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제주4.3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 34명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이날 재판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4.3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차질없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일 제주4·3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 34명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이날 재판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4.3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차질없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당시 불법 군법회의 등으로 희생된 희생자들과 일반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했던 희생자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 일반재판에 넘겨져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에 대해서도 검찰이 청구하는 직권재심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 직권재심 30명 전원 무죄 ... 1~6차 모두 130명 명예회복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31일 201호 법정에서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 고행준씨 등 30명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의 6번째 재심청구 재판이다.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군사재판 희생자는 이번 판결까지 포함, 모두 130명으로 늘었다.

검찰은 최종변론에서 4·3 당시 군법회의가 이뤄진 배경을 설명한 뒤 "희생자 등의 진술 등에 의하면 기소된 피고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처벌받았고, 죄를 증명할 증거가 전혀 없다"면서 재판부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도 "피고인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몸살을 앓던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면서 "지금 이자리를 통해 앞으로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검찰은 공소제기 이후 입증할 책임이 있지만 증거가 없다"면서 각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이후에는 희생자 유족의 발언이 이어졌다.

고 고행준씨 동생 고은택(84)씨는 가족이 경찰에 끌려간 모습을 목격한 당사자다. 그는 "집에서 형님과 누워있었는데, 한밤중에 낯선 세 사람이 와서 '잠깐 조사할게 있다'면서 형을 데려갔다. 그런데 여태까지 소식이 없다"면서 "수형소에 찾아갔더니 숨져서 땅에 묻었다고 하더라. 직접 가서 보니 몇백구의 시신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고씨는 "지금 경찰로 일하고 있는 50세 아들이 있다. 아들이 경찰시험에 합격했을 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몇번씩 집에 찾아와서 합격사유를 묻더라"면서 "이건 연좌제 아닌가. 이로 인한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무죄판결을 통해 심적고통을 덜게 됐다"고 토로했다.

고 장두문씨 아들 장기정씨와 고 오경애씨의 아들 오병남씨, 양재춘 아들 양영생씨도 이 자리에서 "그동안 저희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받아준 사람도 없었다. 지옥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면서도 "그래도 그동안 맺힌 한이 조금 풀린 것 같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 특별재심 4명도 무죄 ... 4·3특별법 개정 이후 두번째

이날 직권재심이 열리기 전 제4-2형사부는 내란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고 강승하·김두창·한창석·이경원씨 등 일반재판 수형인 4명에 대한 특별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는 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지난 3월 고태명씨 등 33명의 특별재심 무죄선고 이후 두번째 무죄 판결이다.

피고인들은 4·3 당시 남로당의 활동 지원 및 기밀사항 누설 등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들이다.

고 한창석씨의 경우 4·3 당시 외도파출소에 끌려갔지만 수개월 뒤 출소하긴 했다. 그러나 고문으로 인해 손톱과 팔이 부러지고, 트라우마로 인해 경찰만 보면 겁을 내는 등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서귀포경찰서 순경이었던 고 이경원씨의 경우 경찰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행방불명됐다. 유족들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던 사실을 알게됐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직권재심과 마찬가지로 "공소사실에 대해 증명할 증거가 없다"면서 무죄 선고를 요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진 유족 발언에서 강승하씨의 아들 강태원씨는 "아버지가 끌려갔을 때 고작 네 살이었기 때문에 살아온 과정이나 재판과정을 잘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어머니가 매일 울면서 면회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어머니와 잠잘 때마다 한 이불 속에서 울면서 잠들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버지 생각을 하면 말문이 막힌다. 동네에서 호로자식이라고 살아온 과정도 억울하다"면서도 "그래도 오늘 무죄를 받으니 지금까지 억울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 "일반재판 희생자도 직권재심 필요하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이날 재판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4·3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차질없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회는 이와 관련, 일반재판에 대한 직권재심 도입을 요청했다. 일반재판 희생자에 대한 재심은 청구자격 제한 및 재심사유의 불명확성 등이 절차상 진입장벽으로 작용, 재심청구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도하게 높은 법적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일반재판 4·3희생자에 대해 직권재심의 방법을 도입할 필요성이 명백하다"면서 "정치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전향적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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