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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미안편지] 쫓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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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미안편지] 쫓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며 
  • 김혜미
  • 승인 2022.05.12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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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육지청년' 혜미의 편지 (feat.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보배님, 벌써 마지막 편지이네요. 저는 숨가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보배님도 마찬가지겠죠. 

지난 1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도 있었네요. 저는 동료들과 취임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지켜봤어요. 취임식 행사가 열린 국회 앞 담장에 천막을 치고 밤을 보냈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의 모습이 혹시나 카메라에 담겼으면, 하는 마음도 컸네요. 그래도 보배님이 추천해준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를 틈틈이 보며 한숨 돌리는 시간들을 가졌어요. 돌아온 세계에 대해서 그려진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보자면, 보배님 말씀처럼 팬데믹 상황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이유로 또다시 ‘경제성장' ‘경기회복' 같은 단어들이 공격적으로 등장하고, 다시금 오로지 성장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릴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요. 반면 물가가 치솟아 서민들 주머니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요.

이 와중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비타당성조사는 면제됐고, 노후된 핵발전소들의 수명은 연장하겠다고 하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며 ‘소득격차'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고. 한국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 역시 달라진 것이 없어서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무엇인지 곱씹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사진=김수오)
(사진=김수오)

여전히 ‘자연'은 인간의 ‘자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머물러 있는 현실이 갑갑하기도 해요. 이제는 그 관계에 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대지 싶은데요.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의 내용처럼 인간의 이동이 축소되고,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 때, “놀랍도록” 지구의 반응은 빨랐으니까요.

지구는 이렇게 너그러운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탐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 저를 따라와요. 그리고 제 질문의 답은 제주 바다에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간 2만 톤의 해양 쓰레기가 발견된다는 제주 '바당(바다의 제주어)'을 우리는 계속 볼 수 있을까요. 아, 가끔 이렇게 붙잡고 싶은 마음마저 욕심이란 마음까지 듭니다. 

보혜미안 편지를 닫으며, 처음처럼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싶어요. 해남출신의 여성 시인 ‘고정희' 님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입니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조현철이 죽음을 앞둔 아버지께 남긴 수상소감이 화제였지요. 죽음을 ‘존재 양식'의 변화라 정의하고 박길래, 김용균, 변희수, 이경택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언급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어요. 저도 그렇게 사라짐으로 사회에 남은 사람들의 이름과 존재를 붙잡고 싶나봅니다. 하지만, 다시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겠지요. 

덕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남도 천리길에 깔린

세상의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들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톱을 툭,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살아있는 존재여

쓸쓸함이랑 여백이구나,큰 여백이구나

헤어짐이랑 여백이구나,큰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일부발췌, 고정희

보혜미안 편지도, 끝이 났지만 누군가의 여백이 될 수 있기를 욕심부려봅니다. 저와 편지를 나눠준 보배님과, 연결의 다리가 되어준 박소희 기자님 고맙습니다! 

 

김혜미

2022년 마지막 이십대를 보내는 사람.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두가지 정체성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평소엔 '파이리'나 불의를 보면 '리자몽(입에서 불 뿜음)'으로 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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