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2-07-04 15:43 (월)
[호박벌의제주비상] 내가 사회적경제에 투표하는 이유
상태바
[호박벌의제주비상] 내가 사회적경제에 투표하는 이유
  • 강종우
  • 승인 2022.05.19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공약집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정책 공약집

새 정부 국정과제...오간데 없는 사회적경제

헛웃음만 앞섰다. 단 한 구절뿐. 200쪽 가까운 새 정부 11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사회적경제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갓 출범한 ‘새로운 국민의 나라’에는 온통 자유와 규제철폐만 가득 차 있었다.

애당초 기대하진 않았다. 유독 정부실패를 공격하며 정권을 잡은 마당에 시장논리를 앞세우리라 짐작하고도 남았던 것.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사회적’이란 말지우기, 그야말로 문재인정부 뒤집기다. 갑작스레 가슴이 꽉 막혔다. 머릿속은 텅 비었다. 지난 20여 년 지나온 세월이 속절없어 울화가 도졌다. 괜스레 곡차나 마시며 오래된 기억만 더듬어볼 따름.

IMF...자활과 맺은 인연

IMF 막 지난 2000년 무렵이다. ‘일하는 복지(WorkFare)’로 대변되는 자활사업과 연을 맺은 때가. 그 후로 10여 년을 줄곧 가난한 사람들과 보냈다. 서로 보살피고 함께 보듬는 일자리. 내가 살고 남도 살리는, 스스로 사는 그런 공동체를 그렸다. ‘소박하지만 온전하게, 모자라지만 당당하게, 부족하지만 보람차게’, 비록 가난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방도를 붙잡아 보려 무진 애를 썼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며 제대로 대접받는 ‘수눌음지기(Community Supporters)'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도2동 주민센터와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 관계자들이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다.
이도2동 주민센터와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 관계자들이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다.

늙거나 병들어 힘들어 하는 분들을 수발하며 ‘거념’하는 일,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며 키우는 일, 공중화장실이나 근린공원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 어려운 이웃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일, 다시 쓸 수 있는 물품을 재활용하는 일, 죽은 물고기를 유기질비료로 자원화하는 일,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재생하는 일, 제주자연을 닮은 천연염색 옷감을 만드는 일, 여든 넘으신 어르신들에게 부업거리를 드리는 일까지. 환경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살림의 문화, 모두가 바라던 ‘생태적 복지공동체’를 위해서.

조바심 내며 11명 청소 하나로 시작했던 보잘 것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온갖 궂은 일 도맡다시피 하며 어느새 300여 명을 거느리는 대가족으로 커지기도 했다. 친구 녀석이 농(弄)삼아 ‘영세재벌’이라 놀려대기도 했더랬다. 사람들이 불어나고 하나 둘 제 앞가림하며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즐거움. 이 뿌듯함이 남들은 손사래 쳐대던 ‘자활판’에 여태껏 머물게 한 약발이었다.

‘함께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사회적경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상처는 엄청났다. 지역경제 붕괴와 양극화, 청년실업, 그리고 공동체 해체. 게다가 기후위기와 저출생․고령화까지.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제만 쌓여왔다.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 또한 눈물겹다. 제주도 마찬가지. 인구가 불어나면서 되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갖가지 숙제로 넘쳐난 것. 주거나 교통, 심지어 쓰레기까지. 이대로는 성장은커녕 사회를 유지하기도 벅차 보였다.

그 언저리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자활 밖 자활’을 외치며 우연찮게 만난 것이 사회적경제다. 이윤을 추구하며 시장에서 경쟁하기 보다는 우리 이웃들의 필요와 욕구를 조직하는 일... 누구에게나 소중한 안정적인 일터, 함께 돌보고 서로 보살피는 따스한 삶터. 일자리, 먹거리, 돌봄, 주거, 환경, 교육 같은 생활가치를 우선하는 것. 무엇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바랐다.

‘함께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경제’ 사회적경제가 찾고자 하는 길이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누구도 배제하거나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 바로 사회적경제의 이상이자 실천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이 곧 경제가 되는, 그래서 사회와 경제가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임을 일깨운다. 이해타산만 앞세우는 시장논리로는 도저히 엄두내지 못할 일, 생각할 수도 없다. 선물(膳物)경제, 바로 호혜가 밑바탕인 사회적경제의 뿌리다. 일본에선 흔히 ‘사회에 유익한 도움을 주는 경제활동’, 즉 커뮤니티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라 불린다. 어느 대선후보가 생뚱맞게 몰아붙이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새로운 대안경제인 것.

“사회적경제 기업과 조직은 자립적이고 효율적이며,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수익을 창출한다...(중략) 사회 정의와 노동권 존중의 가치에 뿌리내린 질 좋은 일자리를 장려한다...(중략) 이러한 가치와 원칙은 여성, 청소년, 노약자 및 장애인과 같은 소수 집단 및 취약 계층의 적극적 참여에 대한 헌신을 뒷받침하며 연대와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평화롭고 회복력 있는 사회의 토대다.”- 2018년 국제사회적경제협의회(Gsef) 빌바오 선언에서

(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모두가 행복한 제주’를 꿈꾸며...

청년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나가는 섬이다나 일로와. 자립준비청소년과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을 돕는 제주내일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 청도시락, 수급자들을 주주로 경영에 참여시키는 이어도돌봄센터. 다화용기 재사용이나 제로 웨이스트 생활용품을 만드는 꽃마리협동조합과 함께하는그날협동조합. 일회용 플라스틱을 고품질 재생원료로 업사이클링하는 제주인사회적협동조합, 지역 농산물 제철꾸러미나 식품가공으로 고부가가치에 나선 무릉외갓집과 제주마미. 결혼이주여성들과 아열대작물을 재배하는 공심채. 장애인 통합돌봄이나 무장애여행을 선도하는 희망나래사회적협동조합과 두리함께, 세상을 바꾸는 여행을 지켜온 제주생태관광과 착한여행 등등. 그리고 한살림과 아이쿱 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제주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 제주올레에 이르기까지. 제주에서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사회적경제조직은 6백여 개, 일하는 분들도 근 5천명 가까이 크게 늘었다.

“도민들이 ‘더 나은 삶’을 함께 누리고 우리 지역이 ‘더 큰 제주’로 도약할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동력,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키우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공존과 상생의 경제공동체, 바로 ‘수눌음경제공동체’가 그리는 제주입니다. 또한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 그리고 공공경제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실현하고자 하는 제주발전의 새로운 모델입니다.” 2015년 제주사회적경제 비전선언문 중 일부다

대표적으로 해녀야말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난제(難題)를 풀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던지는 ‘오래된 미래’, 사회적경제의 원형질이다. 제주 역사와 문화 속에 아로새겨진, 그래서 우리 몸과 맘에 녹아있는 공동체경제의 유전자다.

오늘 따라 부쩍 눈에 밟히는 두 분의 구루(Guru 정신적 스승), 맥그린치와 호세 마리아. 주민들이 스스로 돕고 함께 일어서는 지역공동체를 꿈꾸고 몸소 일궈온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다. 비록 나라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외딴 섬과 스페인 구석진 바스크라는 변방에서 거의 동시대에 모습을 보였던 社會的 起業家(Social Entrepreneur)다. 이시돌과 몬드라곤은 그 상징물.

(그래픽=박소희)
(이미지=픽사베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는 사회적경제에 투표한다. 협동적 자치‘수눌음’과 생태적 순환 ‘통시’,그리고 신뢰의 사회적 자본 ‘궨당’을 이 땅 제주에서 새롭게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누구나 안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사는 길, ‘모두가 행복한 제주’를 꿈꾸면서 말이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도종환) 그 길을 걷는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등 뒤에 생긴다’ 했던가. 돌아가신 신영복선생의 말씀이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