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가 주관한 제16차 제주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이 17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3월 제주도의회 임시회에서 심사보류된 ‘제주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 다양한 시선으로 조례안의 의미를 논의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가 주관한 제16차 제주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이 17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열렸다.

'혐오차별금지조례, 지역의 인권제도화가 갖는 의미'가 주제다.

이날 정책토론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제 발표로 시작됐다. 헌법학의 시각으로 차별금지법을 다뤘다.

한 교수가 제시한 1919년 임시헌장 제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절 평등하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헌법의 아버지들은 우선적으로 민족평등, 국가평등 및 인류평등의 이상을 펼치며 일체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대한민국의 국가목표로 삼았다. 이런 다짐은 우리 헌법사를 관통하는 중심 헌법이념"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가치를 온전히 담아낸 차별금지법의 내용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범위를 넓혀두고 있다는 것이다. 차별금지 '영역'을 선언함으로써 보다 많은 보호를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차별은 혐오에 비하면 중립적 개념이다. 혐오는 사회구조적이고, 폭력을 동원한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특정한 속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소수자 집단의 형성은 다수자 권력이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고, 속성과 집단이 더해진 개념은 낙인찍기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으로 혐오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은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기정체성을 모두 부정해야 용이 되는 것"이라면서 "이 같은 사례가 모이면 민주주의가 소멸되고 결국 사회통합이 깨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가 주관한 제16차 제주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이 17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가 주관한 제16차 제주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이 17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조백기 제주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어 조백기 제주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의 발표가 이어졌다. '혐오차별금지 조례가 갖는 제주사회의 의미'가 주제다.

"'혐오표현 방지 조례'는 도민 공감대 형성 부족과 반대 민원 등의 이유로 보류된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이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차별금지법도 10여년 동안 같은 이유로 입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조례는 인간의 존엄.평등이라는 핵심 인권 원칙을 거부하는 표현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면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표현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많은 사람들이 차별없이 의견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혐오표현은 대상집단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막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 관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든 차별을 막기엔 힘들다"면서 "제주지역에서 먼저 혐오차별금지조례 제정이라는 선례를 만들어 정부차원으로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연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왼쪽)과 이양신 제주여민회 대표, 나림다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 에밀리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활동가,  박한솔 민주노총 제주본부 선전홍보부장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안효철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소장이 사회를 맡은 토론이 이어졌다. 패널 참석자들은 각각 장애와 성평등, 성소수자, 이주민, 노동 등의 주제로 의견을 냈다.

이연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SNS 등 온라인 상에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모습을 목격했다"면서 "단순히 장애라는 이유로 기피되고, 민폐의 존재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간다면 능력.환경이 아닌 장애 때문에 스스로가 잘못됐다는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혐오는 잔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면서 "도의원들은 가지고 있는 의지를 표출, 혐오표현 방지 조례가 무관심한 환경 속에 부결되지 않길 바란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양신 제주여민회 대표는 "여성혐오 표현이 만연해지고, 젠더갈등과 혐오범죄가 늘어나면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혐오는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혐오표현은 차별문제이고, 성차별은 법제적 측면에서 여성이 겪는 불합리성에 방점을 두는 것이기에 교육을 통한 인식개선과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례 제정은 제주에서 추구하는 '평화와 인권의 섬'이라는 표어를 또렷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림다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은 "제 최측근인 고 김기홍 제주퀴어활동가는 지난해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동네주민이 자신을 향한 욕설을 적은 담벼락을 항상 지나야만 했고, 어느날은 그의 집 앞 화분에 식칼이 꽂혀있기도 했다"면서 "트렌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는 지금도 혐오표현으로 희생되고 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제도화는 성소수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더이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혐오로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에밀리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활동가는 "혐오표현이 양산된 배경에는 사회의 양극화와 극단적 이분법의 논리가 숨어있다"면서 "국민 중심적 질서에서 벗어나 모든 사회구성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어떤 용어로 바꿔 사용해도 낙인이 찍힐 수 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박한솔 민주노총 제주본부 선전홍보부장은 "제주도는 명목상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같은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해나갈 주체는 국회의원.도의원이 아닌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 계급"이라면서 "고용형태와 국적, 인종, 성별, 성정체성, 장애 등은 차별당사자의 경험인 동시에 노동자의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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