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3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는 이제 ‘대한민국의 끝’이 아니라 ‘대한민국 희망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면서 제주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3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는 이제 ‘대한민국의 끝’이 아니라 ‘대한민국 희망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면서 제주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더불어민주당이 제주시 을 보궐선거 후보로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낙점했다. 소문이 무성하던 ‘전략공천’이 사실이 되었다. 경선을 주장했던 홍명환·김희현 도의원 등의 반발이 거세다. 이번 전략공천은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지역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사회의 상식선과도 위배된다.

이번 전략공천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서울중심주의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의 여론도, 지역의 가치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대 졸업과 김앤장 출신이라는 ‘김한규 전 비서관의 스펙이 다른 후보군들보다 뛰어나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정치에서 학력과 스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리 사회는 진작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했다. 고위직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고, 300명의 국회의원 중 36%가 스카이 출신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되는 여전히 최하위다.(2016년 한국개발연구원, OECD 공동조사)

선거 때만 되면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고비용 저효율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인 엘리트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냉혹하다.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5년 동안 민주당은 ‘적폐청산’을 구호로 내세웠다. 5년이 지난 지금 청산은커녕 적폐의 적대적 공동체는 여전하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내로남불’이라고 서로를 비난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적대적 공존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대선 기간 민주당을 공격했던 국민의힘 장관 내정자들의 면면을 보면 청산되어야 할 것은 ‘적폐’라는 수사 뒤에 감춰진 ‘엘리트 공동체’다.

그들에게 지역의 민의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정치의 엘리트주의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민주당이 전략공천을 선택했다면 국민의힘은 ‘공천 쇼핑’의 대결이다. 제주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던 인사가 공천에서 탈락하자마자 지역구 공천을 신청한다. 도지사와 국회의원의 역할이 엄연히 다르고, 도민들의 기대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민의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한 줌 권력 앞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는 사라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 미시간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에서 민주주의의 동력을 ‘자기표현의 가치’라고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자기표현의 가치’란 외부의 구속이나 지도, 영향력을 받지 않은 조건에서 형성된 자신만의 선호를 의미한다. 민주당의 전략공천은 명백하게 지역의 자기표현의 가치를 정면을 거스른다. 좋으나 싫으나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 내리며 활동했던 이들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백무산 시인은 ‘민주주의 동력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늘 최악을 발명하면서 차악을 선택하라고 한다고. 우리 정치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이유는 언제나 스스로를 차악이라고 말하며 선택을 강요한 보수 양당의 적대적 동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의 결정은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염두에 둔 최악의 판단이다. 차악도 아니고 최악을 발명해버린 ‘꼼수’가 과연 어떤 결과가 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오직 ‘당선’이 우선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는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정치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의 진실을 선택할 권리는 없는 것인가. 선거가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축제가 되는 날은 먼 미래의 일인 것인가. 도대체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 최악과 차악의 대결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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