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대형 프렌차이즈 미용실 A업체 퇴직 직원 5명이 퇴직금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 대형 프렌차이즈 미용실 A업체 퇴직 직원 5명이 재판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업체측은 헤어디자이너의 경우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지만, 제주지방법원은 이들을 임금을 목적으로 A업체에 종속된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헤어디자이너의 노동자성이 인정된 것은 제주에서 처음이다. 

미용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씨는 2016년 A업체에 스탭으로 취업했다. 규모가 크고, 브랜드 파워도 있어 기대가 컸다. 스탭 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기술을 연마해 2018년 디자이너 승급 시험을 통과했다. 정식 디자이너가 된 김 씨는 본점으로 발령났다. 스탭은 A업체 소속 노동자로 4대보험 가입이 가능하지만 디자이너는 프리랜서 지위를 갖는다. 프리랜서가 됐지만 근무 환경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보통의 디자이너들은 프리랜서기 때문에 손님 예약 시간에 맞춰 일을 하지만 A업체 디자이너들은 주6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정해진 지점에 상근해야 했다. 근태 관리도 대표가 직접 했으며 무단 결근 시 벌금 또는 신규 고객 미배정 10일 벌칙 규정도 감수해야 했다. 

디자이너 업무 외 재고 관리, 매장 청소 등 매장 관리도 해야 했다. 연차나 휴무는 최소 일주일 전까지 보고한 뒤 사용할 수 있었다. 조퇴·외출·병가는 휴무일로 대체하거나 휴무일에 근무시간을 채우며 반드시 사전에 보고하도록 했다. 

2020년 김 씨는 퇴사를 결심하지만 A업체는 디자이너 승격 이후 근무에 대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김 씨는 다른 퇴직 디자이너 5명과 함께 광주지방노동청(이하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스탭으로 일할 당시부터 연차와 휴게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이들 6명은 퇴직금 포함 4000만원 상당의 체불 임금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A업체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 판단을 인정하는 주체는 검찰청이다. 따라서 해당 사건에 대한 노동부 각하 판단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제주지검에 있다. 

법원은 제주지검 결정을 뒤집고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업체측 변호인은 이들이 프리랜서 용역예약서를 작성했고,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했으므로 프리랜서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주지법 민사단독 송현경 판사는 "사용자가 경제적 우월적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하다"면서 "A업체가 정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구속됐고, 사규에 따라 근태 관리한 점 등을 미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측 변호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디자이너 근무 일수에 따른 퇴직금과 지연손해금 20% 지급을 명령했다. 다만 노동부 결과에 낙담한 1명은 소송을 포기, 소송에 참여한 5명만 퇴직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미용실 뿐 아니라, 학원, 헬스장, 핸드폰 판매 매장 등에서 사업주의 지휘·감독을 받아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사업소득자(3.3%)로 관리되는 노동자들이 많지만 해당 사례처럼 노동부가 이들의 진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노동자성 증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김경희 노무사는 "헤어디자이너 노동자성 인정 판결이 처음인 것은 이처럼 소송으로 가지 않고 노동부 각하 결정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라면서 노동부의 안일한 행정 처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퇴근 지시 여부 등 이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 관련 판단 기준과 판례법리가 이미 잘 마련돼 있어서 적극적으로 해석만 하면 소송까지 갈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김 노무사는 "다양한 업종에서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업종별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노동 행정을 펼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송을 진행한 김 씨는 "노동부가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보고 사실 희망을 갖기 어려웠다.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서로를 다독이면서 버텼다"고 그간의 심경을 토로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감정 소모와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 몫이었다. 이들은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위해 퇴직 디자이너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명도 받아야 했고, 자신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 때문에 현재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피해가 가거나 재취업에 불이익이 생길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헤어 디자이너의 노동자성 인정은 제주에서는 첫 사례인 것으로 안다. 이를 계기로 억울하게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있으면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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