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축제’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주지역에서 진보의 깃발을 내건 후보들은 단 한 명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 득표율은 지난 선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공고한 거대양당체제에 기반한 여러 요인이 먼저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 외적 요인들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인 상수입니다. 시선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내부로 돌려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제주투데이는 지역 시민들이 직함과 대표성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으로 얘기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제주지역 진보정치 및 진보정당의 한계를 점검하고, 진보진영의 현실정치 참여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에 참여했던 진보정당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담고자 합니다. 그렇게 ‘축제’를 이어가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①"진보정치, 지역 연대의 날을 벼리자"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② 반드시 나와야 했던 공약들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③후보의 진정성과 공약보다 ‘내 편의 승리’가 더 중요?

(편집=김재훈 기자)
(편집=김재훈 기자)

#‘호감이 가지 않는 인상의 권력계급’과 ‘인상은 좋은 권력계급’ 사이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카는 대학 졸업반을 앞두고 잠시 휴학 중이었다.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던 지난 겨울, 동생네와 함께 하는 가벼운 술자리에 조카도 같이 있었다. 대선을 앞둔 그때, 이야기는 당연히 정치문제로 흘렀다.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는 안 된다는 금언을 잊은 듯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조카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불안해했다. 그리고, 당시 이슈였던 어떤 ‘공정’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선택한 정치적 스탠스는 우측이었다. 우경화라고 표현하기 딱 좋은, 그런 선택을 예고하고 있었다. 조카와 그의 아빠는 마찰했다. 나는 둘을 중재하며 목소리를 낮추도록 종용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를 따질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나는 조카의 생각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안은 실제이고 실존적인데, 그걸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어째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고 그런 선택을 예고하고 있는가. 정치와 사회와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로로 만들어진 세대 간 갈등에는, 내 세대의 고민과 반성이 가닿지 못하는 자기 고집이 있었다. 어쨌든 이후로 두 번의 큰 선거가 지나갔고, 우리는 현재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조카의 불안은 단지 그 혼자만의 불안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선거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거 자체의 들뜬 분위기만 조금 느꼈을 뿐이다. 어떤 의미도 생각도 솟아나지 않았다. 허무하게 끝났다. 

조카의 고민 또는 우경화는 지난 정권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어떤 많은 이들은 지난 정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나의 경우도 비판적 지지로 시작하여 ‘그러면 그렇지’ 하는 허탈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게 지난 정권의 실정이라고만 하기엔 무리가 있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고, 신자유주의의 심화에 따른 자본의 성정은 더욱 우리를 어딘가로 매몰시키고 있었다.

정치는 그런 자본을 옆에서 어떻게 통제하고 조율하여,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 주는가의 문제이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트럼프로 대변되는, 극우를 넘어 이기적 실리를 표방하는 상인 출신의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프랑스 총선은 극우를 막기 위해 우파와 부르주아 좌파가 합세하여 우파인 마크롱을 지지했다. 투표율이 50%대로 떨어진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기성세대가 몸부림친 결과였다. 중국의 정치가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자본을 통제하려는 독재 권력일 뿐임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체제들은 계급 차이와 소득수준을 더욱 벌리고, 소외와 불안을 가중시킨다.

자본의 속성상 노동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소득, 즉 불로소득을 창출하며 이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노동하는 사람들과 노동하지 않고도 수익을 얻는 사람들 간의 감정적, 실리적 간극. 이는 한국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는 이를 잘 조율하고 통제했어야 했다. 지난 정권은 정책의 실패를 여러 번 보였다. 결국 큰 틀에서 한 것이 별로 없었음을 감안하면 지난 정권의 정체성은 그런 자본환경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집단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지난 4년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호감이 가지 않는 인상의 권력계급’과 ‘인상은 좋은 권력계급’ 사이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선거였던 셈이다. 위기와 불안이 가중될 때, 사람들은 어째서 우경화를 택하는가에 대해서는 판단할 근거는 별로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난도 반박도 불필요한 현상이다. 위기와 불안을 벗어나려는 심리,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쩌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는, 어찌 보면 인간의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의 본능처럼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은 변화하는 정치와 자본의 환경 안에서 점점 커지고 밀도가 높아진다. 지난 10여년의 제주가 그런 현상의 좋은 본보기였다. 물가가 치솟고 사람과 자본이 한정된 공간 안으로 쏟아지면서, 난개발과 갈등이 폭증했던 시간이었다. 아름답고 청정한 제주섬의 환경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섬은 위기와 불안의 시간은 겪고 있다. 그렇기에 제주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정치 진출은 주목을 받았다. 한때 그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많이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어떤 현실적 전략과 해법을 가지고 있었나...설령, 가지고 있었던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나 역시 지지한다.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제주의 가치는 어느 지역보다도 본질적이다. 수많은 진보적 테제들이 어느 집단이나 개인만의 정치나 전략수단 정도로 이용당하는 이 시대에, 제주의 가치를 전면으로 내세운 정당과 정치집단은 내용 면에서 더욱 유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은 있었던가. 그들의 모습은 보편 사람들에게 녹아들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모습이었는가. 주장에 대한 어떤 현실적 전략과 해법을 가지고 있었는가. 만일 그런 고민 없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라면, 특정 동호회 수준 안에서나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주장과 의미였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자연적 가치는 본질적이고 시대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데, 설령 현실전략과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의 욕망이 가득한 세상은 사실 난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자본을 축적하고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여유를 부리며 잘 살고 있지만 악착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늘지도 피로가 줄지도 않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심리적 경제적으로 막중한 부담이 되고 있고, 학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이 섬은 한라산 대신 욕망의 활화산으로 들끓어 올랐다. 저마다 그 욕망의 사다리에 매달려 오르려 하는데, ‘난개발을 막고 자연 그대로의 보존이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무리 건강한 씨앗이라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썩거나 말라죽기 마련이다.

선거판에 나선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사실 선거판을 뒤덮은 것은 허탈과 실망이었고 기대의 부재였다. 소신 투표했지만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선거를 치러야만 했던 우리의 현실, 이제까지 만들고 쌓아왔던 것들의 실체를 뒤돌아보는 일은 괴롭지만 필요하다. 그런데 뒤돌아보고 나니 더욱 허탈해져서, 선거의 흥마저 느낄 기운도 없었다. 세상은 자본의 성정대로 흐를 텐데 우리가 뽑은 사람들은 그 성정을 제대로 통제하고 조율할 것인가. 판단하건대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국민이 선출하고 도민이 뽑았으니 할 말도 별로 없다.

점점 위기로 채워지는 이 세상에 위기를 해소할 본질적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사람들은 욕망에 떠밀려 다른 곳을 바라볼 능력을 상실한 느낌이다. 나 역시 서두에 밝힌 조카의 불안을 존중하기만 했지,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비관의 깊이가 얼마나 더 깊어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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