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수국에 대해서 무섬증이 있다.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원한에 사무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귀신들이 도체비고장(도깨비꽃)으로 피어난다고 들었다. 안개가 자욱이 낀 소나무밭 구석에서 푸르뎅뎅하게 핀 꽃들 사이로 붉게 빛나는 꽃들이 올라오는 모습은 정말이지 도체비가 살아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지네를 잡으러 돌아다니다가도 산수국이 보이면 일부러 피해 갔었다.
나중에 식물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아는 산수국꽃은 꽃받침이 변해서 된 헛꽃이고, 산수국꽃 색깔은 자라는 토양의 성질에 따라 산성이면 푸른색을, 알칼리성이면 붉은색을 띤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지금도 유년의 기억 때문에 산수국을 보면 원한 맺힌 귀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치인은 자기의 진짜 속은 숨기고, 겉은 국민이 좋아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화장술의 대가이다. 또 정치인은 똑같은 행위를 두고 아름다운 로맨스로 부르거나, 불륜으로 치부하는 이중 잣대의 현란한 혀를 가지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이러한 그들의 재능이 최고로 빛을 발하는 공연장이다. 공연장의 배우는 부동산 투기, 자녀 진학 관련 불공정 행위, 정부 경력을 이용한 대기업 로비리스트로서의 지나친 연봉 수령, 논문 베끼기,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을 넘나들면서 국민들의 분노와 부러움 그리고 허탈감을 끌어낸다.
의원들은 국민의 공분을 칼로 삼아 똥 묻은 후보들을 겨눈다. 하지만 그 칼끝은 똥을 묻힌 자신의 심장도 향하고 있는지라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리만 커진다. 후보들은 관행이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성난 국민감정이 무마되지 않으면 영혼 없는 사과를 한다. 공연장에는 배우들이 똥을 묻힌 후보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지라 인사청문회는 똥을 가장 많이 묻힌 서너 명의 후보를 탈락시키면서 나머지 다른 후보들에게 저 분보다는 심하지 않으니 면죄부를 주는 장이 된다.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일상생활에도 위선의 이중 잣대가 숨어 있다. 나 역시도 나의 잔소리는 각시의 행동 교정을 위한 조언이고 각시의 잔소리는 나의 행위에 대한 태클이거나 자기 화풀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다. 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는 민감하고 나의 잘못과 실수에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의 때를 덜 타서 생각이 분명한 작은 딸은 나의 높이 세운 머리카락을 눕히며 “아빠만 똑똑하고 맞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빠의 행동에 위선이 없는지를 살펴보라”고 직설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위선은 가장 잘 보인다. 그래서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도 속속들이 알았던 예전의 농촌에서는 위선이 통하지 않았다. 자기 것과 남의 것에 대해서 일관성이 없거나 자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성원은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러한 행동이 되풀이 되면 마을에서 쫓겨났다. 우리 사회에 위선이 공기처럼 만연한 원인 중의 하나도 산업화가 되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익명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선의 극치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것이고, 이익을 사유화하면서 발생시킨 비용에 대해서 사회가 환수하거나 제재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비용의 사회화를 제재하는 법적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크게는 기후위기, 부동산 폭등, 비대한 재벌, 위험의 외주화, 대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의 불공정 행위, 작게는 자녀진학 관련 불공정 행위, 정부경력을 이용한 로비리스트로서의 지나친 연봉 수령,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자본 재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유기농업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 안전한 먹거리, 양질의 양분, 동물의 복지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련의 과정에 기반한 종합적 접근이다.”라는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의 유기농업 정의를 지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유기농업은 한 마디로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가 균형을 이룬 자리(自利)가 이타(利他)인 농업이다.
인동꽃은 수분이 되면 꽃 색깔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뀐다. 산수국은 수정이 되면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을 뒤집는다. 이제 나는 임신을 했으니 나를 찾지 말라고 벌과 나비에게 선언하여 그들이 꽃을 탐색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다. 위선이라고는 일도 없는 얼마나 투명한 세계인가?
수국꽃이 하나 둘 피어나는 걸 보니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다. 연인들은 구좌읍 종달리 해안도로, 대정읍 안성리 마을 안길. 안덕면사무소 앞길, 성산읍 혼인지, 사려니 숲길, 보롬왓, 휴애리, 남국사 등의 수국 길에 몰려가 아름다운 포즈를 잡을 것이다. 그 포즈에 ‘같이 또 따로’라는 공과 사가 조화를 이룬 마음이 함께하기를 소망해 본다.
위선이 있는 사이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위선을 사하라.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관련기사
- [말랑농업]‘누굴 뽑을까?’ 식물의 생존전략에서 배우다
- [말랑농업]메마른 가슴을 선홍빛으로 물들이다
- [말랑농업]기후위기는 왜 불평등한가
- [말랑농업]개민들레에 관한 단상
- [말랑농업]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 [말랑농업]밥의 위상이 흔들린다
- [말랑농업]꿀벌난초를 걸러내는 투표
- [말랑농업]치아를 뽑으며
- [말랑농업]샛절 드는 날
- [말랑농업]청년들은 왜 투자에 목을 매는가
- [말랑농업]청년농은 왜 농촌을 떠나는가
- [말랑농업]채식 식탁이 가져올 변화
- [말랑농업]예쁘고 매끈한 감귤만 찾는 당신에게
- [말랑농업]고구마에 대한 단상
- [말랑농업]제주바람이 키운 콩으로 제주할망이 만든 된장
- [말랑농업]샴페인과 지리적 표시제
- [말랑농업] 농약 안 쓰면 친환경농산물일까?
- [말랑농업]딸에게 가지를 먹이는 세 가지 방법
- [말랑농업]추석에는 양애탕쉬
- [말랑농업]어둠 속에서 빛나는 감자
- [말랑농업]‘설국열차’, 맬서스의 인구론을 비판하다
- [말랑농업]입맛 없는 여름철엔 꽁보리밥과 노각냉국
- [말랑농업]시원하고 달달한 그 이름, ‘풋귤’
- [말랑농업]농촌체험이 바캉스가 된다?
- [말랑농업]지렁이와 도시화
- [말랑농업] 조선 500년을 유지하게 한 책
- [말랑농업]밥 한 끼로 시작되는 세상의 변화
- [말랑농업]파랑, 분홍, 하양… 산수국 색의 비밀
- [말랑농업]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말랑농업]숫자로 농업을 읽는다
- [말랑농업]두부예찬
- [말랑농업]녹색이 지면 봄날도 간다
- [말랑농업]해마다 반복하는 마늘 농가 일손 부족 현상, 해결책은?
- [말랑농업]쑥을 캔다
- [말랑농업]제주서 농사짓는 청년 부부의 고민
- [말랑농업]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 [말랑농업]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 [말랑농업]“아빠, 보리빵이 맛있다구요?”
- [말랑농업]1.5℃, 인류 생존의 갈림길
- [말랑농업]고사리를 꺾으며 농지개혁을 꿈꾼다
- [말랑농업]소리 없는 전쟁, 씨앗 전쟁
- [말랑농업]태권브이가 마징가 제트를 이기려면
- [말랑농업]봄빛 머금은 꿩마농 향기가 입 안 가득
- [말랑농업]노란 바나나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
- [말랑농업]“나는 못난이 유기농 당근을 지지합니다”
- [말랑농업]꽃으로 김치를 담그다
- [말랑농업]설 제사상에 대한 단상
- [말랑농업]오메기떡에는 오메기가 없다?
- [말랑농업]딸과 빙떡을 먹으며
- [말랑농업]눈 내리는 날엔 콩국 한 그릇
- [말랑농업]밭보다 씨가 중하다
- [말랑농업]개천용보다는 잡종
- [말랑농업]맥주예찬
- [말랑농업]밀과 콩을 재배하는 이유는?
- [말랑농업]양돈과 청정 제주는 공존할 수 있을까
- [말랑농업]추석 선물 고르는 기준
- [말랑농업]배추 모종을 심으며
- [말랑농업]오영훈 도정, 그린워싱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 [말랑농업]‘월정사 가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 [말랑농업]양파지를 담그며
- [말랑농업]단풍, 생명을 잇기 위한 몸부림
- [말랑농업]경자유전 원칙은 어디로…
- [말랑농업]제주 음식에서 배우는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