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복수

나른하다. 봄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0.73%의 대선 결과 이후 무기력과 무관심까지 더해졌다. 그래도 윤석열은 취임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재건”을 말한다. 헛헛한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이어지는 지방선거. ‘정치의 계절’이라는 식상한 표현에 쉰내까지 보탠다. 도통 흥이 일지 않는다. 기득권 카르텔을 깰 후보는 존재감이 미약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될 전망이다. 재미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 나른함은 나 혼자만의 것인 모양이다. 주변은 상당히 번잡하다. 동네에 모 후보의 선거 사무실이 들어선 뒤, 늘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 짜증이 난다. 괜한 심술이 일며 ‘저 놈은 안찍을란다’라고 중얼거린다. 주차 공간을 뺏겼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물론 가치 지향이 다른 게 근본 이유이긴 하다. 그래도 반대 의지를 강화한 건 맞다. 그런 속 좁은 다짐을 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웃는다. 소심한 복수.

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당시) 제주 총력 유세를 보기 위해 동문시장 로터리에 모인 인파들. (사진=박소희 기자)
2022년 3월 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당시) 제주 총력 유세를 보기 위해 동문시장 로터리에 모인 지지자들. (사진=박소희 기자)

눈도장

그러다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왜 저렇게 바글거릴까. 그 후보의 정책에 감동해서? 그 후보가 살아온 이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게 맞는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은 상당히 높다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선거 사무실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 뭘까? ‘괸당’사회의 온정 때문에? 그런 면이 있다. 아니, 아주 강할 것이다. 지인이 출마를 했다는데, 한 번 가서 격려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만약에 출마한 그 지인의 품성에 문제가 많다면, 어떻게 할까? 예를 들어 부패 정치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면? 불출마를 권유할까? 아니면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할까? 극소수의 유권자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권자는 그의 품성을 알면서도, 출마 자체에 ‘위대함’을 부여한다. 출마를 하는 순간 그는 ‘훌륭한 인재’로 거듭 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훌륭한 인재를 만나러 가야 한다. 격려 전화는 약발이 없다. 직접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봉투도 건넨다. 긍정적인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뒷날에는 평소보다 3배 정도의 인파가 몰렸던 것 같다. 물론 아주 먼 곳에 주차를 하게 된 나는 그 만큼의 복수를 다시 다짐했다.

에두르지 말고 말하자. 왜 찾아갔나? 눈도장 찍으러 간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방문객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종의 ‘보험 들기’다. ‘권력’을 향한 줄서기.

오영훈·허향진 제주도지사 후보(사진=김재훈 기자)
오영훈·허향진 제주도지사 후보(사진=김재훈 기자)

권력과 권한

그런데 당선이 되면 권력을 쥐는 게 당연한 것인가? 사전적 의미로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말한다. 국민들이 뽑아줬는데 그 국민들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한다? 우리 헌법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대한민국헌법> 전체 조문 중에 ‘권력’이라는 표현은 단 한 차례, ‘국민의 권력’으로만 등장한다.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그것이다.

반면 행정이나 의회, 법원 등에는 ‘권력’이 아니라 ‘권한’만이 존재한다. <대한민국헌법> 제77조 3항에 있는 ‘정부나 법원의 권한’ 등이 그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권한’이라는 표현이 총 11회 등장한다. 그 11회 모두, 기관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한정하는 데 쓰인 것이다.

이처럼 헌법에서 보듯이 ‘권력’은 ‘정치인’이 가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국민’만이 가질 수 있다. 국민이 맡긴 힘을 ‘권한’으로 이해하는 정치인은 국민의 봉사자다. 그러나 ‘권력’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법망을 피해가며 이권 챙기기에 몰두한다. 그들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국민의 이익’을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적폐 기득권 세력에 한정된다. 그들 이권공동체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활용할 뿐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원희룡 내정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원희룡 내정자.

출마의 이유, 투표의 이유

선거 사무실을 찾아가는 그들 모두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 성찰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의도일 뿐이다. 진정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출마자도 있고, 그의 공약과 살아온 이력에 공감하여 투표하는 유권자도 아주 많다.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사회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적 이익을 취하려 출마한다. 국민이 맡긴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다. 물론 법의 그물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이권을 챙긴다. 그리고 그걸 ‘능력’이라고 여긴다.

눈도장 찍으러 가는 유권자도 그 이권공동체의 하위에 편입된다. 그들 역시 그 이권공동체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부패 정치는 행정과 의회, 사법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유권자의 일상 안에 공범으로 존재한다. 권력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려는 유권자는 정치 부패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솔직하게 답해보자. 왜 출마하는가? 왜 유력 출마자에게 줄을 서고, 투표하는가?

글을 마치려는데, 뉴스 하나가 올라온다. 민주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고발하기로 했다는 기사다. 오등봉 개발 특혜와 업무 추진비 의혹 때문이다. 그와 관련하여 원희룡은 국회에서 위증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위증임이 입증되면 처벌은 불가피하다. 이 기사를 읽으며 ‘그런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희룡은 왜 제주도지사에 출마했었을까? 왜 국토부장관을 하려는 것일까?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왜 그에게 투표했었을까?’ 하고 물어본다.

하긴 고발이 이뤄져도 검찰은 자기 식구 감싸기로 일관할 것이다. 자신 있게 출마하고, 장관이 되려하는 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유권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힘 있는 후보자가 자신의 이권을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줄을 댄다. 출마의 이유와 투표의 이유가 너무 구리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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