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시인, 사랑, 삶…그래서 시옷

시를 좋아한다. 특히, ‘시원함’ 외에 다른 표현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바람이 부는 제주의 봄과 가을의 푸른 밤이면 시를 읽고 시를 읊고 싶어진다. 뭇생명에 살을 찌우는 봄날의 바람과 뭇 생명들에게 이제 쉴 때라고 일러주는 가을날의 바람. 시는 그렇게 나에게 ‘살라’고 하고 ‘살아지’고, ‘사라질’ 것이라고도 한다. 

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시어에 담긴 여러 의미를 해석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앗!’하고 빠져들게 되는 것을 좋아해서 시를 찾는다. 시를 찾게 되는 날들이 나에게는 소진된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고 대부분 그 시간을 통해 헛헛함을 채웠으니 마음이 감기에 걸린 날 이만한 명약이 없다. 

시옷서점. (사진=요행)
시옷서점. (사진=요행)

시집 전문 서점. 이름마저 시적이다. ‘시옷서점’이라니. ‘소설을 읽고 시는 입는다’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옷을 입듯 시를 입고 사는 삶.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시의 압축성, 상징성을 담았다. 서점의 이름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시옷’을 떠올리게 하는 힘. 서점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시적 영감을 던진다. 

시옷서점은 2017년 4월 1일 제주시 아라동에서 첫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2년을 살고, 서귀포시 호근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2년을 살았다. 그리고 올해 서귀포시 서홍동에 둥지를 틀었다. 오랫동안 미용실로 썼던 곳이라 유리창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따듯하다. 

이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심성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일종의 환대를 받는 기분.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편의에 따라 구분을 지을 뿐 사실 우리 모두는 연속성을 가지는 유기체이므로. 당신의 과거가 나의 현재일 수 있고, 나의 현재가 당신의 미래일 수 있는. 그 ‘경계 없음, 빈틈 많음’이 반갑다. 

깔끔함. 화려한 것은 시집 그 자체로 두고 최소화한 인테리어. 도서관의 한쪽을 뚝 떼어 온 것 같은. 
아, 맞아. 책방은 책이 돋보여야지.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난 터라 책방지기인 현택훈 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방에 들어섰을 때 책도 책인데 사실 청각이 상당히 예민해졌다. 장비들이 잘 갖춰진 건물이었다면 콘서트홀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음악이 쟁쟁했다. 

시옷서점. (사진=요행)
시옷서점. (사진=요행)

<제주투데이> 칼럼진이기도 하니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시옷서점’은 시인부부인 현택훈 시인과 김신숙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다. 제주에 책방이 몇 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으니 요새 표현으로 화석 같은 책방이랄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시인이면서 기획가이자 교사면서 책방지기. 이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시인이 원래 이렇게 생명력이 왕성한 존재인 건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곶자왈에 온 기분이 든다. 그들이 곶자왈이고 나는 땀을 훔치기 위해 잠시 들른 나그네다. 온갖 생명이 사는데 온갖 생명이 존중을 받으며 서로 덜 해치는 방향으로 공존하는 곳. 그래서 오래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곳, 곶자왈. 김신숙 시인이 곶자왈의 땅이라면 현택훈 시인은 곶자왈의 바람 같은 존재다. 아니다, 그 반대다. 아니다, 그냥 둘은 한 몸이다.  

서점이 있지만 지역 시인의 시집을 보기는 어렵다. 둘도 시인인지라 그 점이 안타까웠던 차에 서점을 열었다. 하지만 서점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서점 자체도 잘 안 되는 마당에 시집만을 그것도 지역작가의 시집 위주로 운영을 하니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수익을 목표로 연 곳이 아니었단다. 

이곳을 거점으로 여러 사업을 시작했다. 시노래 음반을 제작했으며,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시 모임과 독서 모임, 공연, 강연.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가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지역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를 했다는 위안, 또다른 도전에 나설 힘을 얻는 정도. 

이 둘의 왕성한 기획력과 행동력. 그것은 넝쿨 식물처럼 끝없이 줄기를 뻗는 일이었고, 곶자왈 대지를 뒤덮은 이끼처럼 없는 듯하면서도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완강히 알리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이 둘은 곶자왈이고 생명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잉태하고 길러내는 것들(그들의 시를 제외하고)에 대해서 우선 이야기한다면, 

# 시 활짝, 삶 활짝 

가장 큰 프로젝트가 ‘시활짝’이다. 말 그대로 시가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인데 시노래 음반을 제작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시집 복간 사업도 했고, 시인 지망생들의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시와 농민을 연결한 ‘시를 심어볼까’도 있다.  

너에게 닿고 싶은, 시.

2018년 12월에 첫 번째 음반이 발표됐다. <너에게 닿고 싶은, 시>의 음반엔 무려 12곡이 수록돼 있다. 
좋은 시를 쓴 무명 시인과 그들의 시를 알리고 또 지역의 음악가들도 그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가사는 시인들의 시 작품이고, 작곡은 지역 뮤지션이 맡았다. 시인부부의 시도 있다. 

수록곡 모두 뮤직비디오도 제작됐는데 기막힌 우연이 있었다. 시옷서점의 아라동 시절 부산대학교 학생 세 명이 온 적이 왔다. 서점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고 서점 앞 주차장에서 노숙을 하는 걸 보고 안쓰러워 시인부부는 그들을 서점 한 켠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친구들은 제주에서 로드무비를 찍기로 하고 제주국제공항에 내린 뒤 걷고 걸어서 시옷서점 앞까지 온 것이었다. 원래 그곳이 목적지였던 것이 아니다. 걷다가 발길이 멈춘 곳이 그곳이었던 것. 시노래음반 제작 중에 있다고 하니, 자신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오갔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들은 의뢰인과 영상 업체로 관계가 전환됐다. 

우리는 한쪽 밤에서 시를 쓰고.
우리는 한쪽 밤에서 시를 쓰고.

이 대학생 친구들은 제주에서만 제작하는 것이 심심했던지 일을 더 키웠다.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도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했고 그 친구는 인도네시아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인도네시아 현지 올로케이션의 뮤직비디오도 두 편이나 제작됐다. <마음의 곶자왈>과 <남방큰돌고래>다. 이 음악들과 뮤직비디오는 시옷서점 유튜브채널에서 만날 수 있고, 모든 음악 플랫폼에도 음원이 올라가 있다. 두 번째 시노래 음반은 <우리는 한쪽 밤에서 시를 쓰고>이다. 7곡이 수록돼 있으나 아쉽게도 뮤직비디오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음원 플랫폼에서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시를 심어볼까’는 지역 문학을 더 잘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시인과 연이 있는 농부 또, 농부시인의 농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씨를 심어 수확하는 농부와 시를 심어 삶을 여물게 하는 시인. 닮은꼴이다. 여기엔 이런 바람도 있다. 대형 서점엔 시집 코너가 있지만 지역 시인들의 시집은 거의 보기가 힘들다. 대형마트엔 지역 농수산물 코너가 있다. 언젠간 지역 농수산물 코너처럼 지역 시인 전용 코너가 생기기를. <2021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프로젝트 – 밧디글라>라는 제목으로 역시 시옷서점 유튜브 채널에서 관련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시를 심어볼까. (사진=요행)
시를 심어볼까. (사진=요행)

이 시인부부는 그러니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의 근심을 덜어주려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그 이유가 ‘좋아서’라고 한다. 40대인 나는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안다. 삶을 살아내는 일이 쉽지 않은지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은 고통에 가깝다. 

그런데 또, 우리는 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기쁨을. 그것을 시도하기에 여러 걸리는 일들이 있어서 선뜻 그러질 못할 뿐, 그 ‘좋아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행복이 차오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인 부부는 ‘좋아함’의 순수성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꼭 붙들고 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이 둘의 천성이 그런 것이다. 좋으니까 하고, 좋으니까 길이 열리는 것. 그렇게 그들의 찬란한 세계를 계속 확장하고 있는 것. 그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고맙다. 

이 시인 부부의 업적 중 내가 가장 감탄한 지점은 복간사업이다. 지금은 절판이 돼서 구하기가 어려운 제주지역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절판. 차가운 말이다. ‘출판하였던 책을 더 이상 펴내지 않음’. 세상에 태어났으나 더 이상 독자들을 만날 수 없는 비운의 책. 이것은 독자에게도 가혹한 일인데 꼭 읽고 싶고 꼭 간직하고 싶지만 더 이상 출판하지 않아서 구할 길이 없다. 미래의 독자들은 그 책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알 수가 없으니 그 책이 담고 있는 세계에 단 한 발도 디딜 수 없다. 사고의 멈춤. 확장의 중단. 세계의 단절. 

생말타기. 

그런데, 정말 반갑게도 절판된 책을 다시금 세상에 불러내고 있다. 시옷서점과 한그루 출판사가 함께 하는 ‘리본시선’이다. 첫 번째로 강덕환 시인의 ‘생말타기’가 나왔고, 두 번째로 김경훈 시인의 ‘운동부족’이 복간됐다. 올해 가을께 세 번째 시집으로 정군칠 시인의 ‘수목한계선’이 발간될 예정이다. 

한번은 18세 소녀들의 시집을 냈다. 시인 부부의 독립출판사인 ‘종이울림’에서 낸 ‘십팔시선’이다. 18세 소녀들의 시선이 담긴 시집이어서 제목이 ‘십팔시선’이다. 시집을 냈으니 시인이라 칭하겠다. 이 두 젊은 시인은 세월호 청소년 희생자 또래다. 그날 일을 목격하고 그날 이후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이 친구들은 사회에 놀랐고, 삶에 방황했다. 

십팔시선.

삶으로의 방황은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듯 그 친구들에게 이 사건은 기폭제가 됐다.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각자 각각 다른 날 서점에 가서 시인 부부에게 시인이 되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시인 부부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디를 통해 등단을 했는지’로 시가 규정되는 것을 매우 경계했으므로 소녀들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는 대신 ‘시집을 내면 시인이 되는거지’라고 했다. 

그길로 둘은 서로 시상을 다듬었고 각자의 언어를 구축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에 두 명의 시인의 시가 실렸다. 윤주도의 시 9편, 김나림다의 시 9편과 각각 시인들의 사진 9장씩. 그렇게 한 명당 18개의 시선이 담겨 있다. 신선해서 아름답고 도전적이어서 영원히 젊을 시집이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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