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광 상품가운데 전세계로 가장 많이 팔려나간 제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돌하르방이 아닐까 싶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 기념품은 물론이고 돌하르방의 이미지를 이용한 상품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져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돌하르방이 정말로 제주를 대표할만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젊은 사람들은 노인분들이 알지 않을까요? 했고,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알 것 같은데, 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주도 사람들은 모른다는 얘기다.
돌하르방이라는 명칭도 따지고 보면 붙여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우성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옹중석, 망주석과 뒤섞여 부르던 이름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제주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던 1971년에 제주문화재 위원회에 의해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돌하르방이 있었던 제주읍성 동문지역에 우석목거리가 있던 것에서 보듯 우석목이란 말을 더 많이 썼다고 한다. 우석목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돌하르방은 각 마을에 있는 신당이나 폭낭(팽나무)처럼 제주인들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던 것도 아니다. 현재까지 총 48기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 세 개의 주요성읍인 제주목의 동,서,남문에 각 8개씩 24개, 정의현, 대정현의 동, 서, 남문에 각 4개씩 세워져있었다. 말하자면 읍성을 지키는 수문장역할을 한 셈이다.
수문장역할에 대해서는 기록에도 남겨져 있다.
1918년에 김석익이란 제주사람이 <탐라기년>이라는 제주 역사책을 발간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영조 30년인 1754년에 제주 목사 김몽규가 성문밖에 옹중석을 세웠다고 되어있다.
옹중석이란 중국 진시황 때의 장수인 완옹중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완옹중의 명성은 흉노에까지 떨쳐졌는데 그가 죽자 진시황은 그의 형상을 구리로 만들어 성문밖에 세워두었다. 완옹중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흉노족이 쳐들어오다가 성문 앞의 완옹중의 상을 보고 그대로 도망갔다고 한다. 그 후로 진나라 사람들은 왕옹중의 형상을 구리나 돌로 만들어 궁궐이나 관아 앞에 세우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글깨나 읽은 사람들이 궁궐이나 무덤 앞에 있는 커다란 석상이나 돌장승을 옹중석이라고 불렀다. 제주에서도 옹중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한문에 조예가 깊은 한학자들이었다.
글깨나 읽은 제주 목사 김몽규가 옹중석이라고 해서 설치했는지 아니면 그걸 기록한 <탐라기년>의 작가가 옹중석이라고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제주 성문 앞에 돌하르방이 세워진 것은 사실이다. 무인의 모습을 본따서 부리부리하게 만들어 그 앞을 지나려면 오금이 저리게 하려는 의도도 역시 옹중석의 기능과 비슷해 보인다.
김몽규 목사가 옹중석을 세웠다는 1754년을 전후한 시기는 소빙기(지구의 평균 온도가 정상보다 매우 낮았던 시기를 말한다)의 절정이라서 해마다 천재지변과 그에 따르는 흉년과 전염병에 시달리던 때이기도 하다. 돌하르방이 성문입구에 세워진 것은 그런 흉흉한 시대에 도성 안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코로나방역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렇게 기록으로 만든 연대가 분명한데도 돌하르방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몽골의 영향이 강한 제주인 만큼 몽골의 훈촐로가 제주에 넘어와서 돌하르방이 된 것이라는 설, 발리에 석상이 많으니 그곳에서 넘어와 만들어졌다는 설, 남해안 일대의 장승과 모양새가 비슷하니 그곳에서 전래되었다는 설, 돌하르방에 구멍이 있어서 정낭의 구실을 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 자체에서 만들어졌다는 설, 이렇게 네 개의 설이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훈촐로나 발리의 석상은 모양도 기능도 닮은 점이 부족하다고 한다. 제주도 정낭의 일부라는 것도 정낭을 설치할 홈이 모든 돌하르방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마을입구에서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기능의 공통점과 모양의 유사성을 보면 장승과 비슷해 보인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한다.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이 만들어진 때가 분명한 반면에 대정현성,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은 모양도 다르고 만들어진 시대도 제각각이다. 대정읍성의 돌하르방은 16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고, 정의읍성의 돌하르방은 그보다 다소 늦은 16세기말에 태어났다. 그리고 돌도 주변 돌을 이용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한가지 유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돌하르방인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복신미륵의 모습과 비슷하다. 복신미륵은 탐라국시대 탐라국성의 동서 양쪽에 세워져 있으며, 그 모양이 15세기 불상의 모습을 띄었다는 것으로 보아 대정현 돌하르방의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목의 돌하르방은 돌장승과 비슷하며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보다 더 제주사람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렇게 각 읍성마다 모양도 재질도 시대도 다르다
제주는 1만8000의 신들의 땅인데도 돌하르방은 신이 갖는 내력도 없고 숭배의 기능도 없다. 마을신앙이나 가문 신앙의 대상이라고 하기엔 크기도 크다. 무인을 상징하는 왼손이 위로 올라간 돌하르방과 문인을 상징하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간 돌하르방이 대칭을 이루게 세워놓은 것으로 보아, 유교문명의 전도사였던 조선시대 관아의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마을보다 읍성중심의 수문장역할을 했다는 것도 제주 토착민들이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처음 만들어진 곳은 대정현이다. 유배인들이 제주에 들어오는 포구인 화북포구로 들어오는데, 이곳에서 가장 먼 곳이 대정현이다. 유배형은 거리가 중요해서 화북포구에서 대정현까지 구불구불 걸어서 거리를 맞췄기 때문이다. 대정현감은 이름난 유학자들인 유배인들에게서 성문밖 수문장을 세우도록 조언을 받았고, 그래서 가장 먼저 이곳에 돌하르방이 성의 수호신으로 세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정현의 석수는 당시 제주에서 가장 이름난 석상인 복신미륵을 참조하여 독특한 돌하르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본 정의현감도 뒤늦게 돌하르방을 만들어서 성문 앞에 세웠을 것이다. 그래서 크기가 조금 커졌다.
대정현감과 정의현감은 제주출신이었기에 제주사람들의 정서에 보다 가까운 돌하르방의 제작을 용납했을 것이다. 제주목사인 김몽규는 외지인이다. 김몽규는 보다 더 옹중석에 가까운 형상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 모델로 돌장승을 제시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정의현감이나 대정현감의 상관인 제주목사의 격에 맞게 키가 큰 돌하르방이 제작되었고, 개수도 두배로 늘려서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제주도가 원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돌하르방이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서 자리잡고, 그것에 대해 제주사람들조차 거부감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네이밍의 승리가 아닐까 싶다. 제주사람들은 친근함과 존경심을 갖는 대상에게 하르방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무서운 옹중석이나 장승과 달리 뭔가 짖궂은 할아버지모습으로 보이게 하는데에 이 이름이 결정적인 듯하다. 손주를 잔뜩 꾸짖을 듯하면서도 그 속에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할아버지 모습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도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은 듯하다.
관광객들도 유음으로 끝나는 제주의 독특한 단어가 갖는 편안함과 제주어라는 토속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재가 현무암이다보니 더욱더 이국적이고 신비함마저 느껴진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돌하르방은 이제 흉년과 전염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을 농림축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에 넘겨주고 사람들로부터는 사랑만 받는 존재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 그야말로 성공한 하르방(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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