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새순과 누런 수꽃색. (사진=송기남)
소나무의 새순과 누런 수꽃색. (사진=송기남)

소나무는 지구상에 오신 지가 매우 오래된 식물이다. 전 세계에 그 종류도 무지하게 많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소나무처럼 강인하고 의연한 기상을 노래하거나 예술가들이 화폭에 자주 등장시켜왔었다. 애국가 가사에도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의연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는 우리 땅 어디에도 자라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각인되어있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특히 고궁이나 사찰 등 국가 문화재급 건축물에는 ‘춘양목’이라고 하는 금강송을 최고의 재료로 쓰고 있다. 오죽하면 문화재청에서는 소나무님께 정 2품의 품계로서 벼슬을 주어 늙으신 낙낙 장송 어르신을 극진히 모시도록 하였을까? 문화재를 건축하는 데 쓰이는 나무라 몸값도 신분도 귀하신 분이 소나무님이시기에 품계와 벼슬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소나무는 건축뿐 아니라 사람이 죽어 묻을 때도 사용하는 나무다.

소나무는 곤충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원시식물이다. 지구상에 다량의 식물과 곤충들이 나타나기 전에 지구에 오셔서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수정시켜 번식해왔다. ‘우리가 광물로 캐어다가 찬란한 보석으로 다듬어 쓰는 호박’이라고 하는 광물은 바로 소나무의 송진이 굳어서 생긴 것이다.

약 5000만 년 전 중생대 지질 운동 때 땅속에 묻혀버린 소나무의 송진액이 수천만 년간 짓눌려 압축하면서 수분이 증발한 채로 딱딱하게 굳어진 것이 황금같이 찬란한 호박이다. 옛날 1970년대 시골에서 아이들은 솔밭에 땔감을 구하러 갔다가 소나무가 베어진 그루터기에 흘러나와 굳어지는 송진이 있으면 그것을 낫으로 긁어서 가져왔었다.

그 송진들을 모아뒀다가 비 오는 날 축축하게 젖은 나무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붙일 때면 조금만 꺼내서 불을 붙여도 기름 타듯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불이 붙었다. 이때 어른들은 ‘솔내가 난다’고 하였다. 그때 ‘솔내’라고 한 것은 냄새가 아니라 연기를 말씀하신 거였다. 제주에서는 연기가 나면 내가 팡팡 난다고 하셨다.

소나무의 새순과 누런 수꽃색. (사진=송기남)
소나무의 새순과 누런 수꽃색. (사진=송기남)

송진이 쓰이는 곳은 불을 피우는 데 말고도 또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동네 안에 있는 공동수돗가에서 허벅(항아리)에 물을 길어 오셨는데 어느 날 허벅에서 물이 아주 미세하게 새고 있었다. 어머니는 송진을 꺼내서 살짝 녹이고는 금이 간 허벅을 송진으로 땜질하고는 다시 물을 길어오셨다. 

제주에서 손박이라고 하는 나무바가지 같은 것이 살짝 깨졌을 때도 송진으로 땜질을 하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께 배우셨고 외할머니는 증조할머니께 증조할머니는 고조할머니께 그렇게 수백 년 수천 년간을 삶의 지혜를 전수 받으면서 이어 오셨다. 소나무 껍질은 그 옛날 독립군들이 동만주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항일투쟁을 할 때도 칡뿌리와 함께 초근목피로 목숨을 지탱하던 식량이었다.

옛날 제주의 장례 때는 흰쌀가루로 빚은 떡을 떡본으로 찍어내어 솥에다가 쪄내는 ‘솔볜’이라는 떡이 있었고 ‘절볜’이라는 떡이 있었다 떡을 찌는 데는 솔잎을 닭털 뽑듯이 뽑아다가 물에 한 번 쪄내어 살짝 말렸다가 떡받침에 얇게 깔아놓고 떡을 넣어 찐다.
그때는 내가 어린 시절이라 솔잎을 왜 그대로 쓰지 않고 쪄냈는지를 몰랐었다. 솔잎에는 끈적이는 송진이 있다. 이 송진을 그대로 일정량 이상을 먹게 되면 뇌혈관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뇌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기억력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 솔순이 힘차게 솟구쳐 올라오는 계절이다. 솔순이나 솔방울, 솔잎 등을 채취해서 바로 술에 담그기보다는 쪄서 송진 성분을 죽이고 담그거나 설탕에 재어 발효시킨 다음에 술을 붓고 밀봉해둔다. 세월이 흐른 뒤에 한 잔씩 약주로 먹으면 강장제가 된다.

쪄서 말린 솔잎을 분말로 만들어 조금씩 차로 마시는 것도 좋다. 솔방울은 가을과 겨울에 그해에 달린열매를 채취하고 솔순은 봄에 채취한다. 솔잎은 연중 언제든지 닭터럭 뽑듯이 뽑아서 채취한다. 솔잎이나 솔순을 채취할 때는 송진이 옷에 묻으면 빨아도 지워지지 않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새순 끝에 달린 암꽃 솔방울. (사진=송기남)
새순 끝에 달린 암꽃 솔방울. (사진=송기남)

솔잎과 솔순은 맛은 쓰지만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솔잎은 비장과 위장을 돕는다. 방광에도 좋다. 소나무의 송화가루는 수꽃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다. 이 소나무 꽃가루가 최고의 명약이다. 더운물에 조금씩 타서 마시거나 꿀과 함께 먹으면 아주 좋다.

제주에서는 송진을 ‘솔칵’이라 하였다. 일제시대 솔칵이 공출 대상에 포함돼 제주의 아이들은 산과 들로 나가 솔칵을 긁으러 온종일 소나무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 땅에 들어와 전쟁을 치르면서 아이들까지도 전쟁의 물자 공급에 동원하였다. 모든 연료가 될 수 있는 것은 공출의 대상이었고 모든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도 공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꽃말은 ‘불로장생’이다. 제주에 소낭밭을 개발로부터 보전하여 모두가 불로장생을 누리시길 빌어본다.

송기남.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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