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책방 ‘어나더 페이지’. (사진=요행)
서귀포 모슬포에 위치한 책방 ‘어나더 페이지’. (사진=요행)

제주에서도 바람이 거세기로 소문이 자자한 마을, 대정. 
그 한 모퉁이에 2년 전 책방이 들어섰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30대 청년 신의주씨는
‘시집도 아니가고 잘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곡, 
뭣허잰 험이라?’라는 핀잔과 구박과 주변의 염려 
또, 스스로의 불안을 
마을을 채우는 바람결에 흘려보내고 기어코 2020년 7월 25일. 
무더위가 기승이던 한여름날에 책방 문을 열었다. 

책방 문을 열기 전 그해 2월부터 5개월간 공간 구성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목수셨던 할아버지의 피를 받은 아버지는 섀시일을 하셨는데
작은딸의 꿈을 응원해 주기 위해 손수 목재를 다듬어 
책상이며 책장 등 가구를 만드셨다. 

책방에 들어서면 따스한 느낌을 한껏 받는데 
아버지의 사랑이 오후면 책방을 가득 메우는 햇살처럼
환하게 책방을 채우고 있는 셈.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녹록지 않아서
아버지와 책방지기는 단 1mm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길 밥 먹듯 했다고 한다. 

책방지기의 개인 책을 비치해 누구나 책을 읽고 쉬어갈 수 있는 ‘공유서가’. (사진=요행)
책방지기의 개인 책을 비치해 누구나 책을 읽고 쉬어갈 수 있는 ‘공유서가’. (사진=요행)

‘지구시민을 위한 제주서쪽 바닷마을 책방’ 
한 출판사가 이 책방을 위해 제작한 책갈피의 문구다. 
‘어나더 페이지’의 큐레이션 성향을 간파하는 말이다. 
책방지기의 표현을 옮기면 어나더 페이지의 큐레이션의 주제는 
‘환경, 로컬, 다양성(아동, 젠더, 장애, 인권 등)’이다. 
온라인을 비롯한 대형 서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책들이 이곳에는 있다. 

세상이 넓고 인종도 문화도 다양한 만큼 책의 주제도, 장르도, 형식도 다양할 텐데
꽤 오랜 시간 우리는 대형 출판사가 출판하는 책들만 만나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공백을 동네서점이 채우고 있다. 
책방의 이름인 ‘어나더 페이지’는 
이 책방이 선보이는 ‘불편해서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오늘’을 열어가기를, 삶의 다른 한 페이지를 열기를 바라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담겨있다.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그녀는 제주시민, 서귀포시민도 좋지만 지구시민이 되면 참 좋겠다는 소망을 고백했다.
브라질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의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처럼
제주 또는 내가 사는 곳에서의 일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실제로 그렇다. 
예를 들어, 제주 연안의 골칫거리인 해양쓰레기의 경우 외국에서 밀려온 것들도 꽤 되는데
태평양을 낀 나라의 연안에선 우리나라가 출처인 쓰레기가 발견되고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노동착취와 환경 파괴 등의 피해를 입는 나라 혹은 마을을 위해 
지구인들이 팔을 걷어붙여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현재의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사는 운명공동체라는 걸 상시 기억해서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기를 바라 
책방지기의 서가는 그런 문제들을 다루는 책들이 정성스레 진열돼있다. 

환경, 로컬, 다양성을 주제로 선정된 책들. (사진=요행)
환경, 로컬, 다양성을 주제로 선정된 책들. (사진=요행)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흔한 이야기. 하지만, 불편해서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 
그런 현실을 ‘어나더 페이지’의 책을 통해 만나고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모래밭에서 황금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열심히 책을 고르고 또 고른다. 

책방에는 고전 문학작품을 비롯해 베스트셀러와 대형 출판사의 신간도 구비돼 있다.
책방을 찾는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해 이왕이면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참 욕심이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배려심이 어마하다고 해야할까. 
그녀가 하는 일들을 보면 둘 다다. 

#좋은 피드백은 책방지기를 춤추게 하고 

이곳은 책방이면서 북카페이면서 문화공간이다.
매해 여러 문화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심야책방, 북콘서트, 북클럽, 북토크, 책방데이 등 굵직한 사업도 있고
동네 삼촌과 꼬마들을 위한 작은 파티도 연다. 

행정기관의 여러 공모사업에 지원하고 그 일환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건
보다 많은 사람이 책방과 가까워지길 바라서이다. 
책방의 문턱이 낮아야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그래서 누구나 수시로 책방을 드나들고 수많은 책들 속에서 자신과의 주파수가 맞는 책과
운명적으로 만나서 그이의 삶이 보다 더 풍요로워지기를 열렬히 바란다. 

책방지기 신의주. (사진=요행)
책방지기 신의주. (사진=요행)

도대체 이런 열정은 어디에서 나올까? 
단도직입적으로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세요?”라고 묻자 1초도 망설임이 없이
“이게 너무 재밌어요!”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피드백은 그녀의 열정이란 불에 기름을 붓는다고. 

“어떤 피드백이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제 큐레이션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는 분들도 있고요, 환경과 젠더 등 특정 부분의 책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여기에 와서 해소한다는 분들도 있고요, 계절마다 꼭꼭 오셔서 한 권 이상의 책을 사고 가시는 분도 계세요. 또,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 책은 안 팔릴 거야’했는데 그런 책을 사는 분들이 계세요. 공간이 따듯하다, 큐레이션이 좋다, 프로그램 덕에 생활이 풍성해졌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이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세요. 마음이 정말 굉장한 부자가 되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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