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제주본부가 17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평등 양당체제를 타파하고, 진보정치를 실현할 지방선거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가운데 고의숙(왼쪽)·박건도·양영수 후보가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민주노총 제주본부가 지난 5월 17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평등 양당체제를 타파하고, 진보정치를 실현할 지방선거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가운데 고의숙(왼쪽)·박건도·양영수 후보가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인터넷 활용이 본격화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들의 얘기를 털어놓거나 대화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또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하고 때론 치열한 공박을 하기도 한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SNS는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는 유용한 도구이자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역시나 많은 이가 평가와 과제에 대한 말들을 SNS에 쏟아 놓았다. 기존의 진영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주장도 있었고, 처절한 자기반성과 대안, 전망에 대해 토로하는 글도 있었다. 그 많은 얘기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지역정당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주장들이었다. 중앙정치, 정확하게는 거대양당에 종속된 지금의 정치로는 지방이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은 전국정당과 달리 지역의 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조직이다. 지방의회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출마시킨다.

전국정당은 전국정당대로 국가 단위의 정치를 한다면, 지역정당은 지역 단위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지역정당이 활성화되면 지역의 현안을 중앙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풀어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당법으로는 수도인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을 지닌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지지 못하면 정당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소속 출마가 아닌 이상 오직 서울에 중앙당을 둔 전국정당만이 국고보조금까지 받아가며 후보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을 얘기하면서 정작 정치는 철저히 중앙집권적이다. 지방선거를 하면서도 지역의제에 대한 입장보다는 중앙정치 상황과 연계해 거대양당에 대한 선택만을 강요당한다. 새로운 대안세력이 들어설 틈을 정당법이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고, 지금의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거대양당도 굳이 법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양당 체제가 확고한 미국에서조차 지역정당이 존재한다. 많이 알려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자신의 지역구 지역정당인 버몬트진보당 소속이나 다름없다. 샌더스가 버몬트 시장으로 당선될 당시 지원했던 지역정치조직이 버몬트진보당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스페인,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지역정당 설립이 가능하고 실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어떤 지역 내에서는 지역정당 당선자 수가 전국정당 당선자 수를 뛰어넘기도 한다. 유독 한국만 1962년 제정된 후진적 정당법으로 지역정당의 등장을 차단하고 있다. 지역의 현안을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주민들의 갈급한 요구를 해소하기 위한 지방정치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중앙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지방을 서울의 식민지라고도 한다. 현재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의 패권경쟁 도구로만 기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역정치가 스스로 발전전략을 짜는 게 아니라 중앙정치의 힘을 빌려오는 지극히 수동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시기 중앙당의 공천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되거나 지역이 아닌 전국 정치판세가 후보와 정당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진보정당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의 특수한 정치적 조건이 있더라도 중앙당의 승인이 없으면 선거 시기 지역의 진보정당 간 연대조차 쉽지 않은 구조다. 지역현안에 대한 입장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쟁점화하거나 힘을 모아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지역정당이 왜곡된 중앙집권적 정치구조의 모순을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수십년간 중앙정치에 익숙해진 지역주민들에게 비현실적인 이상향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필자 또한 십여년전에 한 선배로부터 지역정당의 고민을 들었을 때 몽상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양당 독점구도, 중앙집권적 정치구도는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고착화됐다. 거대양당 체제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는 대안으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지역에 천착하지 않으면 비례대표제 역시 중앙정치의 결과물에 머물 우려가 적지 않다.

지역주민이 중앙정치의 들러리가 아닌 주체로 서고, 다양한 지역의 이해관계를 직접 반영하는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할 것이다. 서울을 오가며 중앙정치의 흐름에만 편승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지역에 착근한 정치가 실현될 때 비로소 지방자치, 지방분권이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하게 나타났다. 제주도민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양당 중심으로만 펼쳐지는 선거에 염증이 나서였을까. 혹시 과도한 중앙 중심적, 중앙 의존적 정치가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한건 아닐까. 내심 해보는 기대는 지역정당이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거대양당 중심의 획일적 정치구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도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지방자치, 지방정치를 위해 지역정당 논의가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부장원 민주노총 제주본부 사무처장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가는 중년. 칼럼 [일상응시]를 통해 평범한 일상부터 거대한 사회적 현실까지, 조용히 관찰하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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