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 양동림, 한그루, 2021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 양동림, 한그루, 2021

양동림 시인의 첫 시집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를 위한 시집이다. 누군가 앞서가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란히 걷기 위해 마주 오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것은 평소 양동림 시인의 성품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올곧게 행동하고 말한다.

양동림 시인은 2008년 <제주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대학 때부터 시를 써왔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위해 등단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13년 지나 작년에 이렇게 첫 시집을 냈다. 이 시집에는 대학 때부터 그가 열망한 사회와 가치관이 기저에 있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삶의 의미를 깨닫는 시인으로서 시를 다루는 모습이 들어 있다.

제주도 시인답게 4·3을 중심에 둔 역사 인식이 자연스럽게 시집 전체에 흐른다. 3부에는 4·3 시만 모았고, 다른 시에서도 4·3의 영향이 스며있다. 시 「건천 1」도 그렇다. “숨죽여 사는 법을 배웠다/ 거세게 불어오는 들불에/ 억새들이 온몸 스러져 갈 때/ 속으로 밑으로/ 스며들어/ 숨죽여 사는 법을 배웠다”(시 「건천 1」 부분)는 말이 아프게 들리는 사람은 제주도 역사와 내창의 풍경을 함께 생각한 사람일 것이다.

1990년대 제주대학교 문집에 표기되어 있고, 그 후에는 관습처럼 사용하는 ‘死·삶’을 가장 먼저 썼다고 주장하는 양동림 시인은 납읍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마을에서 살면서 4·3의 증언을 듣고, 슬퍼하고, 시를 쓴다. 죽음과 삶의 현장에서 제주의 역사를 체득했다.

그의 시에는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일상과 역사를 따로 놓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한 시의 미더운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양동림 시인은 시를 쓰면서 방과후 바둑 강사 일을 한다.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그는 바둑 고수의 느낌을 풍긴다. 고정관념일 수도 있으나 서예가 느낌도 좀 난다. 개량한복 어느 한 부분에 먹물 번진 자국이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한자를 잘 안다. 원래는 과학을 전공했는데,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다. 조선 후기에 태어났다면 실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고가 유연해서 때때로 개혁적인 말도 곧잘 한다.

그가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자동차 범칙금을 소득에 상관없이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 자신과 같은 서민은 차를 몰고 다니다 벌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하루 일당을 날리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은 그까짓 벌금 신경도 안 쓰겠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은 벌금 고지 우편물이 오면 두렵다고 말한다. 교통법규 위반에 관한 사항이기에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소득 분배 차원에서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면/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지기 십상/ 꼭 붙들어 타세요/ …… / 당신이 사과박스였는지, 돈박스였는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박스들과 한데 엉클어진다 하세요/ 그게 당신이 사는 길이에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면/ 살랑거리는 바람도 무서워집니다”(양동림의 시 「살아남기 1」 부분)라는 이 시에서 삶의 무게를 무던히 받아들이는 시인의 자세가 보인다.

바둑 선생 양동림 시인은 삶은 바둑과 닮았다고 말한다. 전설의 바둑 기사 이창호 역시 바둑을 통해 인생 철학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바둑에서 명심해야 한다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 번째 구절은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는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시를 쓸 때도 마음을 비울 때 근사한 시가 올 것이다. 양동림 시인은 역사와 문화를 일상에 녹여 삶의 가치관으로 만들면서 마음을 비우고 쓴 작품들로 시집을 묶었다.

이 시집의 뒷부분에는 오랫동안 양동림 시인을 지켜본 강덕환 시인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양동림 시인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글이다. 지음(知音)의 특장이 발휘된 맛깔난 발문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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