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유족이 헌화를 한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nbsp;<br>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된 가운데 유족이 헌화를 한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4·3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과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발생한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를 두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오임종)는 성명서를 내고 “본격적인 보상금 지급 절차에서 엉클어진 가족관계로 인해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될 유족들이 많다”며 “특히 4·3 핵심 문제로 떠오른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는 매우 난해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로 인해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사실상 유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며 “잘못된 과거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 가고자 실시하는 과거사 청산의 절차가 도리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해 12월 4·3희생자의 국가 보상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둔 시점에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완고한 반대로 가족관계특례 조항이 빠지게 됐다”며 “(유족회는)정부에서 보상금으로 내년 예산까지 편성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수용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주4·3사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에서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법을 마련해야만 하며 그 책임은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특별법 12조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 적용 대상을 ‘희생자’에서 ‘희생자 및 유족’으로 확대 △관련 대법원규칙 제2조 개정을 통해 희생자로 한정된 범위를 희생자와 직계존비속, 사실상의 자 등 이해관계인으로 확대 등을 요구했다. 

유족회는 이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시행령 즉시 개정을, 대법원을 상대로 친척들의 인우보증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국회 및 정치권을 상대로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적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방위적인 해법 마련해야”
정의로운 4·3해결을 위한 선결과제로서 입법,행정,사법부의 전향적 자세 필요

지난해에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신청에 대한 준비가 마무리단계에 이르렀고, 하반기부터는 순차적으로 신청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이에 즈음하여 4·3문제에 있어 제도권 내 최고 의결기구라 할 수 있는 4·3위원회가 금명간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4·3희생자에 대한 보상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여지며, 특히 보상금 신청건의 처리 및 신청 순서 등 민감한 사항들이 이번 회의를 통해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것은 본격적인 보상금 지급 절차에서 엉클어진 가족관계로 인하여 정당해야 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될 사실상의 유족들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화되어 4·3의 핵심문제로 떠오른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는 매우 난해한 과제라 할 수 있다. 4·3이라는 시대적 혼란기에 출생과 사망, 혼인 등의 관계를 올바르게 등재하지 못하여 사실과는 다르게 살아온 불운한 유족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이 자신의 뿌리를 못 찾고 사실과 다르게 살아온 지난 70여년은 허상의 삶이었고, 가족관계가 뒤틀려진 사유가 자신의 의지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갖은 피해를 고스란히 당사자가 감수해야만 했다. 만시지탄이건만 이제 4·3희생자의 명예회복의 차원에서 국가의 보상이 진행될 것이고, 그 보상금은 현행 민법에 따라 지급받을 권리가 부여될 예정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게 엉클어진 가족관계로 인해 당연히 인정받아야 할 권리가 사실상의 유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주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결국 불운한 그들은 다시 한번 좌절감과 상실감으로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공동체의 갈등과 분란이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잘못된 과거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 가고자 실시하는 과거사 청산의 절차가 도리어 심각한 부작용만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예로부터 등고자비 행원자이(登高自卑 行遠自邇)라 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차례를 지켜 기본적인 것부터 이뤄나가야만 한다고 했다. 갈등 유발과 사회적 혼란이 예상됨이 분명하다면 근원적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지극히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구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귀책사유를 유족 당사자에게 전가하고 뒷짐을 져버리는 것은 책임있는 국가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사실상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국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국가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좀더 자발적이며 주체적인 자세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되돌아 보면 4·3특별법 개정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고된 길이었다. 그 역경의 험로를 뚫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특히 지난해 12월 4·3희생자의 국가 보상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통과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완고한 반대로 가족관계특례에 대한 조항이 빠지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가족관계특례 조항은 유족회 및 관련 단체가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하던 과정에 4·3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고, 이에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시켜 입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표명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가까스로 여야의 합의를 통해 개정절차에 박차를 가하던 중이었고, 정부에서도 보상금으로 내년도 예산까지 편성해 놓은 상태였기에 고육지책으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수용해야만 했다. 다만 조건부로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로 하여 제도개선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최근에 관련 용역 대상자를 선정하고 착수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바라건대 ‘제주4·3사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이 면밀하고 심층적으로 수행되어 뒤틀린 가족관계를 올바로 정리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법을 마련해야만 하며, 그 해법 마련의 책임은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 행정, 사법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현행 4·3특별법 제12조에 명시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에 대한 가능성을 폭넓게 적용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시행령 13조에 명시된 적용 대상을 ‘희생자’대신 ‘희생자 및 유족’으로 정정해서 적용해야 하고, 관련 대법원규칙 제2조 역시 개정을 통해 현행 희생자로 한정된 범위를 희생자, 그 직계존비속 및 사실상의 자 등 이해관계인으로 실질적 유족까지 확대시키며, 이와 관련한 인우보증인의 범위도 현행 민법상 친족의 범위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天倫)이기 때문에 법실증주의적 시각에 근거하여 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늘상 주장하는 형평성의 문제나 기존 법체계의 안정성 문제 등도 천륜보다 우선하는 가치들로 볼 수 없다. 또한, 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적 절차도 필요할 것이다. 4·3특별법 및 관련된 법령 개정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든 별도의 법 제정을 하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하고 매진해야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의 몫이다. 무릇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합법성에 더하여 도덕성과 윤리성이라는 실질적 근거를 모두 만족시킬 때 비로소 올바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 도덕성과 윤리성의 근본은 정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며,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라 할 것이다. 

   정권교체기에 즈음하여 혹여 4·3해결에 대한 방향성이 틀어지거나 그 추진력이 상실되어질까 염려된다. 민주주의의 절대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흔들릴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 모두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할 헌법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4·3해결을 위해 정의로움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자세로 좀더 진정성 있게 임해 주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이 강력히 촉구한다. 

1. 정부는 즉시 국무회의를 열어 시행령을 개정하라. 
2. 대법원은 관련 규칙을 개정하여 친척들의 인우보증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이 가능하도록 조치하라.
3. 국회 및 정치권은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적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라.


2022년 4월 27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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