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이 게시한 현수막 문구.(사진=녹색당 제공)
녹색당이 게시한 현수막 문구.(사진=녹색당 제공)

이 글은 녹색당 얼굴 없는 당원 S의 [기고]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위기가 목전인데!에 대한 반론이다. 비록 서툴고 거칠지언정 녹색당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글로 읽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열흘 전쯤, 시내 횡단보도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40대 중반의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녹색당의 선거홍보용 플래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녹색당의 플래카드는 그 어느 선거 때보다 눈에 잘 띄는데, 씁쓸했다. 나는 플래카드의 구호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은 자영업자일까? 녹색당을 찍으려면 생계를 걸어야 한다는 위협을 느꼈을까? 

나는 녹색당을 종종 후원한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의 면면을 제법 열심히 소개하고 다닌다. 그런 이유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격렬하게 친구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듣고 있다. 그 사내의 탄식처럼. 

나의 투표 DNA에는 분명 ‘녹색’이 있다. 그러나 매번 무조건적인 투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친구들을 설득하는 데 거의 100% 실패한다. 그들은 그저 내가 하는 얘기라서 열심히 들어준다. 녹색의 가치가 옳기 때문에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또 들어준다.

수년 전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오버투어리즘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먼 곳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늘 얘기한다. “이번 연휴에도 징글징글하게 온대!” 녹색당이라면 오버투어리즘을 넘어서서 더 이상 제주를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방식으로 살 수는 없다고 강력히 경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정치적 상상력으로, 당면한 문제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은 적어도 거대정당은 아닐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주체가 마땅히 녹색당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나는 관광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녹색당의 플래카드 앞에서, 지금 혁명을 하자는 것인가 선거를 하자는 것인가 자꾸 되묻게 된다. 70만명에 육박하는 인구에서 1만 개의 기후 일자리가 가능하다면 어마어마한 건데,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가능한 걸까? 관광객이 제주를 살 만한 섬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지 않지만, 저 문구대로 관광객을 절반으로 줄이기만 하면 제주가 자생하고 자존할 수 있을까? 녹색당은 누구를 대상으로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좀 아득하다. 녹색당 도지사 후보와 녹색당이 2%의 지지율을 얻는다면, 2%의 성공이 아니라 98%의 실패이기도 하다. ‘2%의 가능성’만 바라보지는 말아주길 당부한다. 세상에 녹색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2%를 훌쩍 넘는다. 녹색당 정책에 혀를 차는 내 친구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녹색의 삶을 산다. 다만 녹색 깃발을 흔든다고 무조건 표를 주지는 않을 뿐이다. 

생활 녹색은 가능한데 녹색 투표 앞에서 망설이는 그들은, 녹색당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어느 정당이 전복적인 정치적 상상력과 미숙하고 서툰 정치 문법-구호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유권자가 아니라 그 정당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다.

녹색의 당위에는 죄가 없다. 당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녹색 ‘정치’까지 함께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을 절반으로 줄일 방안으로 내놓은 대책이 국토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에 웃어야 하는 걸까, 울어야 하는 걸까? [기고]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위기가 목전인데!의 다음 대목은 그래서 더욱 참담하다. 

“녹색당의 정책과 구호는 ‘제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한계와 사회적 불평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요? 위기가 목전에 다다랐고, 당장 바꾸지 않으면 재난을 맞닥뜨릴 판국인데 팔짱을 끼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훈계하는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는 녹색 당위에 대해서는 딱히 더 물을 게 없다. 다만 녹색당의 ‘정치’에 대해서는 듣고 싶은 게 많다. 녹색의 가치와 당위를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구현해나가기 위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싶다. 관광객을 줄이고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어떤 것들인지, 관광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동조건은 어떤 방법으로 개선될 수 있는지, 제주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닌 채 자존할 수 있는 경제 기반과 산업 구조는 무엇인지, 우리들의 생업 전선에는 이상이 없는지, 이 무도한 시대에 녹색당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우리를 대변해 줄 것인지, 다 궁금하다. 

녹색당에 대안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생각보다 절박하다. 한가하지 않다. 녹색당과 이런 타박과 힐난을 주고받고 싶지 않다. 녹색이 미래의 절대적인 가치인 것을 진즉에 알아차린 이들의 지적인 오만으로 치부하고 싶지도 않다. 잘 설계한 대안으로 유권자를 설레게 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기본이고, 유권자로서는 당연히 그런 대안을 요구하게 된다.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발언이다. 개인의 의견이라 다행이랄까. 녹색을 옹호하고 선전하고 확대하는 정치 언어는 대체 누가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걸 당에게 만들어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것일까. ‘정치’를 ‘녹색’으로만 덮을 수는 없는 게 아닐까. 

녹색으로 가득 찬, 그저 환상적이기만한 구호, 옳기만 한 이야기는 내가 하고 다니겠다. ‘한 줌’의 지지자이자 달랑 한 표를 가진 시민에 불과하지만 선거에서 내가 쥘 수 있는 패다. 그러니 선거와 정당정치를 그저 하나의 퍼포먼스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면 구체적인 대답들을 내놓아주길, 지겹도록 구체적으로 내놓아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는 그 구체성을 화력 좋은 무기삼아 더 돌진하겠다. 친구들을 설득하고, 한숨을 내쉬는 거리의 시민을 상대하겠다. “녹색당의 이런 대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다가올 위기를 조금 더 막아낼 수 있어요! 우리의 생계를 걸지 않고도 가능해요!” 그 구체성이 없다면, 녹색당의 정책 또한 다른 당의 정책들과 다를 바 없이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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