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심은 수박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이네요 (사진=김연주 제공)
어제 심은 수박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이네요 (사진=김연주 제공)

비 오는 소리가 제법 주룩주룩 들린다.
어릴 적
시인을 흉내 내던 언니 곁에서 눈동냥으로 봤던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
이란 시가 있었다
제목이었는지 내용 중 이야기인지 지금은 가늠조차 어렵지만
50년쯤 살아오면서 뇌리 한쪽의 화두이기는 했었다.

너무도 오랜만의 비 예보에
난 어제부터 살짝 들떠 있었다.
마당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수박 모종은
대지의 기운을 어서 느끼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너무나도 길게 이어진 맑은 날씨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가뭄을

어제도 토종고추인 울릉초 모종을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심긴 했지만
수박을 심을 밭은 경운을 한 밭이라
한여름에 가까운 작열하는 태양을 막아줄 그 어떤 것도 없었기에
노심초사 비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기도하는 심정을 온 마음으로 가득 담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 모를 오전 비날씨에 대비하기 위하여

쨍한 아침 햇살을 느끼며
비는 언제쯤 올까를 가늠하며
한방울이어도 좋으니
제발~~을 기도하며
천천히 수박 모종을 심기 시작하였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먼지는 흩날려도 비가 언제 내려 줄지는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미뤘던 볼일을 보는데
어라?
빗방울이 딱 한방울

급히 밭으로 돌아와
줄을 띄우고 모종을 정성스레 밭으로 보내준다.
모종은 날마다 주는 수돗물에 기아 상태였겠지
떡잎은 누렇게 뜨고
본잎도 베베 꼬여 힘들어하는 기색이

어서 대지의 기운을 듬뿍 받아보렴
오늘 영양 듬뿍 비가 내리고 나면
뜨거운 태양이 너를 키워줄 거야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의 에너지를 등 뒤로 고스란히 받는 걸 좋아하는 나
오늘처럼 부슬비를 등 뒤로 고스란히 느끼며
밭의 한 가운데 있는 걸 더 즐기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도 한참 동안을
그 밭에서 나는 수박 모종을
그리고 수박 모종은 나를

막걸리 두 병을 사고 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는 막걸리를 이야기로 써보면 어떻냐 제안을 한다.
?? 농사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난 행복했고
무슨 이야기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심은 수박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이네요 (사진=김연주 제공)
뻐꾸기가 우니 산디 심어야지요. 한원식 선생님의 밭벼모종. (사진=김연주 제공)

일주일 전부터 혹은 더 일찍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뻐꾹뻐꾹 하고 운다
어릴 적 학교 음악 시간엔
뻐꾹뻐꾹 봄이 가네
중략
뻐꾹뻐꾹 여름 오네
이런 노래를 배운 적이 있는데
농민이 되고 나선
어머님의 목소리
‘뻐꾸기 울엄신게 재기 보리 비여뒁 산디 갈아살 껀디’1

올해 처음으로
준비해 둔 밭벼 모종도 있다.
한원식 선생님의 밭벼를 작년에 분양받아 모종을 키우는 중인데
곧 밭으로 가야할 때다.
뉴스에도 모내기 하느라 바쁜 농촌의 모습이 종종 보이고

동네 마트에
막걸리 매대에
단 두 병의 막걸리가
그래서 이 긴 밤을 보내기엔 부족하네
한 병 더 사러 가야지
행복한 밤이잖아요

1. 뻐꾸기가 우니 얼른 보리를 베어 밭벼를 갈아야 할 건데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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