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김신숙, 현택훈 부부는 각자 다른 동인에서 활동했는데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서로가 서로의 시를 읽은 후였다. 서로의 외면적 생김이 아닌 마음의 생김을 먼저 알고 만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시’라는 공통점이 주는 힘은 대단했다. 

서로가 사랑하는 시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이하게 그 코드가 너무나 잘 맞았단다. 김신숙 시인은 그때 한창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쓴 故이연주 시인이라든지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의 故진이정 시인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주변에 이 시인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다소 쓸쓸함이 있었다. 

시옷서점. (사진=요행)
시옷서점. (사진=요행)

그런데 이 시인들에 대해 현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이렇게 재밌는건지! 사람은 기계로 만든 볼트와 너트가 아니어서 서로 맞는다는 것이 정말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그 첫 만남에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아! 이 사람!’. 

2년을 연애했는데 1년은 거의 보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 깊은 내막까지 알 수는 없으나 그 2년을 함께하고 이참에 남은 생은 서로 딱 붙어서 지내기로 했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난 시인 부부를 처음 만났다. 그렇게 내 생애 딱 1시간 김신숙 시인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그만 홀딱 반했다. 말주변도 좋고, 붙임성도 좋고, 논리정연한 듯 유머로 넘어가는 말솜씨가 그렇게 유연할 수가 없다. 

그녀의 타고난 붙임성과 사교성과 말솜씨는 한 영화감독과의 친분을 쌓는 것으로도 뻗쳤는데 그 영화감독은 시인의 남편을 보고 엄청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단 보름 만에 완성! 휘뚜루마뚜루 3개월여 만에 영화까지 탄생시켰으니 그 유명한 <시인의 사랑>이다. 주인공 현택기는 현택훈 시인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김신숙 시인은 ‘동성애’ 부분을 제외하곤 시인 부부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러니까 어느 지점까지가 사실인지 모호하게 봤지만 난 택기씨랑 같이 울고, 택기씨의 아내와도 같이 울고, 소년과도 같이 울어버렸다. 이 영화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2017’로 선정되며 화제를 뿌렸는데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자세한 내용은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영화도!   

둘의 러브스토리는 이쯤하고, ‘시옷서점’을 있게 한 두 장본인. 김신숙, 현택훈. 이 둘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 있다.                            

#시의 생_아버지, 김기동

‘기동(력) 있게! 신숙(속) 하게!’. 시인의 아버지 이름과 시인의 이름을 빗댄 말장난이다. 시인은 6살 무렵부터 시인을 꿈꿨다. 그의 아버지의 꿈이 시인이라는 말을 늘 듣고 자라던 터였다. 시를 좋아하셨고 존중하셨다. 아버지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또, 늘 무언가를 쓰셨다. 가족과 지인들이 ‘기동있게! 신숙하게!’라고 할 정도니 이 집안은 유쾌함이 내력인가 본다.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마음에 막연히 시인의 삶을 가슴에 키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글짓기로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 가족들의 칭찬이 상당했다. 그 칭찬이 듣기 좋아 그녀는 이듬해부터는 글짓기부에 들었다. 중학생 시절에도 글짓기부. 고등학생때는 문예부. 대학생 때는 문학동인. 그녀는 10살 이후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옆에서만 지낸 것 같다고 한다. 

곧 유고집으로 만나게 될 김신숙 시인의 아버지 일기. (사진=현택훈 시인)
곧 유고집으로 만나게 될 김신숙 시인의 아버지 일기. (사진=현택훈 시인)
김신숙 시인 아버지의 일기장. (사진=현택훈 시인)
김신숙 시인 아버지의 일기장. (사진=현택훈 시인)

시인은 마흔 살 무렵 첫 시집을 냈다.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인데, 여기서 시인은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밤이든 아침이든 누군가의 마중을 나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 시집엔 관광도시 이면의 서귀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탈하는 청소년의 그 이탈을 허용하던 시대, 여성의 몸이 돈으로 치환되던 시대, 성폭력이 정당화되던 시대. 놀랍게도 그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다. 그때 서귀포에서는 ‘일찍 죽은 여자들, 멍들고 짓이겨진 여자들’(김신숙,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에서)이 많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 시집에 담았다.                     

시인의 아버지는 유쾌했으나 시의 실상은 슬펐다. 그래서 첫 시집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혹은 그 말들을 어떻게 토해야 할지 몰라서 서성였던 것일까. 짐작으로 어떤 길이었든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은 시인이 되는 길이었다. 

김신숙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김신숙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시인은 거리의 여성들과 제주4·3희생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보듬는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제주여민회의 4·3생존 희생자 할머니 구술채록을 5년째 하고 있고, 4·3을 세상에 알렸던 선배들의 행동을 시어로 다듬고 있다.
                
첫 번째 시집에 20살부터 29살까지 쓴 시들을 엮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25살 이전에 썼던 그러니까 초기 시들을 엮었다. ‘시의적절’이라는 독립출판사를 통해 <시침핀>이란 이름으로 펴냈다. 어렸을 때 쓴 시들은 폐기(?)하는 게 시인계의 관례라는데 김신숙 시인은 성장 과정에 의의를 두고 있다. 

구술 동시집도 한 권 발표됐다. 시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열두 살 해녀>다. 제주인문학을 쌓는다는 의미로 기획된 ‘일하는 할망들’ 시리즈의 첫 책으로 지역 출판사에서 펴냈다. 대형 출판사를 거치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었겠지만 지역 출판사의 역할과 가치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고. 

곧, 세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귤이라는 세계>가 제목인데 말장난, 말놀이에 관한 시집이라고 한다. 시인은 꽤 오랫동안 고통과 슬픔을 대상화하는 시를 썼는데 그 고통을 엄청나게 바라보다 보니 굉장히 긍정적인 세계에 도달했다고. 어떤 시들이 담길지 몹시 궁금하다. 

참, 다시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기를 시로 대체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이 꽤 되고 사장하기엔 글이 너무 아까워 곧 유고집을 낼 예정이다. 시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시를 사랑해 시인이 된 소녀는 성숙하다. 소녀 덕에 드러낼 수 없었던 아픔과 고통이 햇살을 맞고 곪았던 상처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슬픔과 고통을 응시했던 소녀는 묵묵히 그러나 확고하게 그것을 치유하는 길을 터고 있다. 아버지의 몫까지 열심히. 소녀는 때때로 그 옛날 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유쾌하고 소녀는 행복하다. 

#시의 생_외삼촌, 홍기찬

‘홍기찬 외삼촌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현택훈 시인의 음악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의 맨 앞장에 쓰인 말이다. 책방 가득 쟁쟁하게 음악을 틀었던 시인.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현택훈 시인의 음악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현택훈 시인의 음악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가사가 그에겐 시였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들 이를테면 산울림, 들국화. 김현식, 언니네 이발관, 9와 숫자들 등등. 그들의 가사를 보면 왜 가사를 시로 읽혔는지 공감한다. 나도 학창시절 산울림의 노래 <너의 의미>를 듣고 눈이 번뜩 뜨였던 적이 있었다. 

‘너의 그 한마디 말’과 ‘쓸쓸한 뒷모습’까지도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것. ‘사랑’ 고백을 이렇게도 하는구나, 했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는데 ‘스쳐 불어오는 넌’ 향긋하다. 사랑해서 설레고 사랑해서 아픈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현 시인의 음악산문집에도 산울림의 ‘너의 의미’가 몇 번 등장한다.     

그에게 음악을 알려준 이는 외삼촌. 음악과 영화와 문학을 알려줬다. 휘파람 부는 것과 벽탁구 치는 것도 외삼촌이 알려줬다. 어찌나 영향력이 대단한지, 그의 첫 시집 <지구 레코드>는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시인에게 ‘상실감’을 알려준 사람. ‘상실감’은 슬픔의 단어다. 이 감정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섞여 시로 탄생했고 그렇게 외삼촌에게 영원의 생을 안긴 셈. 외삼촌이 아니었다면 시인 현택훈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공상과학을 좋아하는 한 소년이 됐을지도 모를 일. 그랬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그랬으면 안 됐겠다. 

지구레코드.
현택훈 시집 '지구 레코드'.

그는 꼭 시를 써야 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시를 통해 위안을 받아야 한다. 그는 ‘슬픈 사람을 대신해 울어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의 시는 안 슬플 때 읽으면 슬퍼지고 슬플 때 읽으면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기분이다. 

시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27살 무렵이다. 그때는 생계를 위해 국수공장에 취업을 했다. 그즈음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처음으로 시 응모를 했다. 최종심에 이름이 올라간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이후 국어교육과로 편입, 졸업 무렵엔 지용신인문학상을 받았다. 몇 년 후 <시와 정신> 문예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 늘 어떤 일들을 했는데 학원 강사, 방과후 교사, 기간제 교사, 사서 등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방과후 독서논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첫 시집을 내고 그는 고향 제주를 시로 담으려 노력했다. 이후 나온 <남방큰돌고래>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또 동시집 <두점박이 사슴벌레 집에 가면> 등이 그렇다. 섬이라는 특수성, 제주여서 볼 수 있는 풍경, 생물. 또, 제주4·3과 제주의 장두, 운동가들. 그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면 그의 음악 산문집과 또 하나의 산문집인 <제주어 마음사전>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제주어 마음사전.
제주어 마음사전.

자신의 뿌리를 외삼촌에서 찾아 상실감에 힘들어하던 소년은 성숙하다. 자신의 뿌리를 고향으로 확대하는 대범함을 발현시켰다. 자아를 형성해준 외삼촌은 시적 자아 형성에도 등대와 같이, 이정표와 같이, 어떠한 기준점이 됐다. 외삼촌과 함께 놀던 소년은 기억 속에서 언제나 그와 함께다. 그 기억은 앞으로도 그의 시와 글들에 밑바탕일 것이다.

김신숙, 현택훈 시인의 기억에 깊게 자리한 두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이 둘을 이끌고 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 그들이 걷고자 하는 길에 김신숙 시인의 아버지가 현택훈 시인의 외삼촌이 함께한다. 현택훈 시인의 음악산문집 제목인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는 말은 참이다. 
                     
칼럼을 쓰는 이 밤. 다행히 아직은 밤공기가 선선하고 바람이 파랗다. 
나는 한쪽 밤에서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잠을 청하려다 창문을 연다. 
지구 레코드를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창밖을 본다. 
창밖엔 밤하늘을 바다 삼아 유영하는 열 두 살 해녀와 남방큰돌고래가 보인다.  
아! 두점박이 사슴벌레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메모지에 써서 잘 보이는 곳에 시침핀으로 고정해 놓아야지. 
시인이 좋아 시가 당기는 밤이다.    
               

※3부에서 이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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