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근대화 프로젝트를 주제로 첫 강의를 연 김동현 민예총 이사장.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도가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지난 1963년. 제주도를 홍콩처럼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는 계획이 검토되면서부터다.

개발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은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으로 1994년 도서지역을 제외한 제주도 전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한다. 같은해 제주도민은 개발법 제정반대 범도민회를 결성하고 지역별로 대책위를 구성해 반대운동을 벌인다. 

이때 양용찬 열사는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11월 7일 산화한다.

이후 60년간 개발이 곧 성장이라는 인식속에 전개된 제주도 개발의 역사.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제주투데이가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제주개발사를 8회에 걸쳐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9일 '개발과 저항' 첫 강의에 나선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지역의 개발을 지역의 문제로 축소해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승만 정부부터 기획된 ‘제주 부흥 프로젝트’는 민주화(자치)라는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라는 세계 체제 지역에 재편하려는 국가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제주투데이가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제주개발사를 8회에 걸쳐 짚어본다. (사진=박지희 기자)

# 체제 대결로서 부흥 프로젝트

김동현 이사장은 지역의 개발담론은 성장이 아닌 국가안보 측면에서 살펴봐야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이념 대립이 시작됐고, 이때 나타난 유럽의 부흥 프로젝트와 동아시아 개발 프로젝트트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는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동현 이사장은 미육군 전략가 웨드 마이어 보고서에 주목하자고 했다. 웨드 마이어는 미국이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 원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동현 이사장 발제문 발췌
김동현 이사장 발제문 발췌

# 4·3 절멸 이후 ‘재건’과 은폐된 폭력 

김동현 이사장에 따르면 제주 ‘4·3’은 반공국가 ‘대한민국’을 거부한 항쟁이었다. 단선·단정 반대는 반쪽짜리 ‘대한민국’을 거부한 저항의 목소리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4·3은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폭동’이었다. 미군정과 한국 정부에 있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저항세력들은 “귀신, 동물”과 다름 없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라는 제도적 장치는 체제에 저항한 존재들을 비인간·비국민으로 규정하는데 작동했고, 이들의 학살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정당했다. 

이렇듯 김동현 이사장은 국가 폭력을 ‘필연’으로 했던 이승만-박정희 시대 한국 정부의 제주도 근대화 프로젝트는 냉전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갔던 동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제주에 발행됐던 ‘월간제주’에 따르면 정권의 성공 여부는 반공주의 내면화에 달려있었고, 지역 개발 프로젝트는 반공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자행된 국가폭력의 책임을 ‘발전’과 ‘성장’의 외형 속에 은폐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지역에 대한 시혜적 접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도내 일부 지식인들조차 ‘보이는 폭력(4·3)’과 ‘은폐된 폭력(개발)’을 구분하지 못하고 4·3은 국가로부터의 ‘배제’ 개발은 국가로부터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제주 4·3을 이야기할 때 제주 지역 개발사는 별도의 영역으로 다뤄져왔다”고 지적했다.

김동현 이사장 발제문 발췌

# 4·3 이후 4·3 문제로 개발 인식해야

김동현 이사장은 “4·3의 폭력과 국가 주도 개발 폭력은 그 작동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다면서 개발 문제를 4·3 이후 4·3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4·3이 비국민-제주에 대한 국가 주도 절멸이었다면 개발 담론은 국가 입맛에 맞게 지역을 재편성하려는 또 다른 폭력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후 시작된 지역의 근대화가 ‘국가 폭력’과 ‘개발’이라는 상반된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제주 4·3 항쟁 진압 직후 일었던 ‘재건’ 움직임이 잘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961년 쿠데타 세력이 집권한 직후 보여줬던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인들의 호응은 개발 담론의 내면화에 성공했다. 60년대 등장한 ‘한라산 케이블카’ 논란은 지금까지 다양한 이름의 개발 욕망들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02년 '국제자유도시 조성'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됐고, 그는 “개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성급한 정책은 난개발의 온상이 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동현 이사장은 “지금까지 개발에 대한 논란은 개발을 상수로 두고 주체의 문제로만 다뤄졌지만, 제주 4·3에 대한 인식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개발담론의 본질과 마주서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발담론에 담긴 식민성과 폭력성을 제주사회가 제대로 마주해야, 제주 미래 비전에 대한 주체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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