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교육원에 핀 참꽃나무. (사진=고기협 제공)
탐라교육원에 핀 참꽃나무. (사진=고기협 제공)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의 간지럼을 느끼며 아라동역사문화탐방로를 걷습니다. 낙엽들이 썩어서 만든 흙길이 주는 푹신함이 발바닥을 통해 가슴까지 올라옵니다. 까불이 작은딸도 부드러움을 느꼈는지 말이 조곤조곤해집니다.

바늘잎 나무, 넓은잎 나무, 굽어서 기는 나무, 우뚝 선 나무들이 각자의 푸른색을 뿜어내는 숲 속에서 온몸이 붉게 타는 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각시가 “그늘진 숲 속이라 그런가? 진달래꽃이 참 늦게도 피었네”라고 혼잣말을 합니다.

제가 작은 소리로 “‘신달위’라고도 불리는 참꽃나무예요”라고 정정합니다. 각시가 신달위를 진달래로 들었는지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하고 철쭉은 먹을 수 없어서 개꽃이라고 한다”며 저에게 얻어들은 풍월을 읊습니다.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오는 진달래는 화전을 부치거나 떡 위에 고명으로 얹어서 먹습니다. 하지만 꽃이 잎과 동시에 나오는 철쭉은 그라야노톡신이라는 구토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이 있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는 양모를 얻기 위해 1971년부터 면양을 지리산 바래봉에 방목하여 키웠습니다. 그러자 식성 좋은 양들은 철쭉만 남기고 다른 식물들을 다 먹어치웠고, 바래봉은 자연스럽게 유명한 철쭉군락지가 되었습니다. 

제 각시처럼 참꽃을 진달래의 별칭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참꽃나무라는 정식이름을 가진 진달래속 식물이 따로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참꽃나무는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최초로 등재됩니다. 

반면에 참꽃이 진달래의 별칭으로 등장한 것은 1942년에 나온 「조선삼림식물도설」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책에는 ‘신달위’가 참꽃나무의 이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달위는 진달래를 가리키니까 신달위는 새로운 진달래라는 뜻입니다. 이름으로 보면 진달래와 참꽃나무는 매우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달래가 삼월에 연분홍 또는 자주색 꽃을 피우는데 반해 참꽃나무는 오월에 짙은 빨강색 꽃을 피웁니다. 진달래는 좁은 잎이 어긋나지만 참꽃나무는 가지 끝에 넓적한 잎들이 돌려납니다. 진달래는 아무리 커도 2~3m밖에 되지 않지만 참꽃나무는 6~8m까지도 자랍니다. 진달래는 전국에 자생하지만 참꽃나무는 제주도에서만 자생합니다. 무엇보다도 참꽃나무 꽃은 이름과 달리 먹지 않습니다. 

탐라교육원에 핀 참꽃나무. (사진=고기협 제공)
탐라교육원에 핀 참꽃나무. (사진=고기협 제공)

‘참~ ’이라는 접두사는 첫째, 참사랑, 참교육, 참흙 등처럼 진짜 또는 올바르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둘째, 참먹, 참젖, 참나무처럼 품질이 우수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셋째, 참꽃, 참배처럼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뜻합니다.  

참꽃나무의 ‘참~’은 위의 세 가지 예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참꽃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국가생물종 지식정보시스템’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참꽃나무를 진달래나 철쭉류에 비해 수고도 높고 꽃도 커서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꽃나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참꽃나무를 ‘온쯔쯔지(雄躑躅)’ 라고 합니다. ‘척촉’은 삼국유사에서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절벽 위에 핀 붉은 꽃을 꺾어 바쳤다는 ‘헌화가’를 소개할 때 철쭉을 지칭했던 한자어입니다. 

온쓰쓰지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철쭉’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처럼 ‘암철쭉’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철쭉이라고 하기가 그래서 참꽃나무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수컷이 참이라면 암컷은 거짓이 되니 성차별에 민감한 오늘날이었다면 분명 다른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참꽃나무는 이름만 그렇지 ‘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꽃인데도 제주도에서조차 조경수로는 물론 관공서나 공원 등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참꽃나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주도에는 환경부 지정 보호식물 30종과 약용식물 800여종을 비롯하여 1840여종이나 되는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야 높아지고 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산업화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최근 생활수준의 향상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건강과 삶의 질,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토불이인 자생식물을 소재로 한 화훼·조경화, 의약품, 향장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하늘매발톱, 한라구절초, 한라개승마 등의 화훼화, 세뿔석위, 죽절초, 참꽃나무 등의 조경 소재화, 갯방풍, 백수오, 우슬 등의 약용화, 조록나무, 참가시나무, 암대극 등에서의 항산화물질 추출 등 제주 자생식물을 산업소재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위기에 처한 제주농업의 영역확대와 토양환경 보존을 위해서도 제주도에 전문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제주 자생식물의 잠재적 가치를 활용한 산업화 연구를 전략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자생식물은 제주의 청정이미지를 가진 브랜드이고, 제주지역 풍토에 가장 알맞게 적응했기 때문에 비료와 농약을 덜 쳐도 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알게 되면 ‘개~’든 ‘참~’이든 다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달에는 차를 좋아하는 ‘참각시’를 위해 과수원 한편에 개복숭아 세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것이 ‘개남편’인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도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참각시님을 모시고 제주의 5월의 꽃으로 선정된 참꽃나무를 보러 한라생태숲으로 가보시지요. 선홍빛으로 불타는 참꽃이 메말라가는 당신들의 가슴을 사랑으로 물들여줄 지도 모릅니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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