 곡물이 아닌 채소를 위주로 이뤄진다. ‘저장성’ 때문이다. 곡물은 저장성이 높기 때문에 상품 가치를 비교적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백미의 경우 유통기한이 도정 후 2년이다. 만약 가격 폭락이 예상되면 팔지 않고 저장했다가 가격이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팔면 된다. 

양파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양파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반면 채소는 ‘저장성’이 매우 낮다. 금방 무르고 썩기 때문에 상품성이 오래 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채소는 산지폐기를 통해 공급량을 줄이는 게 수급 정책의 하나로 활용된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는 채소는 배추와 무, 고추, 마늘, 양파, 대파 등이다. 모두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이고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다. 

이밖에 지역특화 채소에 대해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산지폐기 보상금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제주의 경우 양배추와 당근 등이 있다. 전남 신안군의 경우 시금치가, 강원도 화천의 경우 애호박이 있다. 

제주지역은 산지폐기 지원금으로 매년 5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제주지역 산지폐기 면적과 지원금액을 살펴보면 지난 2020년 월동무 235ha를 폐기, 23억5600만원(국비 11억7800만원·도비 11억7800만원)을 지원했고 마늘 67ha를 폐기, 43억 2000만원(국비 21억6000만원·도비 21억6000만원)을 지원했다. 

2021년엔 월동무 545ha를 폐기, 41억9800만원(국비 20억9900만원·도비 20억9900만원)을 지원했고 양배추 224ha를 폐기, 14억2000만원(전액 도비)을 지원했다. 

올해는 3월말 기준 양배추 247ha를 폐기, 21억원(전액 도비)을 지원했고 당근 187ha를 폐기, 12억원(전액 도비)을 지원, 조생양파 94ha를 폐기, 15억8500만원(국비 6억900만원·도비 9억7600만원)을 지원했다. 

애써 농사지은 작물을 폐기하는 방식이 과연 농산물 수급 조절을 위한 필수적인 해법일까. 다음 편에서는 정부 농산물 수급 정책과 한계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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