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과거사 인권침해 실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과거사 인권침해 실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대한민국이 제주4·3을 비롯한 과거사 피해자의 배상을 위한 포괄적인 법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5일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이하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과거사 관련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 피해자 및 시민사회 단체 등을 면담하고 선감학원, 대전 골령골 등 현장을 방문하며 한국 사회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이날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한국 권위주의 시기에 발생했던 살인, 고문, 실종, 성폭력 및 착취, 인신매매, 강제노동, 자의적 구금을 포함한 인권침해가 자행됐다고 강조했다. 

또 다수의 인권침해가 대규모로 정기적으로 이뤄졌으며 수십년 간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곧 한국 정부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살비올리 특보는 “단 하나의 비극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시급한 과제로서 과거사 피해에 대해 전면적인 진실 및 책임 규명, 완벽한 배상, 재발방지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실규명 기구,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살비올리 특보는 ‘진실’의 관점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등 과거사 진실규명 기구들의 물적·인적 자원이 부족한 점, 조사범위의 제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국방부, 법무부 등이 진행하는 진실규명은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진실규명 기구들이 제한 없이 해당 기관이 가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16일 행불 수형인 재심을 마친 오후 6시 30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0여년 전에 씌워졌던 빨갱이의 굴레를 비로소 벗고 진정한 명예회복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해 3월16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행불 수형인 재심을 마친 오후 6시 30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0여년 전에 씌워졌던 빨갱이의 굴레를 비로소 벗고 진정한 명예회복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과거사 인권침해 가해자에 소멸·공소시효 적용하면 안돼”

살비올리 특보는 ‘책임’의 관점에서 소멸시효와 공소시효로 인해 과거사 피해자들의 소송이 기각되고 가해자들이 민·형사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과거의 사안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는 민주적·사회적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며 살아있는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 및 기소를 촉구함과 동시에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선 소멸시효 및 공소시효가 적용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효의 배제 범위를 모든 심각한 인권침해로 확대하고 나아가 권위주의 정부 시기 표현 및 결사의 자유 행사로 유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을 위한 조치를 확대할 것을 권고 했다. 

#“과거사 피해자에 효과적인 배상을 위한 법체계 구축해야”

살비올리 특보는 ‘배상’의 관점에서 한국에 과거사 피해자들이 소송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인 법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보상을 규정한 법률이 있더라도 그 보상이 충분하지 않고 피해자의 소송을 가로막고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짚었다. 

이어 재활 및 의료 보조 등 배상의 규모가 제한적인 점,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1945년 이전 피해자를 제외하고 있는 점, 제주와 광주를 제외하곤 이런 센터가 없는 점을 추가로 지적했다. 

특히 배상의 한 축인 ‘사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역시 문제로 들었다. 살비올리 특보는 과거 검찰총장이나 국정원장이 했던 사과는 그 범위나 내용이 제한적이고 일부 법관들이 재심 과정에서 했던 개인적인 사과는 국제인권법에 따라 피해자에게 이뤄지는 제도적 사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해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재활, 심리치료 서비스 등을 포함하는 완전하고, 신속하며, 효과적인 배상을 제공하기 위한 법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또 정부가 공식적으로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영한 사과를 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과거사 피해자의 ‘추모’를 위한 포괄적인 입법이나 정책이 없는 점, ‘서훈’을 받은 가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재발방지’의 관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과거사 인권침해 실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과거사 인권침해 실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인권침해의 중심, 국가보안법 7조 폐지해야”

살비올리 특보는 수많은 인권침해의 중심에 있고 지금도 유효한 국가보안법 제7조를 폐지할 것을 권고하면서 관련 법제의 개혁을 촉구했다. 

끝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사할린 조선인 학살 문제, 제주4·3 문제, 한국전쟁 등 ‘제3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해 관련국이 기록을 공개하는 등 피해자들의 진실, 책임, 배상, 추모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령이 된 생존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의 효과적이고 긴급한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살비올리 특보는 오는 2023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방문조사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보고서에는 과거사 피해자 단체들의 호소에 응답하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권고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방한 대응 인권시민사회모임((사)제주다크투어,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뿌리의집,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장애포럼, 함께사는세상)은 살비올리 특보에게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실태와 제도 개선을 위한 제언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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