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축제’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주지역에서 진보의 깃발을 내건 후보들은 단 한 명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 득표율은 지난 선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공고한 거대양당체제에 기반한 여러 요인이 먼저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 외적 요인들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인 상수입니다. 시선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내부로 돌려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제주투데이는 지역 시민들이 직함과 대표성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으로 얘기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제주지역 진보정치 및 진보정당의 한계를 점검하고, 진보진영의 현실정치 참여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에 참여했던 진보정당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담고자 합니다. 그렇게 ‘축제’를 이어가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①"진보정치, 지역 연대의 날을 벼리자"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② 반드시 나와야 했던 공약들

(그래픽=김재훈 기자)
(그래픽=김재훈 기자)

#"내 편 아니면 모두 적"

이번 지선은 참여민주주의가 우리 기대와 다르게 발현된 선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촛불 정국 이후 사람들은 관중이나 심판 역할을 넘어서서 스스로 정치의 주역이 되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그 추종 세력을 심판하고 몰아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세운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보호자로 또는 공격수를 자청하여 최전선에서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었다.

반면, 과거 보수 권력과 추종자들은 보통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공권력을 앞세워 실력을 행사하는 편이었으나 자신들이 심판받은 과정을 복기하고 반대 세력의 방법을 빠르게 학습하여 마치 “반사”라고 하듯 똑같은 수단으로 그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세부적으론 더 복잡한 권력간 갈등과 경쟁이 있겠으나 크게는 온 국민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세력으로 나뉘어 힘겨루기하는 국면이 되어 대선을 치렀다. 지방선거도 그 영향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고래가 싸우면 새우, 멸치 같은 작은 존재들은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국제정세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양분되면 약자들은 누구 편에 설 것이냐는 선택을 강요당한다. 어느 편에도 들어가지 않고 독자노선을 걷는다고 하면 바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과거엔 그런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정권이나 정치권이 주도하고 국민은 공정한 심판관의 자격으로 힘센 자들의 부당한 압박을 견제하고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하려 했다면 거대 양당의 대결이 극으로 치닫고 지지자들이 대결의 주체가 된 근래엔 양당 지지자들이 소수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치부한다.

그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정의당이 아닐까? 전략적으로 크고 작은 실수가 있었더라도 오랫동안 제3당의 위치를 지켜온 정의당이 지금처럼 전멸에 가깝게 과중한 심판받은 가장 큰 죄목은 ‘감히 민주당 편에 서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녹색당 부순정 후보와 무소속 박찬식 후보의 득표율, 실망스러워

길 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자. “지금 제주가 처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며 대책이 시급한 사안은 무엇인가?” 별 의미 없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말을 제외하면 아마 최소 반 이상의 사람들은 기후 위기, 난개발, 쓰레기, 오염 등등 환경문제를 꼽을 것이고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첨예한 사안은 제2공항 건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공항을 하나 더 건설하면 기반시설이 들어설 광활한 부지 내 마을이 사라지고 오름과 동굴, 숨골 그리고 동식물과 서식지가 파괴되는 심각한 환경 훼손을 일으키며 지금도 적정선을 넘어선 관광객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난개발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적어도 환경문제에 대해선 국민의 힘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 관심이 많고 제2공항을 비롯한 난개발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오영훈 도지사 당선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민주당 후보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생각과 입장을 최대한 감추려 했다. 그 배경엔 개발 이익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겠고 또 제2공항엔 반대하지만 국민의힘의 당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결국 민주당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표 계산법이 깔렸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양상은 늘 있던 것이지만 이번 선거에선 유독 더 심화한 느낌이다. 대선에서 국민의힘에 정권을 넘긴 상실감과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4인의 제주도지사 후보 중 제2공항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 부순정 후보와 무소속 박찬식 후보의 득표율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물론 후보와 각 진영도 부족한 면이 있었겠으나 뚜렷한 정책 방향도 없고 제2공항을 비롯해 환경문제 관련 정책도 구체적이지 않은 민주당과 아예 대놓고 개발하겠다는 국민의힘에 표가 편중된 결과, 어느 후보가 나의 소신과 더 가까우며 내가 바라는 미래를 실현해 줄 것인지 보다 “우리 편 이겨라!”에 매몰된 유권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도지사 투표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도 제주도에 배정된 8석의 비례대표 도의원마저 다른 정당은 단 한 석도 없이 민주당과 국민의 힘에 4석씩 사이 좋게 나눠 준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명하게 제주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진보 정당 후보들을 이처럼 철저하게 배제시킨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후보의 진정성이나 공약보다 ‘내 편의 승리’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는 좋다. 하지만 온 국민이 정작 가치 판단보다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서 마치 링 위에 오른 선수들처럼 대립하고 싸우는 것이 과연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일인지는 다시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미 선거는 끝났고 당선자는 정해졌다. 하지만 이제라도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킨 유권자들은 미처 투표에 반영하지 못한 각자의 지향과 신념을 당선자들에게 전달하고 요구하라. 선택을 후회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라. 그것이 진짜 직접 민주주의고 참여민주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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